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보 없는 연주
새 도시에서의 삶은 물음표로 시작되었다. 업무는 익숙했고 동료들의 미소는 따뜻했지만, 주말은 늘 문제였다.
운전을 싫어하는 나를 위해 남편은 매주 금요일이면 나를 데리러 왔다. 그의 얼굴엔 피로가 쌓여 있었고, 월요일 새벽이면 어두운 길을 달려 나를 출근길에 내려놓았다. 이 반복은 우리의 마음에 물음표를 하나씩 덧그렸다. 남편도 나도, 우린 그래도 버티는 중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마음속 물음표는 더 짙어졌다. 일은 나를 채웠지만, 주말마다 쌓이는 피로는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그러던 어느 날, 계열사 미팅에서 한 임원이 눈에 띄었다. 차분하고 명확하게 의견을 나누던 그는 회의 후 복도에서 스스럼없이 인사를 건넸다. 이야기를 나누다 알게 됐다! 그는 우리 집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살았고, 나처럼 주말부부의 물음표를 안고 살아가고 있었다.
“쉽지 않죠, 이 생활." 그는 웃으며 말했다. 그 미소는 마치 흐린 날의 햇살 같았다. 그러더니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같은 방향이니, 금요일 퇴근길과 월요일 새벽에 같이 가죠."
그의 말은 내 마음의 물음표 위에 작은 느낌표를 찍었다. 고마움과 놀라움이 조용히 퍼졌다.
그날 저녁, 남편에게 전화했다. "미팅에서 만난 분이 같은 길을 다니신대. 우리 집에서 10분 거리야. 같이 가자고 하셨어. 신기하지?"
"세상 참 좁네…" 남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잠시 후 덧붙였다. "그래도 다행이야."그 말엔 안도와 함께 미묘한 그림자가 스쳤다. 그는 이 우연을 어떤 마음으로 받아들였을까.
금요일, 그와 함께 고속도로를 달렸다. 도시 불빛이 멀어지며 차 안엔 편안한 침묵이 흘렀다. 그가 먼저 물었다.
"괜찮아요? 힘들지 않나요?"
나는 창밖을 보며 웃었다.
"처음엔 괜찮았는데, 요즘은 좀 버거워요. 그래도 일이 좋아서 버텨보는 중이에요."
"저도 그랬어요. 시간이 지나면 길이 보이더라고요."
그의 말은 담담했지만, 내 마음의 물음표를 하나씩 지워주는 듯했다.
대화는 물 흐르듯 이어졌다. 그는 나처럼 이민 1.5세대였다. 비슷한 시기에 미국에 온 우리는 공유하는 기억이 많았다. 낯선 땅에서의 외로움, 새로운 삶에 적응하던 순간들. 그는 회사 오퍼로 이곳에 왔지만, 처음엔 아내분이 힘들어하셔서 확신이 없었다 했다. 그러다 점차 두 분의 리듬을 찾았다고 했다. 정신없이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두 시간이 후다닥 지나갔다.
"이렇게 길 위에서의 시간이 재미있을 줄 몰랐네요."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리움, 그 웃음, 나도 알았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 마음의 물음표가 '조금 더 해보자'는 느낌표로 바뀌었다.
약속한 마트 주차장 멀리 남편의 차가 보였다. 그분이 먼저 내려 남편에게 인사를 건넸고, 남편도 고맙다며 손을 내밀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어색함 없이 따뜻했다. 주차장 불빛 아래, 두 사람이 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 선 모습은 묘하게 조화로웠다.
집에 돌아와 남편이 웃으며 말했다.
"이제 내가 좀 숨 돌리겠네?" 농담 같았지만, 그의 눈빛엔 그동안 쌓인 무게가 녹아내리는 기색이 있었다. "좋은 사람 만난 것 같아 다행이야, " 그가 덧붙였다. 그 말은 따뜻한 차 한 잔처럼 마음을 데웠다.
주말부부의 삶은 악보 없는 연주 같다. 때론 음이 어긋나고, 때론 박자가 엇나간다. 하지만 우연한 만남, 주차장에서의 짧은 인사, 그리고 남편의 담담한 미소가 우리만의 멜로디를 만들어간다.
그 선율 속에서, 물음표는 점점 느낌표로 바뀌며, 나도 한결 가벼운 발걸음을 내디뎠다.
그렇게, 주말부부의 연주는 오늘도 조용히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