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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stain Life Sep 16. 2019

덩페흐호텔의 고양이

Chat de l'hôtel de Denfert





덩페흐 호텔로 걸어가는 길이었다. 고즈넉한 거리는 파리의 여느 관광지처럼 사람들로 북적이지 않았고, 영화 아멜리에 나오는 파리의 미장센처럼 예쁘고 아름다웠다. 비로소 도착한 덩페흐 호텔의 컨시어지. 



그대로 잠들어 버리고 싶었지만, 침대에 몸을 뉘어 잠시 온몸을 올곧게 펴는 것만으로도 만족하는 것은 지금 나는 파리에 있기 때문이다. 호텔 바로 뒤엔 장 폴 사르트르와 보들레르가 잠든 몽파르나스 공원묘지가, 서머타임은 절정에 치닫고 있다. 




몽파르나스 묘지로 향하는 길목은 고요했다. 파리의 거리에서 한적함을 느낀 건 처음 있는 일. 때마침 프랑스는 징검다리 연휴 기간이라고 했다. 금요일 휴가를 내고 교외로 짧은 바캉스를 떠난 파리지앵들이 선물한 고요함이었다고나 할까. 플라타너스 고목의 청량한 속삭임, 건조한 햇살, 부서지는 태양. 방황하듯 배회하는 위산 과다증 남편과 늘어진 나.


cimetière du Montparnasse / 몽파르나스 묘지공원




가벼운 산책 뒤 호텔로 돌아가려던 순간 우연히 마주한 장 폴 사르트르가 키스를 건넨다. 



호텔로 돌아와 테라스를 활짝 열어젖히자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덩페흐 호텔의 고양이. 사실은 하룻 저녁 묵을 호텔을 검색하던 중 호텔 소개 페이지에 나타난 이 녀석의 실루엣에 홀려 온갖 선택 장애를 딛고 선택한 덩페흐 호텔이었다.



고양이를 마주하자 굳어 있던 마음이 사르르 녹는다.  덩페흐 호텔의 고양이와 조우한 뒤 몸과 마음의 피로가 한결 누그러지던 찰나 살며시 식욕이 돋는다. 오후 8시를 향해 가지만 여전히 태양은 가득하다.


우리는 언제나 파리에서 PHO를 찾는다.


파리의 소울푸드가 되어버린 포. 파리에서 레스토랑을 정할 때 구글 지도를 켜고 pho를 검색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 버렸다. 파리 2구에 찜해둔 피자가게 앞 베트남 식당도 잘 있겠지. 2주 뒤에 다시 파리로 돌아와 2년 만에 다시 그곳을 찾아갈 생각이다. 다음에 파리를 방문하게 된다면, 몽파르나스의 쌀국수를 추억하며 덩페흐의 거리를 찾아오겠지. 중첩된 여행의 기억이 차곡차곡 쌓여만 간다.



오후 아홉 시가 되어야 비로소 활기를 띄는 레스토랑. 하지를 향해 태양의 꼬리가 길어지는 이 시기에는 저녁 식사가 의례히 늦어지는 듯하다.



5월의 마지막 날, 금요일. 파리의 덩페흐, 오후 8시와 9시 사이의 빛. 파리지앵은 제라늄을 퍽 사랑한다. 자신만의 작은 발코니를 가꾸는 그들.



저무는 해를 쫓아 몽파르나스 타워까지 발길이 닿았다. 연휴의 여유로움이 거리 위로 넘쳐난다. 두 해 전까지만 해도 유심히 찾아야 눈에 띄던 쿠스미 티 스토어는 파리 전역에 퍼져있다.



젊은 파리지앵들은 에코백과 캔버스 운동화로 멋을 부린다. <안전제일> 마크가 자수로 새겨진 군청색 작업복을 걸친 힙스터가 거리를 활보한다.



언제 어디서나 시선을 사로잡는 올드카와 그라피티 아트.



저무는 해를 뒤로 하고 호텔에 도착했을 땐 건물에 비친 노을의 반사광이 우리를 맞이했다. 그날 밤, 고양이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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