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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망진창 / 한수남

by 한수남


삶이란 게 엉망진창으로 부서지는 때가 있지

폭우가 쏟아져 와장창 창문이 깨지고

순식간 불어난 흙탕물이 무릎까지 가슴까지 차오르지


차 오르지, 벽지를 적시고 세간살이를 적시고

몸을 피하려면 옥상에라도 지붕에라도 얼른 피신을

해야지, 눈동자에 망연자실이 꺽꺽 차오르지

차오른 물은 쉽게 빠져나가지 않지

뒤죽박죽 속에서 치욕을, 치욕을 견뎌야 하지


견뎌야 하지,

진흙을 닦고 쓰레기를 내다버리고

걸레를 빨아 닦고 또 닦으면 햇빛 한 줌이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 날마다 뜨는 태양을

불어오는 바람을 기다리고 기다리게 되지.


기다려야지, 옷이며 이불이며 널어 말리고

책장의 오래된 페이지들을 햇빛 속으로 내다 널어야지

진창에 제대로 빠졌던 시간은 여기저기 흔적을 남기겠지

그래서 나는 쉼표 하나를 찍으려고 해.


엉망진, 창.

엉망이었으나, 새롭게 방향을 틀어보려 해

엉망이었지만, 다시 창문을 하나 달아보려 해


창문.png

창문을 열다 (무료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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