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필암서원에 갔을 때였다. 그곳에 있는 신앙회보를 집어드는데, 앞표지 그림에는 남성들만의 모임에 한 여성이 홀로 나와 있었다. 그 아래에는 2023년 춘향제 초헌관 이배용 위원장이라고 소개되어 있었다. 그게 바로 내가 이배용이라는 이름을 처음 접한 때였다. 생전 처음 접한 이름에서 시선이 미끌어지며 나는 이배용을 잊었다.
그리고 조선의 서원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는 낭보를 접했다. 내 고장에 있는 필암서원이 서원 9개소 중의 하나로 등재되어 모처럼 뉴스를 타고 인구에 회자되었다. 그때쯤 나는 필암서원의 주인공인 하서 김인후를 열렬하게 공부하고 있던 터라 필암서원에 자주 드나들다가 신앙회보도 보게 되었다. 서원과 향교가 남자들만의 공간이라는 것만큼은 알고 있었기에 무슨 이유로 이배용이 이 공간을 공유하는 인증샷이 찍혔는지 궁금해졌다.
그리고 이배용이 유네스코 등재의 일등공신(功臣)임을 알게 되었다. 어쩐지 남자들만의 공간에 여자가 하나 있는데, 그 공로를 인정하여 끼워주었을 터이니 그건 참 어마어마한 공로였음에 틀림없다. 제사를 지내지 않는 나는 초헌관이 뭔지 까맣게 몰랐다. 다만 유림의 한 남성이 이번 제례에서 자신이 초헌관을 맡았다고 말하는 표정만 읽고 그의 감개무량한 어조에 설득되어 참 명예로운 역할인가 보다, 라고 받아들였을 뿐이다.
이참에 열하일기를 읽으며 나는 비로소 초헌관의 의미를 알았다. 초헌관은 제례에서 첫 번째로 신위에 술잔을 올리는 제관으로 제사의 흐름을 결정짓는 중대한 역할이다. 나라의 제례에서는 임금이, 지방에서는 지자체장이 맡는다. 이배용이 2020년 도산서원 추계향사에서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초헌관을 맡은 것이 유교 600년 금녀의 벽을 허물었다는 역대급 평가를 받았다니 그게 과연 그런 의미인지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나의 이 추적에는 또 하나의 배경이 있었다. 그리스의 멜리나 메르쿠리를 우연찮게 접하게 된 것이다. 메르쿠리는 그리스의 전 문화부 장관을 역임했는데 반대자들을 향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In America, even a third-rate actor can become President. Why shouldn’t I, a first-rate actress, become Minister of Culture?”(미국에서는 삼류 배우가 대통령도 된다. 그런데 일류 여배우인 내가 왜 문화부 장관이 되면 안 되느냐?)
메르쿠리는 일단 배우이자 가수이며 독립운동가였다. 신생 그리스 왕국의 문화부장관을 역임하며 파르테논 조각군(일명 엘긴 마블스) 반환 운동을 전개하고 아테네를 유럽 문화수도로 제정하게 했으며 아크로폴리스 박물관 건립을 주도해냈다. 반환 운동의 대상국이 대영제국인 만큼 국제적인 행보를 할 수밖에 없던 대단한 여걸이 그리스에는 있었다. 그런데 왜 대한민국의 메르쿠리가 없냐고 자문한 것이 추적의 방아쇠를 당긴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이배용은 어떠냐고 가정한 것이다. 이배용은 이화여대 총장을 거쳐 국가 브랜드 위원회와 국가 교육 위원회를 이끈 인물이다. 남성의 주 영역인 정치판에서 여성적 감수성을 가지고 해낼 수 있는 틈새 정책으로 메르쿠리는, 문화주권의 개념을 가지고 문화재 반환을 치켜들었다. 마찬가지로 이배용은 전통문화를 보존하고 개발하기 위해, 등재를 신청하고 자료 미완으로 반려되고 재신청하는, 노심초사의 8년을 거쳐 조선 서원의 유네스코 등재를 해냈다.
메르쿠리는 암 말기의 체력을 쥐어짜며 숨이 멎는 순간까지 숙원사업을 만지작거렸다고 한다. 끝까지 불꽃을 활활 태워 재가 되는 멋진 마무리였다. 메르쿠리는 “마지막 그리스 여신(The last Greek goddess)”으로 추모되고 있으며 그녀의 문화 정책은 여전히 꺼질 줄 모르고 타오르는 횃불이다. 나는 이배용이 자신은 ‘아직 덜 탔다’고 느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금녀의 벽을 허물었다는 평가가 무색하게도, 대한민국 여성은 여전히 제주(祭主)가 될 수 없고 제도의 벽은 여전히 견고하다.
제도를 개혁하려면 힘이 있어야 한다. 이배용은 문화 요직을 두루 맡아 일해왔다. 그런데 그때는 옳았던 것이 지금은 옳지 않아 이전의 은밀한 관행이 현재 명백한 불법으로 바뀌며 이배용은 공직에서 물러난다. 유리 천장을 깨지 못한 채 추락한 선배 여성들의 전철을 밟았다. 초헌관 이배용이 유일한 여성으로 남성들의 공간에 함께 있는 그 한 컷을 찍히기 위해 얼마나 먼 길을 달려왔던가를 떠올리면 안타까운 심정이다.
많은 시간을 들여 가꿔온 이배용이라는 나무가 벽 앞에서 더 이상 뻗어 나가지 못한다. ‘여성 리더십이 문화와 제도 개혁을 이끌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그리스의 메르쿠리는 ‘예’라고 대답했지만, 한국의 이배용은 그렇게 대답하기가 어렵다. 문화주권의 불꽃을 그리스의 메르쿠리는 끝까지 불태울 수 있었지만, 이배용은 제도의 벽 앞에서 멈추어야 했다. 결국 질문은 하나로 모인다. 한국에서 여성 리더십은 문화와 제도를 바꿀 수 있는가 아니면 언제까지 벽 앞에서 멈춰야 하는가
나는 일본소설을 읽으며 실마리를 잡았다. 대망 10권에 나오는 고에쓰의 이야기다. 그의 어머니는 비단으로 옷을 지어 입은 적이 없다. 아들이 비단을 보내면 그 기쁨을 나눈다고, 비단을 수십 장으로 조각내어 집의 노비들에게 골고루 줬다. 귀한 비단을 어떤 심정으로 잘랐을지는 감히 상상할 수 없다. 수십 조각이면 손수건 하나가 될까 말까 했을 터이니, 실제로 도움은 안 되었겠지만 그 한 조각이 받은 이들에게 무슨 의미였을지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유네스코 등재만이 아닌, ‘서원의 활용’이라는 더 먼 목표를 향했다면 이배용은 초헌관을 받아들이지 않아야 했을 것이다. 이일은 등재의 순간 수많은 이들의 협력이 빛났던 것처럼 앞으로 더 많은 이들의 협력이 빛나야 하는 머나먼 길이기 때문이다. 메르쿠리는 횃불을 끝까지 불태운 ‘마지막 그리스 여신’이 될 수 있었지만 이배용의 초헌관은 아쉽게도 제도의 벽 앞에서 멈춘 샴페인이다. 한국의 여성 리더십이 더 많은 이들과 나눔의 정신을 공유할 때, 그 샴페인이 비로소 진정한 축배가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