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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다쟁이 Aug 27. 2023

같은 책, 다른 생각(3)

김호연작가의 -불편한 편의점 2-



(아이가 읽은 '불편한 편의점 2')


나는 최근, 불편한 편의점 1의 후속으로 나온 불편한 편의점 2를  읽게 되었다.

1편과 2편의 느낌 자체는 꽤나 비슷하다. 1편에서 독고라는 노숙자가 불편한 ALWAYS 편의점의 고민 해결사 노릇을 했다면, 이번에는 아무에게나 들이대길 잘하는 중년의 황근배 씨가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이 아저씨는 쓸데없는 농담 때문에 손님들에게 이상한 놈이라는 눈총을 받으면서도 정작 본인은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취준생 소진부터 코로나19로 망해가는 고깃집의 최 사장, 그리고 학교와 집에서 모두 외면받는 고등학생 민규의 일에까지 온갖 참견을 하고 충고를 해준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그에게서 치유받고 한층 더 성장한 모습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다만 다른 점은 1편에서 독고만을 중심으로 집요하게 진행되었던 이야기는 이제는 한층 더 광범위하게 전개된다는 점에 있다. 황근배 씨뿐만 아니라 편의점 점장 오선숙 씨, 사장 강민식 씨, 그리고 경도치매 판정을 받은 강민식 씨의 어머니이자 편의점의 전 사장 염 여사님, 그리고 편의점 전 알바 시현의 이야기까지, 한층 더 깊고 폭 넓어진 이야기 덕분에 읽는 재미가 늘었고, 1편에서부터 쭉 등장해 온 인물들의 이야기와 2편의 새로운 인물들의 이야기를 비교하며 읽을 수 있기에 더욱 생동감이 넘치게 되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에서 접했던 giver와 taker, 그리고 requester에 관한 칼럼이 떠올랐다. 여기 나왔던 소진과 최 사장, 민규는 모두 도움이 필요한 requester였으나 쉽사리 근배 씨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못했다. 한낱 편의점 알바가 뭐가 도움이 될까 싶어서, 이상한 아저씨에게 도움받는다는 사실이 찝찝해서, 또는 부끄러워서 등의 이유로 아무도 속 이야기를 털어놓지 못했다. 근배 씨는 그들의 그런 request를 알아차리고 먼저 손길을 내밀어주고, 자발적으로 giver가 되어준다.


 처음에는 그런 giver을 부담스러워하던 taker들도 곧 그에게 마음을 열고 참아왔던 울분을 모두 토해낸다. 그런 관계들 속에서 그들은 서서히 마음을 회복하고 자신의 삶을 살아갈 용기를 얻는다. 아마 그들은 그에게서 받았던 선의를 기억하고 다른 이들에게 또 다른 giver가 되어줄 것이다. give의 선순환이 이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나도 도움이 필요해 보이는 requester들에게 먼저 손 내밀어주는 giver가 되고 싶다. 그런 이들을 관종이나 오지랖 넓은 사람으로 보일까 싶은 우려 때문에 외면하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먼저 다가가준다면 그들은 곧 나에게 마음을 열 것이므로, 나에게 위로받고 싶어 할 것이므로. 따뜻한 give의 행위를 오지랖으로 치부하지 않을 것이라고 결심하게 된 순간이었다.


또한 나는 이 책에서 염 여사가 가서 지내던 시골의 언니와 조카의 관계에서 또 하나의 깨달음을 얻었다. 그것은 바로 적당한 거리 두기는 오히려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었다. 지나친 대화는 독이 될 수 있다. 상대방에게 무언가를 지속적으로 요구해서 상대방이 바뀌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이다. 절대 그럴 리 없다. 상대방은 상대방이고 나는 나이므로 과도한 요구는 오히려 상대방을 엇나가게 한다. 상대방을 그냥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공감해 줄 수 있는 것에는 공감해 주고 아닌 것은 묵묵히 흘려버려라. 나와 다르다고 해서 바꾸려 하지 마라. 공생관계를 지키려고 노력해라. 아예 같은 생물이 되려고 하다 보면 오히려 기생 관계가 되는 역효과를 낳는다. 이것이 내가 이 책에서 얻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있어 가장 중요한 기술이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사람 대 사람의 건강한 상호작용에 관한 많은 교훈을 얻은 것 같다.

또한 황근배 씨의 아재개그 덕분에도, 등장인물들의 속 시원한 대화도 나에게 많은 웃음을 가져다주었던 것 같다. 교훈과 유머의 적절한 조화 덕분에 이 책은 나에게 재미있지만 의미 있는 책으로 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읽은 '불편한 편의점 2')


어릴 적 주택에 살았던  이웃들과도 먼 친척보다 훨씬 살갑게 정을 나누며 지낸 기억이 있다.

동네 아주머니들은 나이가 많은 엄마를 형님이라 불러주고, 엄마도 앞집이나 옆집 아주머니를  동생처럼 잘 챙기셨다. 아침이면 현관문을 열고 인사를 하고, 김치를 담그거나 색다른 음식을 하면 꼭 이웃과 나눠먹고, 우리 집 마루는 언제나 동네 아주머니들의 수다장으로 개방되는 경우도 많았다.  연세가 많으신 할머니나 할아버지들은 내 부모처럼 깍듯이 대하고, 동네에서 놀던 아기나 꼬맹이들도 손자 손녀처럼 안부를 묻고 이뻐했던 것 같다.

시골이 아닌 서울 도심에서도 몇십 년 전 이웃들과의 풍경은 오래된 고가구처럼 낡은 듯 정겨웠다.


하지만 어린 시절의 나는 내성적이고 조용한 성격 탓에 타인을 가족처럼 편하게 대하는 것이 불편하고 못마땅했다.

그래서 간혹은 엄마나 동네 어르신들의 살가움과 따뜻한 인사가 오지랖이 넓은 아줌마들의 과장된 몸짓인 것 같아 뜨악하게 바라보곤 했다.


하지만 지금 내가 그 시절의 아주머니들처럼 나이가 들고 보니, 그 오지랖은 단순한 오지랖이 아니라 사람에게 베푸는 정이고 온기였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때론 그 오지랖이 내가 살아가게 하는 용기가 되고, 희망이 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건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난 후였다.




불편한 편의점 2의 주인공 홍금보는 40년 전쯤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오지랖쟁이 아저씨다.

어리숙하고 무심한 듯 그리고 때론 푼수 같은 그는 사람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손내밀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이었다. 지나치지 않고 눈여겨본 덕에 취준생 소진 씨와 결핍이 있던 민규학생 그리고 꼰대 중의 꼰대였던 최사장과  사고뭉치 아들 민식은 용기를 얻어  자신들의 인생을 궤도수정 할 수 있었다.


누구나 품고 사는 마음에 응어리진 열등감을

뛰어넘어 한 걸음 더 세상과 부딪힐 용기를 얻게 된 것이다.

새까만 동굴에 갇혀 아무런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

작은 틈으로 비춰오는 실낱같은 빛줄기는 누구에게나 생명줄이  수 있기 때문이다.


염여사의 작은 배려로부터 출발한 오지랖은 독고라는 사람을 구하고, 독고의 따뜻한 위로를 받았던 인경과 곽 씨 형사의 마음은 홍금보(황근배)로 이어져서 사고뭉치 염여사의 아들까지 개과천선하게 만들고, 다시 염여사를 위로하게 되는 선순환이 되었다.

언제나처럼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는 인연이란

실타래로 연결되어 그 끈이 이어진다는 것이 소름 끼치도록 놀랍다.




가끔은 어릴 적 뜨악하게 바라보던 오지랖이 그리울 때가 있다.

외로움과 고독이 삶의 중심이 되어버린 것 같아

섣불리 누구에게 인사를 건네기도 쉽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경험해보지 않았는가?

오지랖 없는 삶이 우리를 병들게 한다는 것을..


상처받을 지도, 외면할 수도, 실없이 보일 수도 있겠지만 지나치는 길에 보게 되는 아는 이들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보는 건 어떨까?


" 요즘 잘 지내시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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