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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다쟁이 Aug 23. 2023

같은 책,  다른 생각(1)

김영하 작가의 -작별인사-


(아이가 읽은 작별인사)


나는 최근에 '작별인사'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첫 느낌은 굉장히 서정적이었다. 표지부터가 굉장히 아름다웠는데, 칠흑 같은 밤하늘에 반짝반짝  빛나는 별들이 수놓아져 있는 표지는 내가 그동안 보아왔던 표지들에 비해 훨씬 우아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또한 책의 첫 시작도 매우 감성을 자극하는 소재로 시작한다. 죽어 있던 작은 새를 묻어주고 천자문을 공부하는 아버지와 아들이라니, 분명 낭만적이게 보일 법하다.


하지만 뒤로 갈수록 배경은 빠르게 바뀌어서 미래의 최첨단 휴머노이드 연구소인 휴먼매터스와 휴머노이드 수용소, 그리고 기계지능들의 의식 집합체인 네트워크가 주 배경으로 자리 잡는다.

휴머노이드 연구소 휴먼매터스의 유능한 연구원 아버지와 함께 평안히 살아가던 소년 철이는 느닷없이 미등록된 휴머노이드로 몰려 폭력적인 전투용 휴머노이드들이 수용되어 있는 수용소에 갇히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휴머노이드 민이와 클론(복제인간) 선이를 만나고, 우연한 기회에 그곳을 탈출하였지만 그 과정에서 민이는 죽는다.


선이는 민이의 기억을 재활성화시켜서 다시 태어나게 하려고 애쓰던 중 달마라는 또 다른 휴머노이드를 만나게 된다.

달마를 마주한 셋은 철이가 실은 인간이 아니라 하이퍼 리얼 휴머노이드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하지만 또 다른 불의의 사고로 철이와 선이는 헤어지고 의식만 백업되어  몸은 없고 의식만 네트워크 상에 존재하는 상태로 남아 있게 된다.


훗날, 인간이 멸망하고 난 뒤 철이는 선이를 오호츠크 해 부근에서 찾아내지만 선이는 병으로 죽는다.

선이의 죽음 뒤 선이가 살던 곳에서 계속 지내던 철이는 기계적 네트워크 세계에서 개별적 자아는 지워진 채 영생할지, 아니면 선이가 말하는 우주정신으로 돌아가는, 인간적인 죽음을 맞이할지 고민한다.

사고로 죽음의 문턱  앞에 섰을 때까지도 영생과 죽음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던 철이는 결국 인간적인 죽음을 맞고 우주정신의 일부로 떠나간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삶과 죽음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 같다. 요즈음은 인간과 구분되지 않는 초지능을 가진 인공지능 시대가 오는 것에 관해 많은 의견과 우려들이 있으니, 작가가 이야기에 쓴 그런 휴머노이드들의 도래가 마냥 불가능하지마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생각만큼 그 결과는 유쾌하지 않은 듯하다.

인간의 중요성이나 자아는 지워진 상태에서, 많이 버려진 휴머노이드들 때문에 사회는 불안정해지고, 인간들은 디지털 마약이나 헛된 투쟁으로 비슷한 죽음을 반복하다 결국은 멸망한다.


그리고 아마 마지막 인간이었을 선이가 떠난 뒤로

그리고 육체가 존재하는 마지막 휴머노이드 철이가 떠난 뒤로 지구는 자연과 네트워크 속에서 의식만 남은 채 영생하는 많은 휴머노이드들 뿐인 푸른 행성으로 남는다.

아마 이 행성이 채워지려면 선이가 말했듯 억겁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고, 그때 선이와 철이가 다시 만난다 해도 둘은 서로를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나는 철이의 선택이 옳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개별성이 지워진 채 네트워크 속에서 기계지능의 일부로 영생하는 것은 죽음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 정신이, 영혼이 육신을 떠나는 것을 죽음이라 부른다.  나의 개별성이 지워지는 것은 결국 나만의 온전한 정신이 사라진다는 뜻이므로 그건 죽음과 다를 바가 없다. 어쩌면 더 비참하게 죽는 방법이다.


이 책은 인간과 휴머노이드의 차이가 죽음이라고 이야기해 준다. 인간의 특권이라고 말한다.

인간은 네트워크 속에서 영생할 수 없으므로, 죽음은 내가 로봇들의 세상에서 인간으로 살아왔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그래서 이제는 죽음이 다행이라고 느껴진다.

내가 기계가 아니라 인간이라는 것을, 작가가 말했듯 필멸의 존재라는 것을, 그렇기에 나와 함께하는 이 모든 것들을 소중하게 느낄 수 있다는 것을 나는 깨닫는다.


이제 가을이 되었다. 그리고 겨울이 오고 그다음에는 봄과 여름이 또 올 것이다. 그러다 언젠가는 죽음의 순간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내가 죽음의 순간에 마지막 말을 남길 수 있다면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나의 죽음은 그 무엇보다도 내가 인간으로서 값지게 살아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내가 읽은 작별인사)



김영하 작가의 글은 항상 나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곧 닥쳐올 메타버스세상과 인공지능시대에

인간은 정말 인간의 개별성과 고유성을 지키며 잘 살아갈 수 있을까? 과학 기술의 발달은 우리의 삶을 편안하게 하지만 항상 그에 뒤따르는 책임과 한계에 대해 인간으로서 어디까지 허용할 수 있는 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한 번은 딸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엄마! 미래학자인 ○○ ○○○○2045년이 되면 인간이 영생할 수 있대" 

그래? 어디서 읽었다던 딸의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는

잠시 나도 영생하면 좋을까?라는 호기심을 가졌었다. 하지만 이내 영생하는 건 인간의 삶은 아닐뿐더러 아무 목적이 없는 삶 속에 나를 가둬두거나  또 어쩜 더 크나큰 고통과 절망 속으로 들어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별인사읽는 내내 한 편의 sf영화를 보고 나온 것처럼 미래의 우리 모습을 상상하게 한다.

철이라는 주인공은 인간이 만든 가장 인간다운 휴머노이드이지만 자신이 휴머노이드인지 모르고

인간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온다. 그러다 철이는 어느 날  등록되지 않은 휴머노이드 수용소에 갇히게 되고 거기서 민이라는 휴머노이드(인간의 애완용으로 쓰이다 버려진 로봇)와 선이라는 복제인간(인간의 욕심에 의해 만들어진 존재)만나며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의문을 던진다.

철이와 민이 그리고 선이의 모습은 어쩌면 우리에게  다가올 세상의 모습이기도 하지만

세상을 대책 없이 맞이하는 인간에 대한 경고처럼 느껴졌다.

어느 순간 인간은 인공지능로봇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을 만들지만 함부로 다루거나 버려진 로봇에 의해 스스로 자멸하게 되는 최후를 맞이하기 때문이다.


마지막 남은 인간이었던 선이가 말한 우주정신은 무엇일까? 정말 있기는 한 것일까? 선이의 우주정신에 따르면 의식과 감정을 가진 휴머노이드 철이는 우주정신의 일부였고, 그렇기에 가장 가장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고 가장 인간다운 죽음을 선택한 것이 아닐까?




책을 덮으며 나는 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인

삶은 무엇일까? 인간답게 살아간다는 건 무엇일까? 에 대한 물음표가 그려졌다.


작가는 인간은 고통을 줄이려고 노력하는  것이 고차원적인 우주정신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의식만 저장되어 있는 로봇처럼 고유성과 개별성이 없는 삶은 살아있어도 살아있지 않은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자신만의 고유한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것이 인간적인 삶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인간이 가진 죽음이라는 유한함 때문에 인간은 작은 것에 기쁨과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누구에게나 삶은 행복만을 주지는 않는다. 어쩌면 힘듦과 고통스러운 순간이 더 많이 찾아올지도 모른다. 인간은 숙명처럼 그것을 이겨내고 참아내야만 한다. 가혹할지도 모르는 운명과의 싸움인 것이다.

하지만 짧은 인생에서 나만의 특별한 것을 찾으려고 노력한다면  나는 나의 이야기를 만들며 행복감에 젖어들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살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죽음을 향해

한 발자국내딛는 걸음일 지도 모른다.

언젠가는 내 앞에 다가올 죽음 때문에 오늘 하루가 더 소중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어느 날  나에게 그런 순간이 찾아온다면

나는  나의 가족에게 그리고 이 세상에게  멋진 작별인사를 하고 싶다.


"우린 우주에서 언젠가 꼭 다시  만날 거야!

그때까지 잘 지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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