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라늄 - Geranium
노마가 걸어온 길은 코펜하겐의 미식 문화를 혁신하며 큰 변화를 남겼고, 노마 2.0이 마침표를 찍으며 파인 다이닝과 지속 가능성을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이 질문의 답을 찾아가며 새로운 길을 열고 있는 레스토랑 제라늄(Geranium)이 있습니다.
제라늄은 코펜하겐 중심의 풋볼 경기장 파르켄(Parken) 스타디움 8층에 위치해 있어, 창밖으로 보이는 푸르른 공원과 나무들 사이로 계절의 변화를 느끼고, 도시의 녹색 구리 지붕과 멀리 보이는 외레순 풍차까지 멋진 전망을 즐길 수 있는 곳입니다. 이는 제라늄 전통과 혁신을 조화롭게 결합한 메뉴를 제공하는 것처럼, 도시 생활과 자연을 조화시키려는 비전을 반영합니다. 셰프 라스무스 코포드(Rasmus Kofoed)와 소믈리에 쇠렌 레데트(Søren Ledet)가 이끄는 이곳은 2016년 덴마크 최초의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이 되었으며, 2022년에는 'World' Best Restaurant'으로 선정된 바 있습니다.
셰프 코포드에게 제라늄은 자신을 확장한 공간과도 같습니다. 코포드는 이곳의 메뉴에 대해서 '나 자신, 내가 누구인지, 요리사로서 그리고 인간으로서 어떻게 진화하고 있는지를 반영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2021년 제라늄은 더 이상 고기를 제공하지 않기로 하고, 대신 북유럽 해산물과 덴마크 및 스칸디나비아의 유기농, 바이오 다이내믹 농산물*을 사용한 더욱 창의적이고 지속 가능한 요리를 선보이기 시작합니다. 이는 지난 5년 동안 고기를 먹지 않은 셰프 자신을 따른 결정이며 레스토랑 제라늄이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단계였습니다.
이 대담한 변화는 파인 다이닝이 진화하는 방향을 보여줍니다. 제라늄은 고기가 없는 메뉴로도 파인다이닝에서 성공할 수 있음을 스스로 증명하며, 지속 가능성에 대한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습니다. 무엇보다 이러한 변화가 레스토랑의 창의성과 혁신을 여전히 유지하면서 달성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합니다.
* 바이오 다이내믹 농산물 : 일반 유기농과 비슷하지만, 더 엄격하고 통합적인 농업 방식을 따라 생산하는 농산물로 자연과 우주의 리듬, 생태계의 순환에 따라 농업이 이루어지는 것이 특징입니다.
제라늄(Geranium)의 메뉴
제라늄에서는 약 20가지 코스로 구성된 정성스러운 메뉴를 제공하고 있으며, 각 요리는 한두 입 크기로 서빙됩니다. 전체 식사는 약 3시간 동안 진행되며, 계절에 따라 테마가 바뀌는 점이 특징입니다. 현재 진행 중인 ‘가을의 우주(Autumn Universe)’ 테마는 자두와 숲 속 베리 등 초가을의 풍미를 디저트 코스에 담아내고 있습니다. 이곳은 와인 페어링 외에도 각 코스에 맞춘 직접 만든 주스와 발효 음료 등 창의적인 무알콜 옵션도 제공하고 있습니다. 현재 메뉴의 음료는 구운 예루살렘 아티초크에 비트 뿌리와 배 주스를 섞은 새콤한 음료로 신선한 맛을 선사합니다.
레스토랑의 시그니처 요리 중 하나인 레이저 클램(Razor Clam)은 어린 시절의 추억을 가져오며, 밀가루로 만든 식용 조개껍질 모양에 해조류와 숯을 칠해 실제 조개와 같은 모습을 재현한 요리입니다. 안에는 레이저 클램 타르타르와 사워크림이 담겨 있어 풍부한 맛의 조화를 이룹니다. 과거의 인기 메뉴로는 바삭한 해조류에 절인 청어와 딜 줄기, 아쿠아비트를 곁들인 ‘덴마크의 전통(Danish Tradition)’이 있으며, 덴마크에서 가장 오래된 바이오 다이내믹 농장 중 하나인 키셀고르덴(Kiselgården)에서 재배한 꽃 브뤼셀 스프라우트, 부추, 양파로 구성된 ‘키셀고르덴의 윈터 그린(Winter Greens from Kiselgården)’도 있습니다.
제라늄(Geranium)의 변화의 의미
제라늄이 메뉴에서 고기를 없애기로 한 결정이 처음 알려졌을 때, 논란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일부 고객들은 그에게 분노에 찬 이메일을 보내기도 했고 어떤 사람은 레스토랑이 실패하기를 바랐습니다. 셰프 코포드는 이 같은 결정이 전통적인 덴마크 요리에 익숙한 누군가에게는 마치 그들의 정체성을 빼앗가 가는 것 처럼 느껴질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음식을 선택하는 것은 개인의 정체성, 가치관과도 깊이 얽혀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라늄의 변화는 지속 가능한 식생활을 향한 전 세계적인 움직임과 같이 합니다. 많은 덴마크인들이 여전히 육류 섭취를 줄이는 것을 주저하고 있지만 새로운 젊은 세대는 이 흐름을 받아들이며 육류를 포기하지 않고도 유연한 라이프스타일을 수용하고 있습니다. 또한 전통적인 생산자들 역시 이에 서서히 적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유럽 최대 유제품 그룹인 Arla는 2020년에 식물성 제품군인 Jord를 출시한 바 있으며 Lurpak는 2024년, 영국에서 자사의 대표 제품인 버터의 비건 버전을 출시했습니다.
덴마크는 오랫동안 높은 육류 소비로 유명한 나라였습니다. 돼지고기는 덴마크 요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며, 덴마크인들은 돼지고기 샌드위치나 미트볼과 같은 전통 요리를 즐기며 자라왔습니다. 덴마크는 세계 최대의 돼지고기 수출국 중 하나로, 이는 국가 경제에도 중요한 비중을 차지합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동안 환경적 책임을 다하기 위한 움직임으로 식물 기반 식단으로의 전환이 점차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는 기후 변화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나타난 현상으로, 덴마크는 유럽에서도 가장 선진적인 환경 정책을 시행하는 국가 중 하나입니다. 2023년 덴마크 정부는 '식물 기반 행동 계획(Plant-Based Action Plan)'을 발표하여, 국가 차원에서 지속 가능한 식습관을 장려하고 있습니다. 이 계획은 농업과 식품 생산에서 발생하는 탄소 발자국을 줄이고, 국민들이 더 다양한 식물 기반 식품을 선택할 수 있도록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축산업은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14.5%를 차지하며, 소고기를 먹는 것을 식물성 대안으로 대체하는 것만으로도 하루 동안 개인의 탄소 발자국을 거의 절반으로 줄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파인다이닝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노마와 제라늄 같은 코펜하겐의 선구자들은 그 변화를 어떻게 실현할 수 있을지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과거의 방식이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책임감 있는 파인다이닝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점을 증명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