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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수변 Oct 12. 2024

40살까지 엄마 옆에 잘거야

엄마의 이직과 김풀빵의 성장

김풀빵(가명·2015년생)은 꽤 오랫동안 안방에서 엄마, 아빠와 함께 잤다. 퀸사이즈 침대와 수퍼싱글 침대가 나란히 붙은 이른바 '패밀리침대'에서, 엄마와 풀빵이 퀸 침대에 눕고 아빠가 수퍼싱글 침대에 누워 자길 수년. 나는 아들의 잠자리 독립이 너무 늦어지는 게 걱정되어 일단 풀빵에게 아빠와 자리를 바꾸라 했다.

대충 이렇게 생긴 패밀리침대... (사진출처: 한샘몰 store.hanssem.com)


그래봤자 두 침대가 꼭 붙어있으니 여전히 엄빠 옆에서 자는 것인데도, 아들은 끈질기게 저항하다가 마지못해 수퍼싱글로 옮기더니 서럽게 훌쩍거리며 울었다.


- 야 김풀빵, 너 애기니? 니 친구들은 이제 자기 방에서 잘걸?

- 아닌 애들도 있어. 그리고 그건 사람마다 다 다른거야.

- 내년에 초등학교 입학할거고 니 방도 생길건데 언제까지 엄마한테 안겨 잘거야?

- (곰곰이 생각) 몰라 한 40살까지?


지져스..40살 아저씨가 된 아들이 품에 안겨 자는 모습을 상상하며 순간 말문이 막혔다. 아들아, 그때가 되면 넌 그런 거 아주 질색할텐데.


어느덧 초등학생이 된 아들은 자기 방으로 옮겨진 수퍼싱글 침대에 혼자 잔다. 여전히 잠들 때까지 엄마나 아빠 중 한명이 옆에 있어줘야 하지만(친구들에겐 비밀인 듯함), 더 이상 마흔까지 엄마 옆에서 잘 생각은 하지 않는다.


풀빵이 초2가 되던 해 육아휴직을 했다. 육아휴직을 쓸 수 있는 마지막 해였다[주1]. 그리고 휴직기간이 끝나갈 무렵 집 근처 대학교(내가 학부 졸업한 학교이기도 함)로 이직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아이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도 영향을 미쳤다.


내가 로펌 어쏘[주2]로 일하고 있던 풀빵의 아기 시절엔, 사실상 육아는 내팽개쳤다고 보는 게 맞다. 아기는 친정에 맡겨놓고, 풀빵에겐 '주말마다 얼굴보는 아줌마' 같은 존재로 살았더랬다. 스타트업 사내변호사로 자리를 옮긴 뒤에는 비로소 내 삶에도 저녁이란 게 생기며, 상황이 나아지긴 했다. 그래도 여전히 불안정한 업무상황으로 내 시간과 관심을 풀빵에게 충분히 할당하지 못할 때가 많았었다.


휴직기간 동안 사실상 처음으로 엄마와 매일 아침, 저녁을 함께 하게 되었던 김풀빵. 엄마가 다시 회사를 다닐거라는 말에 풀빵은 약간 아쉽고 불안한 기색을 비쳤지만, 막상 출퇴근하는 모습을 보더니 내심 안심하는 기색이었다. 매일 오차없이 칼 같은 퇴근, 까진 아니지만 엄마가 안정적으로 일찍 집에 들어와 함께 저녁을 먹고 오늘 하루 어땠는지 이야기하는 일상이 지켜졌기 때문이다. 퇴근 후나 주말에 회사 일로 딴 생각에 사로잡혀 가족들 말에 건성으로 반응하거나 갑작스럽게 업무 연락을 받는 일도 (한번도 없었다면 거짓말이지만) 없었다.


출근을 시작하고 얼마 뒤 주말에 남편과 풀빵을 데리고 학교로 마실가서 산책도 하고 사무실도 보여줬는데, 그날 풀빵이 쓴 일기를 대충 기억나는대로 재구성하면 이렇다.


엄마가 회사를 옮겼다. OO대이었다. 엄마, 아빠와 함께 OO대에 놀러가서 잔디밭을 보고 엄마가 일하는 곳에 갔다. 엄마 책상에는 전화기 옆에 알 수 없는 것이 놓여있었다. 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나와서 파스**에 가서 아이스코코아를 마셨다. 재미있었다.


아들아, 좀더 정성껏 잘 쓸 수는 없겠니. 엄마는 어렸을 때 일기를 참 잘 썼단다.


풀빵의 어린시절은 유한하다. 마흔 살까지도 엄마에게 안겨 자고 싶을거라 믿는 천진한 시절은 짧고 반짝거린다. 해가 바뀔 때마다 아이가 몸도 마음도 얼마나 훌쩍 커있는지 보면 깜짝 놀란다. 이제는 의젓하게 자기 방에서 혼자 자는 김풀빵. 여덟 살 시절은 여덟 살 시절대로, 아홉 살 시절은 아홉살 시절대로 제각각 어찌나 짧고 소중한지. 아이를 위해 휴직도 하고 이직도 한 것처럼 얘기하고 다녔지만 사실 아이보다는 나를 위한 것들이었다.


[주1] 육아휴직은 자녀가 만 8세 이하 또는 초등학교 2학년 이하일 때까지 쓸 수 있다(「남녀고용평등과 일ㆍ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제19조 참조). 월 통상임금의 80%에 해당하는 육아휴직 급여가 지급되는데 상한액이 월 150만원이고(「고용보험법 시행령」 제70조 참조), 그나마 그중 25%는 복직 6개월 뒤에 사후지급하기 때문에, 휴직기간 동안 통장에 찍히는 금액은 참 뭐랄까...작고도 작다. 그래도 풀빵이 태어난 직후 두달 간 육아휴직을 썼을 땐 상한액이 월 100만원이었는데 좀 나아지긴 했다. 내년부터는 월 250만원으로 인상되고 사후지급 제도도 폐지된다 하니 미래의 부모들을 위해 다행이다.

[주2] 로펌의 소속변호사(associate lawyer), 속칭 '어쏘' 변호사는 로펌에 고용되어 월급을 받으며 파트너 변호사 밑에서 일한다. 보통 몸이 부서져라 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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