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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다쟁이 Aug 24. 2023

같은 책, 다른 생각(2)

박완서 작가의 '모래알 만한 진실이라도'



(아이가 읽은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나는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라는 에세이 모음집을 읽게 되었다. 집에 있길래 우연찮게도 그냥 뽑아서 읽었는데, 아무래도 처음부터 좀 기대를 하고 읽었던 것은  한국 문학에서 유명한 작가인 박완서 님의 작품이었기에 그랬던 것 같다. 그분이 쓰신 [배반의 여름]을 재미있게 읽었고, 데뷔작인 [나목]은 한국 문학 소설을 싫어하는 나조차도 어디에선가 그 이름을 들어 줄거리를 대충은 알고 있는 책이었기 때문에  '아, 들어본 작가가 쓴 책이다.' 하는 반가움이 있었던  같다.


하지만 실제 읽었을 때의 느낌은 또 달랐다. 솔직히 말하자면 처음 2~3편의 글이 나에게 준 감정은 실망감이다. 그 짧은 에세이들은 내가 기대했던 어마어마했던 교훈이나 철학, 또는 내가 배반의 여름을 읽었을  때 느낀 유머를 하나도 가져다주지 못했고, 에세이의 문장 속 단어들은 어딘지 모르게 과장되어 있었고 불편했다. 그러나 그런 감정들은 내가 다른 글들을 서서히 읽어가면서 잊혀졌다.


 글에 쓰이는 단어들보다는 표현하려고 했던 삶의 흐름이나 사소한 기쁨, 또는 유머나 모순에 눈이 갔다. 그중에서는 내가 아직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것도, 겪어보았던 것도, 혹시 겪을까 조바심하는 것도, 겪기를 은근히 기대하는 것도 있었다. 한 마디로 삶에 관한 숱하게 많은 이해와 통찰이 있었다.


그 많은 에세이들 중에서 나의 최애를 고르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었지만, 이 나의 최애를 꼽자면, 내가 가장 감동받은 글은 마지막 글이었다. 그 글은 죽음에 관한 것이었다. 기껏 고른 최애가 죽음에 관한 내용이라니 나도 죽음을 두려워하고, 궁금해하고, 가장 아름다운 죽음에 관한 고민을 끝없이 하곤 하는 인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찌 되었든 그 글에 관해 말해보겠다.


나는 내 죽음의 순간을 몇 발자국 남겨둔, 그러니까 시한부 인생을 살게 되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해 본 적이 많이 없다. 다만, 너무 오래 아프지 않고 죽었으면 하고만 생각해 보았다. 죽으면 어차피 모든 걸 다 잊을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나의 죽음보다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을 두려워한다. 그리고 나의 죽음에 관한 고민보다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을 어떻게 극복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좋을 지에 관한 고민을 더욱 많이 한다. 하지만 만약 죽음이 내 앞에 도래했다면 어떨까?라고 예상해 보면, 아마 초조해서 종종걸음  칠 것 같다. 내가 살면서 하지 못한 것에 대해 후회하고 한탄하고, 주위 사람들에게 나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죽을 거라며 온갖 것을 요구할 것 같다. 그리고 나는 늘 그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해 왔다. 내 곁에 남아있는 사람들은 아직 살 날이 많이 남은 사람들이므로 그 사람들이 죽음을 앞둔 나를 더 특별 대우해 주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박완서 작가님의 글을 읽으면 그 모든 것은 결국 탐욕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나는 죽으면 망각 상태에 빠지게 되므로 내 죽음이 두렵지 않다고 하면서도 실은 두려워하면서 쓸데없는 욕심을 부린 것이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내 둘레에서 소리 없이 일어나는 계절의 변화 내 창이 허락해 주는 한 조각의 하늘, 폭의 저녁노을, 먼 산빛, 이런 것들을 순수한 기쁨으로 바라보며 영혼 깊숙이 새겨두고 싶다. 그리고 남편을 사랑하고 싶다. 가장이나 아버지로서가 아니라, 그냥 남자로서 사랑하고 싶다. 태초의 남녀와도 같은 철없 사랑을 나누고 싶다. 나는 이 문구를 읽으며 이것이 진리라는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그리고 이렇게 결심했던 것 같다. 평소에 쓸모없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소중히 여기는 착한 마음으로 죽고 싶다. 하늘, 햇빛, 참새, 민들레, 산뜻한 공기와 같은 것들을 행복으로서 눈여겨보며 내 삶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싶다. 그리고 나와 그동안 마음을 나누었던 사람들에게 사랑한다고, 그리고 고맙다고 많이 말해주고 싶다. 내가 어렸을 때 썼던 편지와 일기, 찍었던 사진, 그리고 좋아했던 책들 음악을 읽고 들으며 그때의 동심으로 돌아가 감동하고 싶다.

적다 보니 이것도 너무 많은 것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지만, 박완서 작가님 자신의 마지막을 함께하는 계절이 가을이었으면 하고 바란 것처럼 나도 나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계절이 봄이었으면 하고 작게 바래본다.






(내가 읽은 '모래알 만한 진실이라도)


박완서 작가의 글은 따뜻한 봄날 잔잔한 호수를 바라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따뜻한 햇살아래

윤슬처럼 반짝이는 아름답고 진실한 눈빛과

삶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을 느리게 따라가다 보면

작가의 말처럼 한 발짝 멀리서만 볼 수 있는 삶의 모순과 진실을 발견할 수 있다.

 

문학은 모래알만큼이라도 작은 진실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작가는 나의 뿌리에 대한 자긍심과 인간의 오만함에 대한 경계와 인간으로서의 고통과 순응, 그리고 자연의 아름다움에서 느끼는 신비로움과 신의 섭리를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그리고  예전에는 잘 느끼지 못했던 작가의 언어들과 의미가 나의 폐부에 베이듯 스며드는 걸 보면 나도 나이를 먹어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모순일 수밖에 없는 삶과 사랑과 행복과 고통을

들추어내서 곱씹으면 조금은 덜 모순적인 삶을 살아낼 수 있을까? 나의 삶을 반성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책을 읽는 내내 작가가 반추하며 살았던 생각과 고민들이  곁에도 머물러 있었다.


나는 잠시 그녀의 작은 정원에 놀러 가 예쁜 꽃들을

보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조잘거리는 새소리를 듣고 행복한 마음을 담아 다시 나의 집으로 돌아온 기분이다.

그래서 어쩌면 내 주변을 둘러싼 모든 것이 눈물겹도록 소중하고, 감사하며 오늘을 살아가는 힘을 얻은 것 같다.

하지만 그녀가 전해준 가슴 아픈 삶과 운명에 대한 가르침이 자꾸 마음을 들섞여 잠을 이루기 어렵다.


"아무리 어두운 기억도 세월이 연마한 고통에는 광채가 따르는 법이다. 또한 행복의 절정처럼 빛나는 순간에도 그걸 예비한  건 불길한 운명이었다는 게 빤히 보여서 소스라치게 되는 것도 묵은 사진첩을 이르집기 두려운 까닭이다.(p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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