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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잔 Mar 03. 2022

똑같지 않아요, 매일

새 잎

잎이 30장 정도 달려 있던 꽤 대품인 떡갈나무가 집에 왔어요. 

가위손인 나의 친구가 요새 유행하는 스타일에 맞춰 아래에 난 잎을 잘라 버리고 위에 있는 잎만 남겼습니다. 

처음엔 15장 정도. 새 잎이 나와 18장이 되었어요. 더 이상 나올 곳이 없어 보이는데도 잘도 태어납니다. 

몇 장이 더 추가되어도 나름 괜찮았는데 이번에는 꽤 심각한 자리에 한꺼번에 이파리 두 장이 나오기 시작했어요. 뜬금없이 너무 아래쪽이라 전체적인 나무의 디자인이 어색하고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막 나오기 시작한 어린잎을 잘라버리는 건 어쩐지 부도덕한 짓 같아요. 

식물은 먹어도 된다는 예부터 전해온 우리 관습대로라면 잘라도 양심에 가책이 될 만한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래도 떡갈나무 잎은 먹을 수도 없는데요. 

집에 온 식물들이 무르거나, 마르거나 잘라주어야 할 때는 길게 생각하기 싫어하고 책임지기 싫어하는 나의 성격과 충돌하면서도 그렇지 않은 나의 모습과도 마주치게 돼요.

내 손으로 살리고 싶다는 생각, 다시 건강한 모습을 보고 싶다는 마음, 실수했지만 다시 잘할 수 있다는 건강한 마음이 생겨납니다. 서점에 가서 식물 책도 찾아보고 검색하여 식물의 구조도 알아보고, 유튜브에서 정보를 뒤지기도 하는 보기 드물게 나의 적극적인 모습에서 누가 나인가 줄을 세워 보는 일도 재미있습니다. 

여러 가지의 마음이 있습니다. 

어느 영화에서 인가는 23개의 인격이 등장인물로 나오는데요, 나는 그 정도는 아니어도 하여간 한 두 개의 인격으로는 나를 표현하기에 모자라긴 합니다.

추측하기로 나를 그렇게 볼 사람이 없을 듯한데 가끔 담배 생각이 납니다. 담뱃갑에 인쇄된 사진을 보면 토할 것 같은 역류를 느끼지만 한편 담배를 쥔 손가락은 멋지지 않나요.

비가 오는 날은 멈출 수 있어서 좋고, 햇빛이 쏟아지는 날에 대한 인상을 견딜 수 없어 흥분하기도 해요. 

똑같지 않아요, 매일.

그래서 말이지만 삼각잎 아카시아 잎이 시들어 가는 이유를 알 수가 없습니다. 누가 말하기를 과습이라 하고 누가 말하기는 반대로 물이 부족하다고 합니다. 나의 삼각잎 아카시아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충고하는 것입니다.

생명체가 날마다 같은 것을 원하고 필요로 한다는 생각이 함께 큰 뜻을 이루려 할 때 유용하게 쓰일 것 같지만 평일 오전, 오후에는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잘 모르는 분들께 나의 삼각잎 아카시아는 다르다고, 그래서 좋아질 희망도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떡갈나무 잎이 벌써 7센티미터 정도 자랐어요. 두 장의 잎이 바라보는 자세로 자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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