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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SKI Sep 09. 2021

촬영장에 모델이 안 오면? 마케터의 복장터지는 ssul

벌써 집에 가고 싶은 마케터 이야기


마케터로 살면서 가장 신나는 경험 중 하나는 바로 광고 촬영장에서 연예인을 볼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것도 요즘 가장 인기 있는 연예인을 쌩눈으로 직관할 수 있다는 점이 포인트죠! 아, 이거 너무 좋아하는 티 내지 말아야지 하더라도 내가 열광하던! 바로 그 사람이(?) 눈앞에서 연기를 하고 있는 모습이라니요. ‘이거 실화냐’를 외치며 입꼬리가 올라가다 보면, 일 년에 며칠 안되지만 이것 참 보람 있게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만 항상 좋은 일만 있는 건 아니죠. 인간사 다 그렇듯 바로 연예한테 겪는 악몽 같은 일도 있어요. 왜 그런 찌라시 한 번쯤은 보셨죠. 누구는 A의 갑질 때문에 촬영장에서 울어 버렸다거나, 또 B는 알려진 것과는 달리 포악한 성격에 스탭들을 덜덜 떨게 했다거나 하는 뭐 그런 거 있잖아요. 저도 카톡방에서 누군가 전달했던 출처 불명의 '받은 글(?)'을 봤던 기억이 있네요. 어쩌다가 아는 얘기가 나오면 “어머어머 이거 어떻게 알았대?!”를 외쳤던 것도 같아요. 어쨌든 촬영장에서는 그렇게 뜻하지 않은 애환이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이 번 글에서는 바로 그 부분! 출연 모델 때문에 겪었던 애환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속이 까맣게 탔던 것 같기도 했던 바로 그날, 끔찍했던 그날로 시간을 휘리릭 돌려 보겠습니다. 




그날은 크리스마스이브였어요. 남양주에서 가평으로 이어지는 국도변이었죠. 가로등도 없는 길 한쪽에 차를 세우고 라이트를 끄니 눈이 내리더라고요. 상상이 가세요? 하늘은 까만데 가로등도 없는 지방도에 눈이 내리는 거죠. 몇 년만의 화이트 크리스마스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건 저는 전혀 기쁘지 않았다는 거예요. 설레거나 개뿔 낭만적이지도 않고 시계만 보고 있었죠. 속이 타들어가고 있다는 걸, 누가 차 유리창 문을 똑똑 두드릴 때 새삼 느꼈어요.


“크리스마스라 차가 많이 밀리나 본데요?” 


네. 저는 그날 광고 촬영장이었습니다. 그리고 모델을 기다리고 있었죠. 아무리 연예인이지만 촬영 날 펑크 내는 일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저도 수십 편의 촬영장에 나가봤지만 이런 종류의 일은 아주 드문 일입니다. 다행히 메인 모델은 아니었고 나름 비중 있는 조연 모델이었는데 연락두절이었죠. 대행사, 모델 에이전시 등등에서 집이며 회사며 동분서주했는데 결국 만나지 못했습니다. 




여기서 잠깐 마케팅 토막 상식을 말씀드리자면, 광고 촬영은 절대로 미룰 수 없는 핵심적인 요소가 있습니다. 첫째로 보통 일정은 긴급으로 진행됩니다. 아삽 ASAP이라고 아시죠? 이슈를 물고 화제를 일으켜야 하는 특성상, 게다가 경쟁사와 비슷한 아젠다를 가지고 빤한 내수시장에서 화제몰이를 하고 있는 구조상 매번 그렇게 아삽으로 진행되는 것 같아요. “라떼는 말이야 3일 만에 촬영하고 지상파 온에어 시켰어”라는 말을 저는 너무 많이 들었어요. 평생 먹을 라떼 다 말아먹을 듯이 말이죠. 


사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출연 모델들과 잘 나가는 감독님들이 모두 다 모일 수 있는 딱 하루를 빼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잘 나가는 분들의 공통 점은 모두 바쁘다는 것인데요. 어떤 감독님은 이미 다음 달 스케줄에 해외 스케줄까지 깨알처럼 꽉 차 있는 걸 봤습니다. 핫하다는 연예인이야 말할 것도 없고요. 그런 분들을 모두 한자리에 불러 모으는 게 제일 어려운 일 아닌가 싶습니다. 때문에 “오늘 펑크 나면 내일 하지 뭐”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냥 오늘 다 같이 죽자!”라는 심정이 차라리 솔직한 심정이겠네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비용 문제가 있습니다. 광고 촬영 하루에 지불하는 돈은 억대를 넘나 듭니다. 무슨 말이냐면 하루 촬영한 거 없었던 일로 하고 다시 촬영을 잡아야 한다면 부대 비용이 억대로 추가 발생할 수 있다는 말이죠. 상상이 가시나요 어억! 그러니까 내 월급이랑 비교하자면… 


결국, 긴급한 일정과 가능한 스케줄과 비용을 고려해 봤을 때 촬영 당일이 아니라면 추가 촬영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입니다. 모델의 연락 두절에 제 속이 까맣게 타들어 간 것이죠. 다음은 없으니까요. 


Now or Never! 


긴급하게 대책회의를 했습니다. 대안 모델을 세워야 하는 상황이었죠. 비중 있는 조연이었으니 그 정도 역할은 소화할 수 있으면서 크리스마스이브에 스케줄이 없고 지금 당장 가평까지 달려와 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했습니다. 아 그리고 빠르게 보고를 해서 경영진의 마음에도 쏙 들어야겠죠. 과연 그게 누굴지??


그렇게 호떡집에 불난 듯 일어난 일들을 우격다짐으로 수습하고 나서 그렇게 대안 모델을 기다리던 차였습니다. 그 와중에 주연 모델이 열 받아서 가버리는 건 아닐지 노심초사하면서 말이죠. 생각해 보니 눈치 볼 사람이 여기저기 한두 사람이 아니었네요. 어쨌든 50여 명의 스텝들은 캄캄한 국도변에 나란히 차를 세우고 숨죽여 기다렸습니다. 그 시간이 그렇게 길 수가 없었어요. 이번 촬영 망하면 회사에는 뭐라고 말할지,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하늘에서 떨어지는 눈송이가 걱정송이처럼 보일 정도였다니까요. 



“모델 도착했습니다.” 


후우. 드디어 도착했나 보네요! 조감독의 목소리가 들리자 스탭들이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매복하던 군인 같은 이들이 하나 둘 조명을 켜고 세팅을 다시 시작합니다. 그렇게 촬영은 새벽까지 이어졌죠. 촬영 중에서도 눈송이는 꾸준하게 떨어졌습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허겁지겁 온 모델은 나름 역할을 잘 소화해 냈고 촬영도 순조롭게 진행됐다는 점입니다. 모두에게 크리스마스는 소중하니까요. 얼른 퇴근해야 사랑하는 사람도 볼 수 있는 거잖아요. 그래도 ‘어쨌든 촬영은 마무리된다’는 전설 같은 일이 다시 한번 눈앞에서 시연되었음에 안도할 따름이었습니다. 


캠페인을 준비하고 제작 과정을 쭉 따라가다 보면 돌발상황은 언제나 있기 마련인 것 같아요. 큰 사건이냐 작은 사건이냐의 차이만 있을 뿐 돌발상황 없는 캠페인은 확실히 없었던 것 같아요. 결국은 제가 받는 월급은 돌발상황을 수습하고 받은 만큼 책임을 지라는 의미가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그날 밤 저와 함께 숨죽여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맞이했던 50여 명의 스탭들이야 말로 바로 그런 프로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준 분들이라는 말은 꼭 하고 싶네요. 


아, 그래서 그 광고는 어떻게 되었냐고요? 어떤 광고였는지 구체적으로 밝힐 수는 없지만 나름 흥행몰이에 성공했습니다. 이건 분명한 사실이었고요. 긴급 대체된 조연 모델의 역할도 한몫했다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그에겐 나름 크리스마스 선물 같은 하루가 아니었을까요. 물론 저한테도 그렇고요.

인생은 참으로 알 수 없습니다. 광고도 알 수 없고요. 

그래서 재밌기도 하고 쫄깃하기도 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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