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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품과 혁명 사이, 민주화와 독점 사이

365 Proejct (271/365)

by Jamin

내글에 이어서 생각하기 014: F&B 프랜차이즈의 무대론 에 이어서

내글에 이어서 생각하기 015: 무인화를 넘어서 에 이어서

내글에 이어서 생각하기 016: 산업의 OS 를 새로 쓰는 혁명 에 이어서


챗GPT의 아버지 샘 알트먼이 던진 한마디가 시장을 얼어붙게 했습니다. "AI 버블이 존재한다." AI 혁명의 최전선에서 깃발을 들고 있던 사람의 입에서 나온 경고였기에 그 파장은 컸습니다. 하지만 그의 다음 말에 더 주목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AI의 미래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1999년 제프 베조스가 아마존 주가가 90% 폭락했을 때 했던 말을 떠올리게 합니다. "인터넷 버블은 터질 것입니다. 하지만 인터넷은 계속될 것입니다." 역사는 그가 옳았음을 증명했습니다. 닷컴 버블의 잔해 위에서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이 태어났고, 그들은 세상을 바꿨습니다.


지금 우리는 똑같은 역사적 변곡점에 서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혁명은 더 복잡한 역설을 품고 있습니다. 기술은 민주화되지만 권력은 집중되고, 개인은 자유로워지지만 시스템은 더 복잡해지는 양면성의 시대가 오고 있습니다.


킬러 앱을 넘어 '킬러 에이전트'의 시대로


2007년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들고 무대에 섰을 때, 그는 "전화기를 재발명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진짜 혁명은 앱스토어가 열리면서 시작됐습니다. "There's an app for that"이라는 문구가 시대정신이 되었습니다.


2025년 현재, 우리는 새로운 문구를 목격하고 있습니다: "There's an agent for that."


그런데 여기서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대화하는 AI'일까요, 아니면 '일하는 AI'일까요? 답은 명확합니다. 우리는 자율적으로 업무를 수행하는 '디지털 대리인(Agent)'을 원합니다.


LLM: 혁명의 심장인가, 강력한 부품인가?

챗GPT가 촉발한 충격은 LLM의 압도적인 능력을 증명했습니다. 하지만 LLM은 혁명의 유일한 심장이기보다, 기존 자동화 기술이라는 차체에 올라탄 강력한 신형 엔진에 가깝습니다.


정해진 규칙만 따르던 RPA(Robotic Process Automation)에 인간의 언어와 맥락을 이해하는 '지능'을 부여함으로써, 비로소 자율적인 '에이전트'가 탄생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마치 자동차가 마차의 차체에 엔진을 달면서 시작되었듯, AI 에이전트는 기존 자동화 기술에 LLM이라는 엔진을 장착하면서 태어났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엔진이 꼭 현재의 트랜스포머 아키텍처일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이미지 생성에 쓰이던 디퓨전 모델이 언어 모델링에 적용되거나, 예측하지 못한 새로운 머신러닝 모델이 등장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기술의 형태가 아니라, '소프트웨어가 스스로 학습하고 발전한다'는 개념 그 자체입니다.


숨겨진 비효율의 바다


맥킨지의 2024년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기업들이 '조정 비용(coordination cost)' - 즉, 부서 간 소통과 의사결정에 소모하는 비용 - 으로 연간 23조 달러를 쓰고 있습니다. 이는 미국 GDP와 맞먹는 규모입니다.

AI 에이전트의 진정한 가치는 바로 이 '보이지 않는 복잡성'을 해결하는 데 있습니다. 한 대형 병원의 수술 스케줄링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200명의 외과의사, 500명의 간호사 일정

30개 수술실의 가용성

환자 1만 명의 긴급도와 대기 시간

수천 종의 의료 장비와 약품 재고

보험사별 상이한 승인 절차


메이요 클리닉은 AI 에이전트로 이 문제를 해결해 응급실 대기 시간을 평균 3시간에서 1.5시간으로 단축했습니다. 복잡성을 정복한 것입니다.


민주화의 역설: SI 산업의 부활


그렇다면 이런 강력한 AI는 '소프트웨어 개발의 민주화'를 가져올까요? 코딩을 모르는 사람도 말로 앱을 만드는 시대가 온다는 장밋빛 전망이 넘쳐납니다.


하지만 현실은 더 복잡합니다. 개인화된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문턱은 낮아지겠지만, 역설적으로 SI(System Integration) 산업은 더욱 강화될 것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수많은 개인화된 앱과 AI 에이전트, 그리고 기업의 레거시 시스템을 서로 '통합(Integration)'하는 작업은 차원이 다른 복잡성을 낳기 때문입니다. 파편화된 솔루션들이 뒤죽박죽 섞여 돌아가는 것을 방지하고, 전체 시스템의 데이터 흐름과 보안을 통제하는 일은 더욱 어려워집니다.


팔란티어(Palantir)가 AIP(Artificial Intelligence Platform)를 통해 보여주는 가치가 바로 이것입니다. 개별 AI 모델의 성능이 아니라, 기업의 복잡한 데이터와 운영 시스템 전체를 연결하고 통합하는 능력이 진짜 경쟁력이 되는 것입니다.


'민주화'는 양면성을 가집니다:


개인 차원: 오픈소스와 AI 코딩 에이전트로 '나만의 노션'을 만드는 자유

기업 차원: 이 모든 것을 안정적으로 엮어낼 고도의 기술력 필요


결과적으로, 더 전문적이고 중앙집권적인 기술 권력이 생겨날 수 있습니다.


개인화된 앱의 시대, 그러나 앱스토어는 죽는다


AI 시대의 종착지는 '1인 1 SW', 즉 '초개인화된 소프트웨어'의 시대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우리의 예상과 다를 수 있습니다.


가장 먼저 위협받을 것은 중간 규모의 앱 개발자들입니다. 간단한 유틸리티 앱이나 아이디어 기반의 앱은 이제 AI가 즉석에서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앱 생태계는 극단적으로 양분화될 것입니다:


상위 1%: 거대 기업의 리그

AAA급 게임 (GTA, 콜오브듀티 등)

전문 기업용 솔루션 (SAP, Salesforce 등)

고도의 기술력과 자본이 필요한 영역


하위 99%: 자기완결적 앱 생성

AI가 즉석에서 생성하는 개인용 앱

사용자가 직접 프롬프트로 만드는 맞춤형 도구

공유되지 않고 개인만 사용하는 일회성 솔루션


사라지는 중간층

독립 개발자의 유료 앱

중소 규모 앱 스튜디오

아이디어 기반 스타트업


결과적으로, 우리가 알던 앱스토어라는 플랫폼의 영향력은 게임과 일부 대기업 앱을 제외하고는 크게 약화될 것입니다.


새로운 격전지: '복잡성의 늪'에서 건져올릴 황금


AI가 가장 큰 가치를 창출할 영역은 '복잡성의 늪(Swamp of Complexity)'에 빠져 있는 산업들입니다:

항공산업: 유나이티드 항공은 AI 에이전트로 연간 지연 비용을 15% 절감했습니다. 날씨, 기체 정비, 승무원 스케줄, 연결편 상황을 실시간으로 분석해 선제적으로 일정을 조정합니다.


법률: 글로벌 로펌 베이커맥켄지는 AI 에이전트로 계약서 검토 시간을 70% 단축했습니다. 수만 건의 판례와 규정을 순식간에 분석합니다.


제조: 도요타는 공급망 AI로 부품 재고를 25% 줄이면서도 생산 차질을 제로로 만들었습니다.


이들 산업의 공통점은 개별 작업은 단순하지만, 전체 시스템의 복잡성 때문에 최적화가 불가능했다는 점입니다. AI는 이 복잡성을 정복함으로써 천문학적인 가치를 창출할 것입니다.



Phase 1: 인프라 전쟁 (2023-2025) - 현재 위치

지금은 '곡괭이와 청바지'의 시대입니다. 엔비디아의 시가총액이 3조 달러를 돌파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하드웨어: GPU 전쟁에서 엔비디아가 앞서지만, 빅테크들이 자체 칩으로 반격 준비

모델: GPT, 클로드, 제미나이의 3파전 속 오픈소스(라마, 미스트랄)의 부상

클라우드: MS-오픈AI vs 구글 vs 아마존의 삼국지


Phase 2: 킬러 에이전트와 SI의 시대 (2025-2028)

앞으로 3년은 두 가지 흐름이 동시에 진행될 것입니다:


에이전트 폭발: 각 산업별 '카테고리 킬러' 에이전트 등장

영업 에이전트: 개인화된 제안 생성과 최적 타이밍 접근

법무 에이전트: 계약서 작성부터 소송 전략까지 자동화

연구 에이전트: 논문 작성, 실험 설계, 데이터 분석 수행


통합의 복잡성: SI 기업들의 황금기

수백 개 에이전트의 오케스트레이션

레거시 시스템과의 통합

데이터 거버넌스와 보안 관리


Phase 3: 보이지 않는 지능 (2028-2035)

최종 단계에서 AI는 전기나 인터넷처럼 '보이지 않는 유틸리티'가 됩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더욱 강력해진 플랫폼 독점이 자리할 것입니다.


표면: 완전히 개인화된 디지털 경험

이면: 소수 거대 플랫폼의 절대적 지배


직접 투자를 넘어선 기회

골드러시 때 가장 큰 돈을 번 것은 금을 캔 사람이 아니라 곡괭이를 판 사람들이었습니다:


에너지 인프라: AI가 2030년까지 전 세계 전력의 10%를 소비할 전망

소형모듈원자로(SMR)

차세대 배터리

그린 에너지 솔루션


보안과 프라이버시: AI가 다루는 데이터가 많아질수록 기하급수적으로 중요

동형암호 기술

연합학습 플랫폼

차등 프라이버시 솔루션


거버넌스와 통합: 복잡성을 관리하는 새로운 산업

AI 감사 및 편향성 테스트

시스템 통합 컨설팅

에이전트 오케스트레이션 플랫폼


인재와 역량의 재정의

AI 시대의 승자는 AI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AI를 '활용하는' 사람입니다:


새로운 핵심 역량

프롬프트 엔지니어: AI와 효과적으로 소통하는 기술

AI 통역사: 기술과 비즈니스를 연결하는 가교

시스템 아키텍트: 복잡한 AI 시스템을 설계하고 통합

윤리 설계자: AI의 공정성과 투명성 보장


샘 알트먼의 버블 경고는 틀리지 않았습니다. 현재 AI 기업의 90%는 5년 내에 사라질 것입니다. 하지만 살아남은 10%가 만들 미래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것입니다.


AI 혁명은 단순한 기술 진보가 아닙니다. 그것은 복잡한 역설들의 교차점입니다:


기술은 민주화되지만, 권력은 집중됩니다

개인은 자유로워지지만, 시스템은 더 복잡해집니다

진입 장벽은 낮아지지만, 성공의 장벽은 높아집니다

소프트웨어는 개인화되지만, 플랫폼은 독점화됩니다


바로 이 역설 속에서 우리는 기회를 찾아야 합니다. 거품과 혁명 사이, 민주화와 독점 사이, 그 좁은 틈새에 진짜 미래가 숨어 있습니다.


미래학자 윌리엄 깁슨의 말처럼, "미래는 이미 와 있다. 단지 고르게 분포되어 있지 않을 뿐이다." AI의 미래도 마찬가지입니다. 혁명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문제는 이 불균등한 미래의 분포에서 당신이 어느 쪽에 설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복잡성을 정복하는 쪽인가, 복잡성에 압도당하는 쪽인가. 통합하는 쪽인가, 파편화되는 쪽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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