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 청 외교관계
행재잡록(杏溪雜錄)은 건륭제의 행재소에서 보고 들은 바를 기록한 것입니다. 행재소란 왕이 궁궐을 떠나 도성 내외를 순행할 때 잠시 휴식하거나 식사를 하기 위해 임시로 머물던 곳을 의미하며 연암이 그렇게 수도가 아닌 열하의 피서산장 즉 건륭제의 행재소(行在所)에서 견문한 바를 적은 것입니다. 그 중 청나라가 조선에 대해 취하는 정책도 자세히 알려줄 뿐 아니라, 자신의 정치적 소견도 다분히 드러낸 글이기도 합니다.
연암은 먼저 조선의 중국관부터 내보입니다. 명나라는 조선이 건국할 때부터 조선을 나라로 인정했으며 임진왜란 때에는 군사를 제공하여 골수에 사무치는 은덕을 베푼, 문명국 중화의 상국입니다. 반면에 청나라는 조선에 혜택은 베풀었어도 조선을 무력으로 굴복시킨 강대국일 따름이라는 것입니다. 1592년 왜란 때에 조선을 돕는데 들어간 비용이 무려 은 8백만 냥이고 이것은 명나라의 멸망의 원인 중의 하나가 되기도 했다 하니 은혜가 크긴 컸네요.
그런데 명나라의 그 은혜는 옛날옛적의 일입니다. 연암의 1780년경에는 이미 백여 년이 흘러 버린 아득한(?) 과거의 일이란 말입니다. 명나라 덕분에 이마에 문신을 뜨고 풀 옷을 입는 오랑캐의 풍속을 면하게 된 은혜가 뼈에 사무친다고 하는 연암의 글을 읽으며 나는 저절로 고개가 약간 갸웃해졌습니다. 그런 옷을 입으면 입는 거지, 벗고 사는 것도 아닌데 뭐 옷 입는 거로 은혜가 사무치나, 싶어요. 열하일기는 한문으로 쓰였지만, 여인네들을 위한 한글버전도 시중에 나돌았다고 하니 나처럼 발칙한 속내를 굴리는 백성도 있었음 직합니다.
반면에 청나라의 혜택은 아주 구체적이고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는 일입니다. 금이 조선의 토산품이 아니라고 하니, 조공에서 금을 면제해줍니다. 조선산 조랑말이 약하다니 이것도 조공으로 안 바치도록 해줬구요. 쌀, 모시, 종이, 자리 같은 폐백도 해마다 수를 감소시켜주고 몇 해동안 칙사(勅使)를 보낼 만한 일도 그냥 처리하고 송영하는 폐단도 간소화했구요. 읽다보니 청나라는 오랑캐답게 실제적인 일에 강하다는 느낌마저 들 던걸요.
특히 연암이 사행에 나선 1780년에는 군기대신을 보내어 사신단을 맞이했구요. 조정에서는 조선 사신단이 대신 반열에 서게 하고 대신들과 나란히 연극을 즐기도록 해줬구요. 정식 사신 이외의 별도의 물품은 면제해주는데 이건 명나라 시절에도 받지 못한 대우랍니다. 이번 사행에 조선은 종이와 돗자리를 바쳤을 뿐이지만 중국은 조선 사신에게 줄 선물과 숙박비로 10여만 냥이 들었다는 겁니다. 이건 조선이 중국에 민폐를 엄청나게 끼친 셈입니다.
연암은 조선이 이것을 혜택으로 여길 뿐 은혜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한두 번 읽을 때는 그런가 보다 했는데 이번에는 조선 사행에 관련하여 명나라와 청나라의 처우를 좀 더 검색했어요. 와, 명나라 말엽의 사신들이 싹쓸이 수준으로 조선의 은을 가져가더군요. 이런 꼴을 당하다니, 해도 해도 너무 하잖아! 울화통이 치밀 정도였어요. 그런데 명나라 말기와 청나라 초기가 겹치잖아요? 비교가 되게도 청나라는 점점 더 가진 자의 여유로 너그럽게 굴더라니까요.
청나라는 다른 나라에 강요하던 변발도 조선에게는 면해주었어요. '예를 아는 나라'라며 다른 조공국과 다르게 예우하구요. 조선 사신의 도난 사건사고는 신속정확하게 처리하고요. 그 빠른 속도가 거의 현대의 일 처리 속도였답니다. 연암의 일행에 관련해서는 청나라 예부 관리들의 1년 봉급을 삭감하는 극단적인 처우(?)까지 서슴치 않습니다. 황제가 열하에서 기다리는 '조선사신단을 열하로 보낼까요, 보내지 말까요'라고 묻지 않은 게 직무유기라고 말입니다.
조선 좀 꼴통이긴 해요! 첫사랑은 못 잊고 끝사랑은 함부로 대하고. 임진, 병자 양난을 겪으며 성리학이 예학에 치중하며 명분과 형식이 전부가 되어버렸으니 말입니다. 한족의 명나라를 오랑캐 만주족의 청나라가 멸망시켰으니 그 청나라를 떠받들 수 없다는 거죠. 뺨을 맞아도 은가락지 낀 손에 맞는 것이 낫다는데, 기왕 정복을 당하더라도 일본보다는 중국에 당하는 게 더 낫다는 식이죠. 힘이 약해 매맞는 주제에 때리는 자를 가리는 게 웃깁니다만 오늘날의 우리라면 어떤 게 더 치욕스러울까요? .
그런데요, 은가락지 낀 손에 맞으나 안 낀 손에 맞으나 아프기는 마찬가지 아닌가요? 더구나 가락지 낀 손에 맞으면 안 낀 손에 맞는 것보다 훨씬 더 아프지 않겠어요? 첫사랑 명나라도 끝사랑 청나라도 다 가버린 지금, 조선이 옷 때문에도 무시했던 일본은 소중한 이웃이 된 반면 중국은 있는 말 없는 말로 악담을 하는 사이 나쁜 이웃이 되었습니다. 가락지를 낀 손에도 안 낀 손에도 뺨을 안 맞으려면 우리는 지금 어떡해야 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