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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회복기의 노래. 2008」 - 한강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를 읽었다옹

by 수상한호랑이

은색 꼬리날개가 반짝이는

비행기가 날아가는 것을 본다


오른쪽 산 뒤에서 나아와

새털구름 안쪽으로 살라진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은색 꼬리날개가 빛나는 비행기가

같은 길을 긋고 사라진다


활활

시퍼렇게

이글거리는 하늘

의 눈〔眼〕 속


어떤 말,

어떤 맹세처럼 활공해

사라진 것들


단단한 주먹을 주머니 속에 감추고

나는 그것들을 혀의 뒷면에 새긴다


감은 눈 밖은 주황빛,

내 몸보다 뜨거운 주황빛


나를 긋고 간 것들


베인 혀 아래 비릿하게 고인 것들


(고요히,

무서운 속력으로)


스스로 흔적을 지운 것들




2025.3.7. 자욱한 안개가 당장 눈앞을 흐리게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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