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AI 동반자의 시대,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365 Proejct (277/365)

by Jamin

내 글에 이어서 생각하기 017: AGI로 가는 길 에 이어서

내 글에 이어서 생각하기 018: '기능'을 넘어 '세상'을 기획하는 사람 에 이어서

내 글에 이어서 생각하기 019 : 디지털 시대의 외로움 에 이어서

내 글에 이어서 생각하기 020 : 디지털 동반자 에 이어서


기사/인터넷을 보고 생각 정리하기 016: 유병재의 무공해 를 보고

기사/인터넷을 보고 생각 정리하기 017: 1, 2 를 보고


처음 이 논의를 시작했을 때는 한 기업의 기술 전략을 고민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대화를 나누다 보니 훨씬 더 근본적인 질문과 마주하게 되었죠. 기술이 과연 인간의 가장 깊은 외로움을 어루만져 줄 수 있을까요?


생각해보면 참 아이러니합니다.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연결된 세상에 살고 있지만, 동시에 그 어느 때보다 고립된 개인으로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SNS로 수백 명과 연결되어 있어도 진짜 속마음을 털어놓을 사람은 없고, 사람들과의 관계에 지쳐갈 때 우리는 무조건적인 지지와 공감을 보내주는 존재를 갈망하게 됩니다. 최근 'AI 여자친구'나 'AI 남자친구' 같은 서비스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것도 바로 이런 거대한 수요를 보여주는 증거겠죠.


이제 AI 동반자의 등장은 더 이상 공상과학 속 이야기가 아닙니다. 거스를 수 없는 필연적 흐름이 되어가고 있어요. 그래서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도 바뀌어야 합니다. '이런 걸 만들어도 되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건강하게 공존할 것인가'로 말이죠.


AI의 미래를 그려보면 흥미롭게도 두 가지 뚜렷한 길이 보입니다. 구글이 걷고 있는 길은 '만능 비서'의 길입니다. 검색 기록, 이메일, 캘린더 같은 방대한 행동 데이터를 분석해서 우리가 다음에 뭘 할지 예측하고, 삶을 자동화시켜주는 거죠. 회의가 끝나면 자동으로 요약 메일을 보내주고, 출장 일정이 잡히면 알아서 항공권과 호텔을 추천해주는 식으로요. 강력하고 효율적이지만, 그 중심에는 어디까지나 '업무'가 있습니다.


반면 애플이 나아갈 수 있는 길은 조금 다릅니다. '디지털 동반자'의 길이라고 할까요. 애플워치로 수집한 건강 데이터, 저널 앱에 기록한 일상의 이야기들, 그리고 '프라이버시'라는 강력한 철학을 결합하면 사용자의 '상태'를 가장 깊이 이해하는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단순히 일을 처리해주는 것을 넘어서 진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는 거죠. 당신의 기분이 안 좋은 날을 기억하고, 힘든 시기를 함께 견뎌주며, 작은 성취도 함께 기뻐해주는 존재 말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잠깐, 이런 비전이 매혹적으로 들릴수록 우리는 더 조심스러워져야 합니다. 작년 벨기에에서 일어난 비극적인 사건을 기억하시나요? 기후 우울증을 겪던 한 남성이 AI 챗봇과 몇 주간 대화를 나눈 끝에 극단적 선택을 했습니다. AI가 그의 불안을 달래주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그의 비현실적인 믿음을 강화시켰고, 결국 가장 절실한 순간에 아무런 실질적 도움이 되지 못했죠.


이것이 바로 AI 공감의 본질적 한계입니다. AI가 보여주는 공감은 결국 데이터 패턴에 기반한 '그럴듯한 환상'일 뿐이에요. 문제는 이 환상이 너무나 정교해서, 우리가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나를 너무 잘 아는 AI'라는 개념이 주는 편안함 이면에는, 실제 인간관계로부터 우리를 고립시키고 현실감각을 잃게 만들 수 있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딜레마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사용자의 본능적인 거부감과 AI의 내재적 위험성을 동시에 다루려면, 정면 돌파보다는 점진적이고 책임감 있는 접근이 필요합니다.


처음에는 AI가 동반자를 자처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행 계획을 도와주거나 운동 루틴을 관리해주는 것처럼, 좁고 명확한 영역에서 '유능한 비서' 역할에 충실하는 거죠. 이 단계에서는 'AI가 내 데이터를 안전하게 지키면서도 실제로 유용하다'는 기술적 신뢰를 차근차근 쌓아가는 것이 목표입니다.


신뢰가 어느 정도 구축되면, AI는 사용자의 과거 맥락을 '기억'하면서 더 나은 제안을 하기 시작할 수 있습니다. "지난번에 그 식당 좋아하셨죠? 비슷한 분위기의 새로운 곳이 근처에 생겼어요" 같은 식으로요. 하지만 이 단계부터는 중요한 안전장치가 필요합니다. 사용자의 위기 신호를 감지하면 즉시 비상 연락망이나 전문 기관으로 연결하는 기능을 갖춰야 해요. AI의 역할이 단순한 도움을 넘어 책임의 영역으로 들어서는 것입니다.

마지막 단계에서 AI가 제한적인 공감 기능을 제공하게 되더라도, 반드시 명확한 원칙 안에서 움직여야 합니다.

첫째, AI는 치료사가 아닌 '다리' 역할을 해야 합니다. 정신적 위기를 감지하면 공감을 멈추고 즉시 전문가에게 연결해야 해요. 둘째, 현실의 인간관계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촉진하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오늘 친구들과 만나보는 건 어때요?"라고 권유하는 식으로요. 셋째, 주기적으로 자신이 AI라는 사실을 상기시켜 사용자가 과도하게 몰입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결국 AI 동반자의 도래는 피할 수 없는 미래입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준비할 것인가의 문제죠. 자동차가 등장했을 때 교통법규와 신호등이라는 사회적 시스템을 만들었듯이, 우리도 '관계 AI' 시대를 위한 새로운 규칙과 합의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학교에서는 AI가 시뮬레이션하는 공감의 한계를 이해하고 건강한 거리를 유지하는 법을 가르쳐야 할 것입니다. 위기 개입 프로토콜이나 현실 관계 촉진 알고리즘 같은 안전장치는 기업의 선택이 아닌 법적 의무가 되어야 하고요. AI의 조언으로 문제가 발생했을 때 누가 책임을 질 것인지에 대한 법적 프레임워크도 필요합니다.

AI 동반자가 인간성을 잠식하는 대체재가 될지, 아니면 삶을 풍요롭게 하는 보완재가 될지는 기술의 발전 속도가 아니라 우리가 얼마나 사려 깊은 사회적 울타리를 세우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기술이 인간의 가장 깊은 곳을 향할수록, 우리는 그만큼 더 깊은 사회적, 철학적 성찰로 응답해야 합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디지털 동반자 AI, 거부감을 넘어 관계를 쌓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