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선택
나는 한동안 Sheetz라는 이름조차 몰랐다.
내가 사는 곳에서는 차로 한두 시간은 달려야 겨우 만날 수 있는 주유소 겸 편의점이었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 미국인 친구 한 명이 내게 울분을 토했다.
"아니, 네가 미국 살면서 아직도 Sheetz를 몰라?"
그의 표정은 마치 내가 세상의 진리를 모른 사람처럼 격앙돼 있었다.
그날 처음, 나는 Sheetz라는 존재를 알게 되었다.
그 뒤 얼마 후 여행길에 우연히 들른 곳이 바로 그 Sheetz였다.
"아, 이게 그 소문 많던 Sheetz구나.'
Sheetz는 펜실베이니아 서부와 중부 대서양 지역에서 사랑받는 주유소 겸 편의점으로, 터치스크린으로 주문하는 맞춤형 샌드위치(MTO- Made To Order)와 24시간 맥주 동굴(beer cave)로 유명하다.
반면, Wawa는 펜실베이니아 동부와 뉴저지, 델라웨어를 중심으로 '호기'(hoagie)라는 부드러운 샌드위치와 신선한 커피로 지역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곳이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Wawa의 터키 호기나 Sheetz의 스파이시 치킨 샌드위치나, 맛의 차이는 잘 모르겠었다. "여기가 진짜 최고"라는 환호는 와닿지 않았다.
그저 '지역마다 편의점도 이렇게 자존심을 걸고 다투는구나' 싶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 논쟁이 왜 이렇게 진지한 걸까? 미국은 넓은 땅덩어리에 주마다, 도시마다 고유한 정체성이 뚜렷한 나라다. 펜실베이니아 동부의 필라델피아 사람들은 Wawa를, 서부의 피츠버그 사람들은 Sheetz를 '우리 동네' 상징으로 여긴다. 소비문화도 한몫한다. 미국에서 브랜드는 가게이상이다. 삶의 방식, 추억, 소속감을 담는다.
Wawa에서 아침 커피를 마시는 필라델피아 직장인이나 Sheetz에서 늦은 밤 나초를 사는 대학생에게, 이 편의점은 가게가 아니라 '나의 삶'이다. 게다가 X 같은 소셜 미디어는 이런 논쟁을 전국적으로 띄운다. "Wawa 커피가 최고!" vs "Sheetz 나초가 인생!" 같은 포스트가 수백 개의 댓글로 이어지며, 지역 자부심이 놀이처럼 확산된다.
펜실베이니아 사람들에게 Wawa vs Sheetz는 단순한 편의점 싸움이 아니다.
거의 지역 정체성에 가까운 전쟁이다.
"Wawa는 부드럽고 정직한 샌드위치지! 커피도 최고야!"
"아니야, Sheetz야말로 24시간 원하는 대로 커스터마이징 되는 혁신이야!"
이런 대화는 농담처럼 시작하지만, X에서 검색해 보면 수백 개의 댓글이 달린다. 편의점 하나가 고향의 자부심, 나의 라이프스타일, 나의 정체성으로 확장되는 풍경이다. 한국에서 'GS25 vs CU'로 싸우는 걸 상상하면, 왜 이렇게 진심인지 신기하기만 하다.
놀랍게도, 이 경쟁은 긍정적인 방식으로도 나타난다. Wawa와 Sheetz의 CEO는 펜실베이니아 스페셜 올림픽 같은 자선 활동을 위해 손을 잡았고, 두 브랜드는 지역 사회를 위해 힘을 합쳤다. 하지만 비즈니스 세계에서는 치열한 ‘영토 전쟁’이 벌어진다.
Wawa가 Sheetz의 텃밭인 펜실베이니아 서부로, Sheetz가 Wawa의 본거지인 동부로 진출하며 지역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한다. 정치인들도 이 논쟁을 놓치지 않았다. 2024년 대선 캠페인에서 후보들은 "Sheetz 유권자"와 "Wawa 유권자"를 겨냥해 지역 유권자들과 유쾌하게 소통했다.
심지어 이 라이벌 관계는 Sheetz vs. Wawa: The Movie라는 다큐멘터리로까지 이어졌다. 이 영상은 두 브랜드의 경쟁과 팬들의 열정을 유쾌하게 조명하며, 이 논쟁이 단순한 편의점 싸움이 아님을 보여준다.
게다가 미국을 여행하다 보면 Wawa나 Sheetz 같은 주유소 겸 편의점은 정말 흔한 풍경이다.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금세 나타나고, 여행자들에게는 잠시 쉬어가는 오아시스 같은 존재다. 낯선 도시라도 이곳만 들어가면 "아, 미국이구나" 실감하게 된다. 그러니 이 '흔한 풍경'이 사람들에겐 더욱 익숙한 정체성으로 자리 잡는다.
최근에는 새로운 후보까지 가세했다. Royal Farms. 역시 주유소 겸 편의점인데, 바삭한 프라이드치킨과 감자 웨지로 '치킨 맛집'을 자처한다. "Wawa와 Sheetz는 잊어, 치킨이 진짜다"라며 논쟁에 기름을 부었다. 이제는 Wawa vs Sheetz의 2파전이 아니라, Royal Farms까지 얹힌 3파전이다. 치킨 기름 냄새가 논쟁의 기름을 부은 셈이다.
알고 보니, 미국은 이런 '별거 아닌 전쟁'이 참 많다.
햄버거는 In-N-Out이냐, Shake Shack이냐, Five Guys냐.
음료는 Coke냐 Pepsi냐, 아침 커피는 Dunkin이냐 Starbucks냐.
피자는 뉴욕식 얇은 도우인지, 시카고식 치즈 폭탄인지.
심지어 생활 속에서도 전쟁은 끊이지 않는다.
화장실 휴지는 앞으로 풀리는지, 뒤에서 풀리게 해야 하는지.
시리얼을 먼저 부어야 하는지, 우유를 먼저 따라야 하는지.
핫도그에 케첩을 뿌리는지 머스터드를 뿌리는지.
피자 위 파인애플은 혁신인지 모독인지.
한국에서는 웃고 넘길 만한 일이지만, 미국에서는 작은 선택 하나가 곧 정체성이 된다. '네가 무엇을 고르느냐 = 네가 누구냐'라는 공식이 성립하는 나라다. 개인의 선택과 자유를 중시하는 문화에서, 사소한 취향은 "내가 어디에 속해 있는가"를 확인하는 방식이다.
Wawa를 좋아하든 Sheetz를 좋아하든, 그 선택은 지역, 추억, 삶의 스타일을 대변한다.
별거 아닌 듯 시작된 편의점 논쟁.
그 속에는 웃음도 있고, 철학도 있다.
어쩌면 미국이란 나라 자체가 그런 것 같다.
—별거 아닌데, 각자 진심인 나라.
별거 아닌 것을 주제로 글 쓰는 나 역시 진심이다ㅎㅎ
먹어보니 나는 여전히 큰 차이를 잘 모르겠다.
다만 이제는 친구에게 이렇게 답해줄 수 있다.
"그래, Sheetz 알지. 근데 미안, 난 Wawa 가 더 익숙하고 좋아. 피자? 파인애플 올라간 피자 좋아. 펩시보다는 코카콜라지. 그리고 치킨은… 프라이드냐 양념이냐, 그게 더 큰 문제거든. 한국식 양념 치킨이 최고다."
화장실 청소는 좀 해야겠지만..... 우리 집 휴지는 앞으로 풀린다.
자.. 투표시작 합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