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육십 대

(2029년부터 예정)

by 한수남

아직 당도하지 않은 나의 예순 즈음

예순은 과연 어떻게 올지

살아보지 않은 삶은 알 수 없다네

살아보지 않은 삶은 알 수 없다네



이건 일단 말이 안 된다. 나는 아직 60대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나의 60대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상해 보고 계획해 보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나의 60대 버킷 리스트를 작성해 보면,

1. 안 가 본 나라를 좀 더 가보고 싶다.

☞ 내가 가본 나라는 중국, 일본, 베트남, 태국, 캄보디아, 체코, 오스트리아, 헝가리,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눈치채셨나요? 주로 가족 동반 패키지로 동남아시아와 동유럽을 한 바퀴 돌았을 뿐 진정한 여행다운 여행을 아직 못해 본 느낌이다.)

2. 아이들이 독립해서 각자의 가정을 꾸리면 좋겠다.

3. 내 이름으로 된 시집을 두세 권 가지고 싶다.


내가 생각하는 명작의 기준은 이 세상에 '작품과 나' 둘만 남은 기분이 드는 작품이다. 그것이 그림이든 글이든 작품을 마주하는 순간에는 세상에 그 작품과 나만 존재하는 느낌이 들고 다른 것들은 저 멀리로 물러나는 느낌이 든다면 그건, 진정한 명작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요컨대 '거리'의 문제이다. 내가 만약 진정한 시인이라면 무언가 겉도는 시 말고, 독자의 가슴 속으로 쏙 스며들어 그의 영혼을 울리는 시를 써야 할 텐데 그것이 어찌 쉽겠는가, 어렵다는 것을 인정하고 다만 한 발짝이라도 다가서는 가련한 몸짓을 하는 존재가 작가라고 나는 생각한다.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으나, 도처에서 쇠사슬에 묶여 살아가고 있다.'는 루소의 말을 기억합니다. 현대인들은 여기저기 얼마나 많은 책임과 의무에 시달리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그럴수록 한 줄 시(詩)의 힘을 믿기에 저는 오늘도 문학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시 쓰기의 결과는 참담했으나, 그것을 견딜 수 있게 한 것은 인생 또한 덧없다는 것입니다. 시(詩)라도 한 줄 남기려는 저의 애틋함에 제가 감동해서 넘어가고마는 어리석음을 반복하며 저는 살고 있습니다. 그렇게라도 생(生)은 이어져 가야 하니까요. 그래서, 다시 써야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깊어가는 가을, 남아있는 저 잎들은 우수수 떨어지지만 다시 연둣빛 새 잎으로 돌아오듯이 우리들의 글쓰기 또한 그렇게 반복되리라 믿습니다. 날마다 찾아가는 수수한 시를 읽어주시는 모든 독자님들께 깊은 감사와 응원을 보냅니다(날마다 찾아가는 수수한 시 4부, 소개 글)



그녀를 위한 처방전 / 한수남

돋아나는 흰머리를 억지로 검게 물들이지 말고

적당히 가꾸시는 걸 추천합니다

작은 글씨는 안경을 벗는 것이 더 잘 보이신다니

노안을 인정하는 게 좋겠습니다

비 오기 전 무릎이 먼저 신호를 보내오면

무릎을 당겨 조금 문질러주세요

어딘가로 떠나고 싶지만

마땅히 갈 곳은 없을 겁니다. 그럴 때는

그냥 자신에게로 추억여행을 떠나세요.

운명이라 생각되는 것에는

더 이상 토(吐)달지 마시고,

끝까지 놓고 싶지 않은 것 하나는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라 하셨나요?

그것 좋네요,

너무 애를 쓰거나 속 썩지는 않으면서

사람을 사랑하는 일

사람을, 사랑하는, 그 일.



나이를 먹는다는 것 / 한수남

눈동자는 살짝 물이 간 생선의 그것처럼 뿌옇고

눈물 콧물은 수시로 흐른다


입은, 꼭 다물어도 저절로 조금 벌어지는 구멍

숨 쉴 때마다 빠끔거리는 금붕어의 입을 닮았다

단단하고 찰지던 흙덩이가 흐물흐물 풀어져

흘러내리듯, 단단했던 턱선과 목과 가슴

출렁이는 물살처럼 사뭇 처지고

손은 마치 나무의 껍질

발뒤꿈치는 나무의 거친 껍질

피부에는 버섯모양 검은 점이 군데군데 돋아난다

이 모든 것은

흙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

그것도 아주 잘하고 있다는 것

나이를 먹는다는 건,

흙으로 자연으로 서서히 돌아가고 있다는 것

우리 태어난 바로 그곳으로.



어쩌면 평생동안 / 한수남

어쩌면 평생동안 그는

뜬구름을 쳐다볼 것이다.


꼼짝 않는 것 같던 구름이 어느새 모양을 바꾸었다며

저것 보라고, 뜬구름 잡는 소리를 지껄일 것이다.

어쩌면, 평생동안 그는

종이와 연필과 노트를 끼고 살 것이다


구겨 던져버린 종이를 다시 펴더니

다 닳은 연필심을 정성스레 깎고

불 속에 던지려던 노트를 다시 펼칠 것이다

노트 속에 든 말들을

누군가 꼭 한 명은 읽어주기를 바라면서

어쩌면, 평생동안!


여행을 떠나는 나의 육십대를 상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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