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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영의 Nov 22. 2024

27. 감나무 이파리에 쓴 글을 엮어

-앙엽기

1780년 청나라의 수도 연경은 어떤 도시였을까요? 조선의 연암이 보기에 연경은 사찰과 궁관, 화려함을 다투는 부자의 묘당 등으로 저절로 사치스러워진 도시입니. 아무리 기를 써서 돌아다녀도 백 분의 일이나 봤을까, 연암은 ‘문틈을 지나는 말이나 여울에 달리는 배처럼 구경을 합다.’ 그 결과 ‘피로하고 맥이 풀려 꿈에 부적을 보듯 신기루를 보듯 거꾸로 기억하거나 명승고적을 잘못 알았습니다. 돌아와 보니, 종이는 나비의 날개폭이요, 글자는 파리 대가리이니, 후다닥 베낀 탓입니다. 이거나마 엮어 <앙엽기〉라 이름합니다.’ 옛사람이 감 잎사귀에 글씨를 써서 항아리에 넣었다가 모아서 기록한 일을 본받은 것이지요.  

    

종이가 부족했던 시절의 일입니다. 연암만큼이나 가난했던 중국의 한 선비가 떠오르는 생각들을 감잎에 적었답니다. 감잎은 잔털이 없고 매끄러워 먹물을 잘 먹기 때문입니다. 선비는 감나무 근처에 항상 붓과 벼루를 놔두고 그 아내는 겨울에 쓸 감잎을 정성껏 챙겼다. 글을 쓴 감잎을 항아리에 차곡차곡 넣어둔 선비는 종이를 사면 메모를 뼈대 삼아 살을 입혀 책으로 엮 수 있었습니다. 아무려면, 연암이 감잎에 글씨를 쓴 건 아니었겠지만 감잎에 글씨를 쓰는 심정으로 어렵사리 메모를 하고 메모를 마중물 삼 이 어마어마한 벽돌책인 열하일기를 완성할 수 있었겠습니다.      


연암의  앙엽기에서 내 눈에 띈 것은 석조사(夕照寺)였습니. 도 그럴 것이 명색이 절인데, 중이 없고 거인들만 사는 겁니다. 과거에 낙방했으나 여비가 없어 집에 못 가는 거인들 이곳에서 책을 짓거나 판각을 새기며 거처했습니다. 서른한 명이 글 품팔이를 다니는데 연암의 벗 유세기도 나가고 없었습니다. 유세기는 금년 2월에 상처(喪妻)하고, 어린 딸을 처가에 맡기고 몸종만 데리고 연경에  인물입니다. 주인 없는 방정결하고 자리가 정돈되어 있습니다. 유세기는 북경에서 남쪽으로 멀리 떨어져 바다만 건너면 대만(臺灣) 복건에서 왔습니다. 먼 고향의 딸을 그리워하는 아비의 마음이 눈에 밟혀 남의 이 아다. 연암은 감회에 잠겨 발길을 못 돌리고 그곳에서 한참 서성거렸습니다.     

 

명나라 시절에 대륭선호국사(大隆善護國寺)에는 서번의 법왕 영점반단과 저초장복이 거주했습니다. 반단이나 장복은 열하의 반선(판첸라마)과 같은 뜻입니다. 진각사(眞覺寺)에는 서번의 판적달이 바친 금부처 다섯 안치되어 있고요. 열하에서 직간접적으로 접한 반선이 이렇게 오래토록 예우를 받아왔네요. 청나라만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조선의 선비들이야 깜짝 놀지만, 청나라에서는 유서깊은 사찰로도 부족하여 황금기와 지붕의 찰십륜포를 지어 모신 인물이 바로 반선인 것다. 절일랑 서번 승려의 거처로 삼다가 그곳이 빌 때에는 황제의 사저도 사용하고. 마치 왕이 없는 경복궁을 개방하여 민간인을 위한 공원이나 외국인을 위한 관광지로 사용하는 것과 요즘과도 비슷합니다.      


연경에는 참 이색적인 마두총(利瑪竇塚)도 있습다. 돌기둥 위의 포도 시렁에 포도가 익어가돌 패루 세 칸에 돌 사자가 마주 앉아 있는,  바로 서양 선교사 묘역입니다. 거의 3리에 이르며 선교사 칠십여 명이 잠든, 명나라  황제가 하사한 곳입다. 연암은 야소회 선교사 이마두의 기념비에 덧붙여  탕약망의 기념비언급합니다. 탕약망(湯若望 1591~1666)은 세계사 수업시간에 '아담 샬'배운 인물입니다. 독일 출신의 예수회 선교사인데 월식(月蝕)을 세 번이나 정확하게 예측하여 명성을 얻었습니다. 그서양 역법서를 번역하고 천문의기와 관측의기를 제작한 덕분에 연경 시내 안에 천주당을 건축하고 전도를 하는 것도 허락을 받았다고 합니다. 심지어 볼모로 와있던 조선의 소현세자와도 교유를 했답니다. 이마두와 탕약망의 흔적만 봐도 널리 사람의 삶을 이롭게 하는 과학 기술을 배우고 싶 연암이 얼마나 설레었을까요!  


메모 쪽지들을 방안 가득 늘어놓고 날짜별로 정리하는 연암을 그리며 나도 나의 열하 글들을 출력한 종들을 만지작거리렵니다. 내 글 먼 말인지 모르겠다며 악플(?)을 내뱉은 이들을 위해 설탕(?)도 쬐까 칠 마음을 먹고 백 쪽이 될까말까한 소책자 하나쯤 건지렵니다. 2024년에 뭐 했냐고 묻는다면 연암을 읽었노라고 말하겠어요. 이 말로 부족하다면 연암을 썼노라고 대답하겠어요. 그래도 미심쩍어 고개를 갸웃다면 나는 2024년을 연암으로 시작하여 연암으로 끝내련다고 선언하겠어요. 열하 글들을 수정하고 교정하여 구슬처럼 한 줄에 꿰어 목걸이를 만들 생각에 다 스러진 열정이 꿈틀거립니다. 돈이 나오냐, 밥이 나오냐, 뭔 소용도 딱히 없는, 열하일기 글과 함께 하는 나의 2024년은 열하일기만큼이나 길고도 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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