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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모도 밥 잘해요

아빠는 더 잘해요

by Susie 방글이






골목 어귀, "엄마 손 칼국수" 간판이 정겹다. 낡은 유리문을 열면 멸치 육수 냄새가 코를 감싼다.


나무 테이블엔 김치 접시와 수저통, 주방에선 50대 아저씨가 칼국수를 썰며 "어서 오세요"라고 다정히 인사하신다. 옆엔 아주머니가 고명을 얹으며 "이쪽으로 앉으세요."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꺄~~~

근처 "할머니국밥"은 뚝배기에서 김이 모락모락. 70대 할머니가 국물을 휘젓고, 아저씨가 고기를 썰며 "맛있게 드세요!"라고 외친다.


소박한 깍두기 그릇 넘어, "할머니, 국물 더 주세요!" 소리가 공간을 채운다. 이곳들은 집밥의 온기를 나누는, 한국의 심장 같은 식당이다.


한국엔 특히 가족 명칭의 식당 이름이 많다. 독특하다.

'엄마', '할머니'가 들어간 간판은 이름만 봐도 속이 든든해진다. 할머니국밥, 엄마 손 칼국수… 집밥의 힘일까. 한 숟갈 떠먹기 전부터 마음이 따뜻해진다.


심지어 할머니표는 미국에도 계신다.

미국 뉴저지에 있는 할매 칼국수

그런데 이상하다. 간판은 온통 엄마, 할머니인데, 주방에선 아저씨들이 칼을 휘두른다.


TV를 틀어도 유명 요리사는 죄다 남자다. 이연복, 최현석, 안성재… 엄마, 할머니는 다 어디 가셨나.


이쯤 되니 궁금해진다. 엄마와 할머니는 이름만 빌려주고,아저씨들이 요리를 책임지는 한국형 가족 경영의 신세계인가?


또 웃긴 게 있다. 식당에 가면 종업원 아주머니에게 "이모~ 물 좀 주세요!"가 저절로 나온다.


나보다 어려 보여도 이모, 심지어 젊은 남자 아르바이트생이 물을 가져와도 순간 "저… 이모… 아니, 저기요!"라며 당황한다.


이모는 물도 주고, 반찬도 더 주고, "밥 더 먹어!"라며 정까지 얹어준다. 이모는 식당의 영혼 같은 존재다.


그런데 억울하다. 왜 고모는 없냐고. 이모는 간판에도 나오고, 식당에서도 대스타인데, 고모는 왜 이름 한 번 못 올리나.


나도 고모다.

우리 딸도 고모 밖에 없다.

우리 집 진짜 고모의 밥상 - 어떤가요^^

그런데 세상엔 왜 고모네 밥집이 없는 걸까.

고모도 밥 잘하고, 정 많고, 반찬 푸짐하게 준다.

앞으로 생길 푸짐한 고모네 생선구이 정식

혹시라도 식당을 열면 "고모네 생선구이 백반"으로 해주면 좋겠다는 터무니없는 생각을 해본다. 간판 밑엔 '고모가 끓여주고, 아저씨가 칼질합니다.'라고 쓰여있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순대국밥, 고모 특제 깍두기, 그리고 "고모, 국물 더 줘!"라 외치는 손님들로 가득한 식당. 상상만 해도 흐뭇하다.


또는 '아빠보쌈'이나 '할아버지네 족발'간판이 걸릴 날이 올까? 아빠가 불 앞에서 제육볶음을 휘저으며 "이거 아빠 손맛이야!"라고 웃는 식당. 할아버지가 느릿느릿 족발을 썰며 "옛날 맛이야, 많이 먹어!"라고 말하는 식당.

아빠 보쌈을 기다리며

그땐 어떤 정이 담길까? 고모네 생선구이 백반을 꿈꾸는 나처럼, 누군가는 아빠와 할아버지의 밥상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빠표 아귀찜과 잡채 그리고 김치까지

우리 딸은 집에서 아빠가 해주는 음식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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