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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stain Life Aug 01. 2021

만느 거리의 아침

프렌치 낫 프렌치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비행기에 오르면 지루한 비행시간이 그야말로 공중분해 될 것이라 여겼다. 낯선 대륙에 도착해 피로를 인내하고 ‘파리의 시간’을 따른다면 시차 적응에 성공하리라 생각했다. 그런데도 일상의 충직한 궤도는 여전히 작동 중이다. 절로 눈이 떠진 시간은 새벽 세 시, 서울은 오전 열 시다. 늦잠에서 깨어나 굶주린 배를 부여잡고 일어날 시간이다. 절정으로 치닫는 여름, 오직 빛으로 가득한 파리에는 어둠이 고작 서너 시간 내려앉을까. 만사드 지붕 너머 아침노을이 태양의 얼굴을 끌어 올리고 있었다. 새벽의 푸른 그림자로 휩싸인 창밖은 어둠이 완연이 물러간 풍경이다. 여름의 파리에서 어스름한 밤을 마주할 수 있긴 한 것일까? 그대로 다시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 빵집이 문을 열 때까지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므로.



정오의 대낮을 방불케 하는 날카로운 햇살이 커튼 사이로 침투한 순간 허겁지겁 시계를 확인했을 때가 오전 일곱 시다. LG 마크가 빛나는 텔레비전의 전원을 켜자 스팅의 <English Man in New York>이 튀어나왔다. 스팅의 일대기를 다룬 다큐멘터리였다. 익숙한 팝송 사이로 흐르는 프랑스어 내레이션은 그저 또 다른 노랫말처럼 들렸다.



우리는 엘리베이터를 사용하지 않고 중앙 정원이 내려다보이는 계단을 따라 로비로 내려갔다. 혹시나 창밖으로 덩페흐 호텔의 고양이와 마주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서다.  고양이는 여전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1층 로비 레스토랑 바에서 커피잔을 닦고 직원과 눈이 마주쳤다. 나는 아침 식사가 가능한지 물었다. 그는 준비한 분량이 이미 동났다고 답했다. 전날 체크인을 할 때 컨시어지 직원이 방을 내어 줄 수 없다는 농담을 건네지만 않았어도 아침 식사를 예약했을 텐데. 프런트맨이 펜을 꾹꾹 눌러가며 수기로 전표를 작성할 때 프랑스 억양의 영어로 차근차근 이어가던 말이 떠올랐다. 여러 호텔이 즐비한 다게르가(Rue Daguerre)에 훌륭한 식당이 많이 있지만, 덩페흐 호텔 레스토랑에 실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약을 해두는 편이 좋을 거라며. 슬며시 들여다본 레스토랑 내부가 아기자기했던 탓에 아쉬움은 증폭됐다. 별 수 있나. 거리로 나서는 수밖에. 



휴일을 맞은 다게르가의 아침. 한산한 거리 틈에서 하루를 여는 상인들의 분주한 몸짓은 골목에 생기를 더하고 있었다.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로티셰리 앞에 발길을 멈춰 섰다. 위로 갈 수록 바싹하게 구워지는 닭고기. 쉴 새 없이 돌아가는 퍼포먼스. 아래로 떨어지는 육즙을 입고서 노릇하게 구워지는 감자. 오븐 앞에서 한참을 서 있던 우리 부부가 눈에 띄었는지 고기를 손질하던 점원이 나와 인사를 건넨다. 우리는 멋쩍은 미소로 화답할 뿐이다. 세 시간 뒤면 호텔 체크 아웃을 하고 이 거리를 떠나야 한다는 사실이 왠지 서글펐다. 몽파르나스 번화가에서 비켜선 이 작은 거리가 이토록 고즈넉하며 아름다운 곳일 줄은 미처 몰랐고, 프로젝트를 마무리 지어야 하는 압박에서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브뤼셀 행 기차에 몸을 싣기 전까지 여덟 시간이 남았다. 14구 ‘만느 거리(Avenue Maine)’와 ‘다게르가(Rue Daguerre)’를 머릿속으로 되새기며 훗날을 기약한다.




해산물 샐러드라면 구미가 살짝 당겼지만, 분주히 개장 준비 중인 점원을 향해 어설픈 프랑스어와 영어를 섞어 주문을 건네는 건 누가 될 것 같았다. 파리의 아름다운 노천카페는 직원들의 노고로 하루하루 만들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목격하며, 다게르가 끝자락에 도달했다. 길 건너 맥도널드가 바로 앞이다. 17시간 전 남편과 접선한 장소이기도 하다. "덩페흐 로슈(Denfert-Rochereau)역 광장으로 나오면 코너에 있는 맥도널드 앞에서 만나자". 


여전히 아침 식사 거리를 찾지 못했다. 우리는 왔던 길을 되돌아 호텔 방면으로 걸어가기로 했다. 사람들이 가장 줄을 많이 선 상점으로 들어가 가장 잘 팔리는 음식을 집어 들고 덩페흐의 고양이가 있는 호텔 뒤뜰에서 아침 식사를 할 것이다. 때마침 편안한 차림의 파리지앵이 거리낌 없이 드나들던 빵집에서 아침을 해결하기로 했다. 소화기 계통 이슈를 품고 있던 우리 앞에 펼쳐진 풍요 속 빈곤. 위산 과다증과 신경성 위염에 빵집이 퍽 좋은 대안은 아니었다. 그나마 통밀로 만든 곡물 빵 샌드위치와 신선한 제철 야채가 들어간 키쉬를 골랐다. 초여름의 제철 산딸기 타르트를 먹어보지 못한 것은 두고두고 떠오를 것이다. 고소한 풍미의 버터 향 가득한 크루아상을 뒤로한 것 또한. 이른 아침 갓 구워 나온 1유로에도 못 미치는 바게트 더미는 줄을 서서 계산할 동안 순식간에 바닥을 드러냈다. 돌아가는 길, 가판대에 차고 넘치는 납작 복숭아 두 개를 동전 몇 푼과 바꿔 덩페흐 호텔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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