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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stain Life Jan 24. 2018

파리의 산책자

파리 찬가





 파리는 산책의 도시다. 무턱대고 걷다가 길을 잃어버려도 좋으며, 걸어서 어디든 갈 수 있지만 아무 데도 가지 않아도 괜찮은 곳. 북역_Gare du Nord 의 여정을 이틀 남기고 하루는 무작정 걷기로 했다. 걷다 지치면 지하철을 타거나 버스에 올라 파리의 흐르는 풍경을 관망키로 하며.


Palais Garnier, Paris, 2017



 파리에 머무르며 스쳐간 곳을 서울의 특정 장소와 짝짓는 습관이 생겼다. 이를테면, 시내 중심가의 '오페라 가르니에_Palais Garnier'는 서울 광화문 대로의 '세종문화회관' 정도로 인지하는. 길 위의 산책자가 되기로 한 오늘만큼은 무심코 이곳을 스쳐 지나가리라. 푸른 하늘을 향해 손짓하는 황금빛 천사 너머 오페라의 유령이 토해낸 미성 美聲을 들었노라 확신하며.



 루브르에서 가장 먼저 랑데부 한 석상. 군중의 시선이 한 곳으로 수렴된 상황을 퍽 진부하다 느낀 산책자의 반동 기질. 


Louvre, Pyramid and crowd, Paris, 2017


바로, 루브르와 피라미드 그리고 군중의 삼위일체.



루브르궁을 짝지을 서울의 특정 장소는 아무래도 떠오르지 않는다.



 루브르 인근의 노천카페. 이곳에 자리를 잡고 책을 편 뒤 타바코라도 하나 물어야 할 듯한 분위기에 압도되는 건 시간문제. 아마도 다음 기회에.




 대로변을 걸으며 살며시 허기가 밀려온다. 아침에 먹다 남은 빵과 샌드위치를 가방에서 꺼내 허기를 달랜다. 도시와 나는 한층 가까워진 듯도 하다. 짧은 여행 일정에 향수병이 도질 것이라곤 생각지도 않았으며 실제로 나는 도시의 매력에 푹 빠져 있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현듯 눈에 띈, 잘 보이지도 않는 작은 간판에서 디아스포라 diaspora를 향수한다.



 호기롭게 산책자가 되기로 다짐했건만, 피로감이 밀려오기 시작한 정오 무렵 우리를 구원해 준 건 지하 세계의 메트로. 목적지는 번화가를 약간 벗어난 그랑 팔레_Grand Palais. 메트로 블루 라인의 '샹젤리제 클레망소_Champs-Elysse Clemenceau' 역 인근.



Irving Penn,

Grand Palais




파리로 나들이 온 어빙 팬 Irving Penn을 만나기 위해서.



 시간을 지정해 티켓을 예매하면 줄을 선 뒤 차례로 입장하는 식이다. 내부 관람객 통제는 파리 박물관에서 흔한 일. 기다리는 뭇사람의 태도는 평온할 따름. 우리 뒤편에 선 프랑스 말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중년의 여인들은 아마도 프랑스 남부, 혹은 서부지방에서 고국의 심장으로 가벼운 여행을 나선 자국민일 것이다. 이방인 틈에서 왜인지 마음이 편해온 건 아마 그녀들이 풍기는 아늑함 때문이었겠지.



어빙 팬은 패션 매거진 커버의 스타일 창시자이기도 하다.


Lady picturing Irving Penn in Exhibition, 2017, paris




나에겐 스틸라이프에 관한 무한한 영감을 선사해 주었으며,



유명 인사들의 자연스러운 모습과 내면의 영혼을 포착해낸 포트레이트의 거장.



김포토에게는 천사의 숨결을 불어넣은 포토그래퍼.



 가방의 샌드위치와 빵조각 따위는 동이 났다. 팔라스 인근엔 상가가 없다. 어딘가로 이동하기엔 혈당 저하로 인해 어지럼증이 도진 상태. 길 건너 쁘띠 팔레를 지나치다 박물관 내 카페테리아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Petit Palais





 아마도 진정한 산책자의 모습은 이런 것일까. 뮤즈, 혹은 여신의 형상인듯한 석상의 비호 아래 러닝화를 신고 근육을 이완하는. 가로등 앞에 놓인 입간판이 바로 우리가 발견한 카페테리아의 단서. 쁘띠 팔레로 말할 것 같으면 서울시립미술관 정도가 되지 않을까. 파리시에서 운영하는 상설 전시관. 입장은 무료이며, 기획 전시는 티켓팅을 해야 한다.



Cafe du Jardin




 하루에도 서너 차례 광질이 변화하는 파리의 날씨. 잿빛 하늘의 흐린 분위기는 파리의 우울을 증폭하는 것만 같다. 보들레르는 허름한 뒷골목을 배회하며 파리의 우울을 사유했건만, 화려하고도 사치스러운 궁전 또한 그 분위기 속에 비켜서 있지는 않는 듯.



 카페테리아는 만원이다. 메뉴판에서 눈여겨본 파리지앵 샐러드는 준비한 물량이 동났다고 한다. 서울에서는 그토록 줄 서기를 꺼려하던 내가 30분이 넘도록 북유럽에서 온 키 큰 여행자 가족 틈바구니에 둘러싸여 하세월 기다릴 수 있던 건 낯선 공기가 선사한 선물. 여행지에선 이토록 마음이 느긋해지다니. 간판에 쓰인 프랑스 말을 영어식으로 대충 따라 읽는 여행자에게 진땀을 빼며 주문을 도와준 카페테리아 점원의 멋쩍은 미소를 추억한다.





쁘띠 팔레의

상설 전시




 파리의 예술적 자양분은 여느 메트로폴리탄의 문화를 구축하는 구심점이 되었고 누군가는 지금의 파리를 한 시대를 풍미했던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 취급을 할 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내가 느낀 파리는 유럽인들이, 아니 전 세계인들이 여전히 사랑해 마지않는 도시라는 것이다. 과거, 부르주아의 포트레이트는 21세기 현대인의 자화상과 나란히 공간을 채운다. 대조적일 것도 없다. 파리는 정체되어 있지 않다. 일상과 예술,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며 여전히 흘러간다. 



 우연히 만난 모네. 오르셰 미술관을 관람하지 못한 아쉬움은 어느덧 사라지고. 


Arc de Triomphe_La Marseillaise, Paris, 2017


Tour Eiffel, Paris, 2017


해 질 녘 파리의 상징과도 같은 개선문과 에펠탑을 거닐다가.



 촉촉한 나트륨 등불이 일렁이는 밤의 거리를 지나,



  지하의 세계로 연결된 구원자를 통해 숙소로 향하는 길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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