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늘구멍 / 한수남

by 한수남


어릴 때 할머니가 내게 한 유일한 부탁

아가, 실 좀 꿰어다오


오랜만에 바늘에 실을 꿰면서

몇번이나 실패한다. 노려보는 바늘구멍 보이지 않고

눈물이 다 흘러내린다. 지금 내게는

부탁할 사람 하나 없는데


눈만 나빠진 것이 아니라

마음이 바늘구멍만큼 쫄아든 것 아닌가

한마리 지친 낙타가 되어 늙어가는 것 아닌가


눈에는 눈곱이 끼고

등에는 무거운 혹이 있지만


마음만은 드넓은 바다가 되었으면,

수많은 은빛 바늘이 춤을 추고

바늘구멍으로 신나게 햇살이 넘나드는


마음은,

아직도 빛나는 나의 마음만은,



남해안 어느 바닷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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