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오십 대 2부

(2019~2025 현재 진행형)

by 한수남

브런치를 시작하고 나서 많은 변화가 있었다. 혼자 쓰고 아무도 읽어주지 않던 나의 시를 약 1년에 걸쳐 날마다 올리고 고치고 후회하고, 또다시 들여다보고 댓글 하나에, 좋아요 하나에 설레는 50대 중반의 내가 있었다. 나의 컴퓨터 저장 폴더 안에서 고이 잠자고 있던 예전에 쓴 시를 좀 고쳐서 올려 보기도 했고, 새로 쓴 시도 많았다. 이것이 중요했다. 다시 쓰기 시작했다는 것,


저는 등단한 지는 10년이 넘었지만 아직 첫시집을 내지 못했습니다. 바쁘기도 했고, 좋은 시집이 아닐 바에야 굳이 책을 내어 무엇하나, 이 복잡한 세상에 활자 공해를 덧붙여 무엇 하나 하는 자격지심도 있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용기를 내어 브런치 연재를 시작하게 되었고 '날마다 찾아가는 수수한 시'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독자들과 소통할 수 있어 기쁘고 설레고 행복했습니다. 문학이 즉각적인 효력을 발휘하지는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어디까지나 문학은 장기전이 될 것입니다. 독자의 마음에 서서히 스며들어 조금 다른 각도에서 사물을 볼 수 있도록 하고 독자의 감성을 살짝 건드릴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의미있는 일을 한 것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수수한 시를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 다시한번 깊이 감사드립니다.


위 글은 '날마다 찾아가는 수수한 시' 3부의 소개글이었다. 각 브런치마다 총 30편의 글을 올릴 수가 있는데 시는 짧으니 나는 날마다 올리는 방식을 선택하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내 글의 알림이 독자들의 귀한 아침 잠을 깨우지는 않을까, 민폐가 되지는 않을까, 노심초사도 했지만 알림을 끌 수도 있고 보기싫으면 안 보고 넘기면 되니까 그런 것은 신경 쓸 일이 아니었다. 문제는 작품이었다. 그러던 중 2024년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는 일이 일어났다. 비록 6시간만에 계엄해제를 선언하기는 했지만 실로 황당하고 어처구니 없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 때 쓴 시 한 편을 보면,


어리둥절 / 한수남


밤중에 홍두깨라도 맞은 듯이

(아, 여기서 홍두깨는 다듬이질하는 방망이입니다.)

머리통이 얼얼한 연말입니다.

어리둥절은 어디에 있는 절[寺]인가요?

(앗, 죄송합니다. 제 머리가 좀 이상합니다.)

홍두깨를 맞아서 그러니 너른 양해를

(솔직히 누가 요즘 홍두깨를 씁니까?

스팀다리미가 있고 스타일러도 있는데)

존귀하신 높은 분이 명령하여

유리창이 깨지고, 군홧발로 짓밟히고, 헬기가 윙윙

날아다녔다니까요. 서울 하늘에, 아닌 밤중에,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라구요?

(네네, 홍두깨를 맞아서 그렇습니다.)


잊어야 하는데

잊을 수가 없네요.

이런 걸 혹시 트라우마라고 하나요?


아무래도 잠시

어리둥 절[寺]에 다녀와야겠습니다.

어리둥 절,절,절,



물론 시적인 완성도는 다소 떨어진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문학의 갈래 중에서 시만큼 즉각적으로 현실을 반영하기 쉬운 갈래도 없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 인용해 보았다. 모름지기 진정한 시인이라면 깨어있는 정신으로 시대의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때로는 날 선 목소리로 비판하는 시, 현실을 풍자하는 시를 쓸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바이다.

하지만, 정치적 현실에 너무 깊이 개입하여 현실 참여적인 내용이 아니면 아예 외면하는 태도 또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요컨대, 창작과 현실 사이에는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연이어 2024년 12월 29일에는 전남 무안국제공항으로 착륙 중이던 제주항공 여객기에서 발생한 사고로 총 179명이 사망하는 대형 참사가 발생했다. 우리 국민들은 모두 이 소식을 듣는 순간 참담한 심정으로 할 말을 잃었을 것이다. 왜 이렇게 잊을만하면 한 번씩 대형 참사가 터지는지 그것도 상당 부분은 미리 막을 수 있었던 인재가 많다는 점에서 우리의 안타까움은 더해갔다.


옷깃 / 한수남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동시대를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의 희생 소식을

듣는다. 참혹한 사고 소식에 덜덜

몸이 떨리고 마음이 떨린다.


그리하여, 옷깃을 여민다.

채울 수 있는 단추는 채우고

올릴 수 있는 지퍼는 올리고


달리, 어떤 말도 보탤 수 없고

안타까이 바라볼 수밖에 없지만

덜덜, 떨리는 가슴들을 진정시키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옷깃을 여며야 한다.


새해가 와도 쉽게 희망을 말할 수 없다.

사람아, 사람아,

지금도 옷깃을 스치며 지나가는 사람아,



기다리면 / 한수남


기다리면 올까요? 기다리면

아침 일곱 시의 청량한 호흡과

저녁 일곱 시의 달콤한 휴식 같은 것들이

내게로 와 줄까요?


기다리면 올까요? 기다리면

아무 걱정 없이 졸졸졸

시냇물처럼 흘러갈 수 있는 날이

내게로 슬며시 와 줄까요?


음, 기다리기보다는

내가 그냥 찾아가기로 해요, 마음을 바꾸어요.


어디로 가면 되는지

꽃에게 물어보고 나무에게 물어보고

눈 오는 하늘에게도 물어보려구요.


혹시 당신이 저를 만난다면

그저 몇 발짝 같이 걸어주시면 되어요.


걸어가면서 우리가 스스로 길이 되는

소박하고 따뜻한 저녁 일곱 시를 위하여.


종종 / 한수남


종종, 세상이 내게

등을 돌린다고 생각했지.


그런데 가만 보니

세상은 그냥 흘러가고 있고


내 마음이 얄궂게

등을 돌린 것


종종,

구름이든 꽃이든 별이든 바라보면서

눈물 나게 이쁜 것들을 바라보면서


내 마음을

세상 쪽으로 돌려세울 것.


일보 후퇴처럼 보일지라도 역사는 결국 전진한다고 믿는다. 저 수많은 촛불의 힘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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