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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저편의 겨울7 ― 오후의 미소」 - 한강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를 읽었다옹

by 수상한호랑이

거울 뒤편의

백화점 푸드코트


초로의 지친 여자가

선명한 파랑색 블라우스를 입고

두 병째 맥주를 마시고 있다


스티로폼 접시에

감자튀김이 쌓여 있다


일회용 소스 봉지는 뜯겨 있다


너덜너더 뜯긴 경계에

달고 끈끈한 소스가 묻어 있다


텅 빈 눈 한 쌍이 나를 응시한다


너를 공격할 생각은 없어

라는 암호가

끌어올린 입꼬리에 새겨진다


수십 개의 더러운 테이블들이

수십 명의 지친 쇼핑객들이

수백 조각의 뜨거운 감자튀김들이


나를 공격할 생각은 마


너덜너덜 뜯긴

식욕을 기다리며,




2025.3.25. 갖가지 심경이 아로새겨진 총천연색 용광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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