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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다쟁이 Sep 02. 2023

같은 책, 다른 생각(5)

이경혜작가의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


(아이가 읽은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


나는 어느 날 학교에서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제목부터가 심상치 않아서 사람을 잡아끄는 힘이 있다고 느끼기는 했지만, 사실 조금은 속이 훤히 보이는 이야기라고도 생각했던 것 같다. 청소년의 자살 문제를 다룬 다소 현실 비판적이고 회의적인 이야기일 것이라고 처음 제목을 본 순간 단정 지었기에, 이런 류의 이야기를 많이 읽어봤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나로서는 굳이 읽고 싶은 책은 아니었다. 하지만 학교에서 수업을 하는 것보다는  책 읽는 훨씬 좋았다.




단짝 친구였던 재준이가 오토바이 사고로 어처구니없이 죽은 지 한 달 될 무렵 유미는 재준이의 엄마로부터 자신이 크리스마스 때 재준이에게 선물했던 일기장을 건네받게 된다. 그리고 그 일기장을 자신 대신에 읽어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네? 왜 직접 안 읽으시고.."라고 말하며

별생각 없이 일기장을 넘긴 유미는 맨 첫 장에 적힌 한 마디의 말에 얼어붙고 만다.

그 한마디의 말은 바로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

죽음과는 무관한 것처럼 보였던 한 소년의 특별한 시체놀이가 담긴 푸른 표지의 일기장, 이 일기장의 내용을 천천히 곱씹으며 가장 소중했던 사람에 대한 상실의 아픔을 극복해 나간다는 것이 이 이야기의 줄거리이다.


이 책은 뭐랄까, 특별한 기승전결이 있다기보다는 편안히 읽기 좋은 책이었다. 청소년 소설이지만 어른이 읽기에도 무리가 없을 듯했다. 이 책은 언젠가는 죽어야 하고, 또 삶을 살아가는 동시에 죽음을 곁에 두어야 하는 우리 모두의 유한함을 대변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외국에서는 공동묘지를 마을 근처에 위치시키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 삶과 죽음이 멀리 있지 않다는 의미에서 일까, 아니면 죽은 자를 잊지 말자는 의미에서 일까. 무슨 뜻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렇게 죽은 자와 산 자를 딱히 구분하지 않으며 살아간다고 했다.

산 자와 죽은 자의 차이는 무엇일까? 죽은 자는 우리 앞에 보이지 않지만 산 자는 실질적인 형태가 있다는 것? 죽음의 의미에 대해서 나는 유미와 똑같이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나에게 소중했던 그 사람을 다시는 볼 수 없다는 것. 영원한 이별이라는 것. 그렇지만 글쎄, 내가 내 어린 시절로 다시 되돌아갈 수는 없다는 그 명백한 사실도 다른 관점으로 보면 영원한 이별이 아닌가?


그렇지만 나는 내가 그 시간으로 다시 되돌아갈 수가 없다는 사실에 대해 엄청난 회한을 느끼지는 않는다.

지금도 그 시간으로 다시 되돌아갈 수는 없다는 사실을 완벽하게 자각하며 글을 쓰고 있지만, 지금 내 방에서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갈 때의 이 청량한 바람과 햇살을 맞으며 글을 쓰는 순간 또한 그때의 그 순간에 비길 수 없이 똑같이 소중하고 행복한 순간이라고 믿고, 또한 그 모든 기억들이 때때의 기시감으로 나를 설레게 하기 때문에, 뭐라고 확실히 말할 수는 없지만 그 분위기 그 감정은 나의 마음에 차곡차곡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미 영원한 이별이 되어버린 그 순간들에 대해 나는 웃을 수 있다.


동물은 죽음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자신이 공격당하지 않는 이상 죽음을 막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하지도 않는다. 그냥 기력이 떨어지는 것을 느끼다가 어느 순간 탁, 그렇게 의식을 놓는다. 사람도 그럴 거라고 생각한다.

태어났으니 살아야 하고, 그렇게 살다가 조금씩 늙고 힘들어져 죽는 거다. 물론 그렇지 않고

이른 나이에 불의의 사고로 죽는, 이 책의 재준이처럼 그렇게 허망한 죽음을 맞는 이들에게는 이 넓은 세상에 남은 미련도 많고 슬픔도 많기에 조금 더 아픈 죽음이기는 하다. 그렇지만 나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영화 [일일시호일]에서 다케다 선생 배역을 맡은 배우 키키 키린은 이렇게 말한다. ‘차를 마셔도 이렇게 똑같이 마실 수 있는 순간은 거의 없으니까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임해주세요.’ 

짝사랑하던 소희를 위해서 그 어린 시절의 순수한 열정으로, 햇살에 비친 강물이 반짝반짝 빛날 때의 그런 눈부심으로 인생을 살아가던 재준이의 마음은 정말 그때의 그 순간에만 가질 수 있었던 그런 엔딩 크레디트이었다고 생각한다.

오늘이 나의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그런 특별한 시체놀이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진짜 삶을 산다는 것은 매일 새롭게 태어날 준비를 하는 것이다. 

태어날 준비는 용기와 믿음을 필요로 한다.

안전을 포기할 용기,

타인과 달라지겠다는 용기,

고립을 참고 견디겠다는 용기다.’라는 에리히 프롬의 말처럼

재준이는 비록 짧은 인생을 살았지만 진짜 삶을 살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 책의 마지막은 이렇게 끝난다. ‘밤새 비는 계속 올 모양이다.’ 나는 이 문장이

널 만난 거 자체가 정말 축복이었어. 고마워. 

비록 너와 난 이제 영원히 만날 수 없겠지만 너는 앞으로 여전히 나에게 그런 소중한 존재로 남을 거야. 안녕.’ 이런 따뜻한 작별의 말인 동시에 

봄철 매화 꽃잎이 떨어지듯 그렇게 재준이의 죽음을 유미가 의연히 극복했다는 말로 들려서 더욱 감동적이었다.


소중한 존재의 죽음으로 힘든 사람들, 부모님들, 친구가 있는 청소년들, 왜 사는지에 대한 고민이 많은 사람들, 그 외에 재미와 감동을 모두 얻고 싶은 책을 읽고 싶거나 솜사탕처럼 부드러운 소설을 원하는 사람들, 모두가 이 책을 읽어보면 좋겠다.





(내가 읽은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

아이가 추천해서 읽게 된 책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는 '어른'의 눈으로만 볼까 봐 우려했던 작가의 생각과는 다르게 '어른'의 눈으로 보아도 충분히 가슴 아프고  먹먹했다.




아이들의 시선으로 바라본 어른들의 세계는 얼마나 이기적이며 치졸할까? 자기 방식대로의 삶과, 행동에 아이들은 너무 어린 나이에 어른이 되어

메말라가는 것은 아닌지 읽는 내내 씁쓸한 마음과 

아이들에 대한 연민이 일었다.


유미와 재준의 부모님들은 지극히 평범한 어른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그들은 그들의  입장에서만 행동하고, 판단하고, 모든 것을 결정했다.

어른들의 결정에 아이들은 따라야만 했고, 때로는

왜 그래야 하는지도 몰랐다.

아이들은 어린 나이에 일찍 철들어야 했고,

부모님 눈치를 봐야 했다. 그래서 부모님과 집은  늘 감옥 같이 느껴졌다.

그 모습에 나는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나도 아이의 마음을 내 방식대로 옭아매고, 따라오라고 한 건 아닌지,

아이 스스로의 행동에 대한 책임만을 강요했던 건 아닌지..

그래서 아이의 마음의 자유를 빼앗고 있었던 건 아닌지..

좋은 어른이 되지 못한 것 같아 미안했다.


재준의 일기장에는 '죽음에 한 놀이'로  삶에 대한 고마움과 애틋함이 절절히 묻어난다.

죽음을 생각하면 어쩌면 아무것도 아닌 일들에 대해 우리는 늘 짜증 내고 화를 내고 있었고,

쉽게 용서할 일들을 용서하지 못하고 살고 있었고, 그래서 후회하고, 행복하다는 말은 남의 집에서나 들리는 말이라고 생각했던 건 아닌지 뒤돌아보게 된다.


보잘것없다고 생각되는 평범한 재준의 모습은

열심히 노력해도 벗어날 수 없는 것 같은 우리의 모습과 많이 닮아있다.

늘 지질한 것 같고, 능력 없고, 움츠려 들고, 그래서 살아갈 자신이 없어지고..


하지만 재준이는 까칠한 친구에게 따뜻한 마음을 나눠줄 수 있고, 엄마에게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줄 수 있고, 철없는 동생에게는 꼭 있어야 하는 형이었고, 사랑을 위해 스스로의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 용기를 낼 수 있는 멋진 사람이었다. 스스로의 가치를 모르고 떠나간 재준이가 못내 안타깝고 가슴 아프다.


재준이를 통해 나는 맑고 순수하고 조건 없는 사랑의 의미와 언제까지나 변함이 없을 소중한 우정의 깊이에 서늘한 소름이 돋고 시샘이 일었다.

나이를 먹어가며 조금씩 현실과 타협하게 되고 모든 것에 무뎌져가는 어른인 내가 부끄럽기도 했다.

재준이의 죽음은 너무 안타깝지만 재준이죽음의 의미는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재준이를 통해 우리는

편견을 버린 어른으로

감옥을 만들지 않는 부모로

우정을 값지게 나누는 좋은 친구

순수한 사랑을 간직하고,

그리고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는 용기를 가진 멋진 사람으로

그래서 지금 살아가는 삶이 너무나 소중하고 가치 있다는 것을 하루하루 느끼며 살아가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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