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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다쟁이 Aug 29. 2023

같은 책, 다른 생각 (4)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


(아이가 읽은 '좁은 문')


나는 작년에 좁은문이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시시하다고 생각된 제목에 이끌려 읽게 되었는데 (실제로는 깊은 뜻이 담긴 제목) 이 책은 예상과 다르게 매우 진중하고, 서정적이었고 그렇기에 나와의 첫 만남은 더욱 신선했다. 그전까지 내가 알았던 모든 문체와 형식 그리고 장르를 초월하는 책이었다. 그래서일까? 이 책은 작년 12월부터 지금까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으로 남아있다. 그럼 이제부터 사색적인 우아함과 떨림, 숭고한 사랑을 담고 있는 이 책의 줄거리를 소개할까 한다.


이 책의 제목 좁은문은 성경의 마태오복음 7장에서 따온 제목으로, 제롬과 알리사(주인공)가 삶의 목표로 삼은 구절이다. 조숙하고 예민한 소년 제롬은 외사촌 누이인 알리사를 마음깊이 사랑하며 그녀에게 어울리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이런 제롬을 알리사도 더없이 아끼고 그와의 사랑을 소중히 여긴다. 하지만 그의 청혼을 거절한다. 왜일까? 거기에는 제롬을 좋아하는 여동생과 어머니의 불륜을 겪고 혼자 남은 아버지 등의 이유도 있었지만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하느님 곁에 다가갈 때까지 인간적인 행복과 욕망등을 억누르고 행복을 느끼는 것을 죄악이라 여긴 그녀의 청교도적 금욕주의 때문이다.


 인간적인 행복과 사랑, 그리고 종교적 신념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던 알리사는 결국 정신적으로 쇠잔해져 요양원에서 죽음을 맞는다.


나는 이 책을 처음 읽을 때는 좀 어려운 사랑이야기라고 생각했다. 한 번도 종교를 가져본 적이 없는 데다가 신이라는 존재를 믿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처음의 나는 주인공 알리사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책의 문장을 하나하나 곱씹을수록 그녀의 심정과 상태를 짐작하고 이해할 수 있었고, 그녀의 금욕주의적 성향을 무조건 비판하는 대신 존중하게도 되었다. 그녀는 사랑의 아픔을 종교적으로 승화시키고 또한 성스럽고 영적인 세계로의 관문을 통하기 위해 그녀의 육체와 영혼과 그 모든 것을 바친 위대하고 고결한 사람이었다. 비록 그녀는 비인적이고 비현실적인 허상을 쫒는 어리석은 짓을 저질렀고 작가도 그를 통해 종교적 금욕주의에 관한 부정적 시각을 드러낸 것이지만, 그렇게만 보기에는 나는 너무나 많은 영적이고 인간적인 아름다움을 그녀를 통해 볼 수 있었다. 녀가 만들어낸 문장하나하나에서 나는 세심하고 순결하게 스치는 고대 철학자의 옷깃에서 풍기는 듯한 향기를 맡았다.

좁은문은 어려운 주제와 함께 풍부한 생각을 품어내게 하는 능력이 있는 책이며, 읽을 때마다 단어의 새로운 묘미를 발견할 수 있는 책이었다.





(내가 읽은 '좁은 문')


장영희 교수의 에세이에서 읽은 사랑에 관한 정의 중 나에게도 가장 와닿았던 말은 "사랑은 사람을 살게 하는 것이다."였다.

그것이 남녀 간의 사랑이건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이건 종교적인 사랑이건 맹목적인 사랑이야말로 내가 오늘을 사람답게 살 수 있게 하는 가장 단순하고도 근원적인 말이 아닌가 한다.


그러나 그런 사랑에 뒤따르는 건 타인을 향한 혹은 나를 향한 희생과 고통이다. 사랑의 이중적인 모습이지만 어쩌면 사랑은  그래서 더 값어치 있고, 힘든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좁은문의 제롬과 알리사의 모습에서도 사랑은 꽤나

모순적이고  이중적이어서 보는 내내  안타까웠다.

끝없이 알리사를 사랑하는 제롬은 알리사에게 다가가기 위해, 가치 높은 사랑의 모습에 부응하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쓴다. 표현하지 않고 절제하는 사랑이 얼마나 힘들겠는가?

하지만 이런 제롬의 마음을 알면서도 알리사는 인간적인 사랑과 신적인 사랑과의 사이에서 끝까지 괴로워하다 신과의 사랑에 안착한다.

하지만 알리사의 삶은 언제나 제롬을 위한 삶이었고 끝까지 제롬을 그리워했다는  알게 된다. 어쩜 이리 모순적일까?


알리사는 어쩌면 아버지처럼 인간적인 사랑에 배신을 당하는 것이 두려워 그런 것이 아닐까?

아니면 인간의 한계를 알기에 끊임없이 신의 세계로 들어가기 위해 고민할 수밖에 없었던 연약한 존재였기 때문일까?

그로 인해 지극히 평범한 사랑을 갈구했던 제롬은

또 얼마나 괴로웠을까?

제롬과 알리사의 엇갈리는 사랑이 마치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안타까웠다.


그리고 이루지 못한 사랑은 늘 영원한 숙제로 남는다.

제롬에게서도 쥘리에트에게서도..

신을 선택한 알리사를 잊지 못하는 제롬은 이 세상을 떠난 알리사의 종교적인 사랑의 선택을 이해했을까?

새로운 사랑을 찾아 떠난 쥘리에트에게도 제롬은 영원히 가질 수 없는 사랑이라 안타깝고,

잊지 못하는 사랑이었기에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하지만 어쩌면 그들의 마음속에는 그런 사랑이 존재했기에 제롬과 알리사와 쥘리에트는 살아갈 수 있었던 건 아닐까?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누군가의 사랑이 된다는 건, 그래서 사람으로 살아가는 건 인간의 한계이자 축복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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