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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글을 이어 쓰기 003 : 조직의 창의성 을 이어쓰다.
2019년의 글을 다시 읽으며
2019년에 썼던 '창의성의 시대'를 다시 읽어보았다. 당시 나는 창의성을 '신비로운 마법'이 아닌 '조직의 생존을 위한 수단'으로 정의했고, IQ보다 EQ가 강조되던 흐름 속에서 개인이 어떻게 조직에 기여할 수 있는지를 고민했었다. "창의성은 결과로 증명되어야 한다"는 명제와 "안정성이 확보되어야 도전할 수 있다"는 주장은 지금 읽어도 여전히 유효하다.
하지만 반은 맞았고, 반은 틀렸다. 정확히 말하면, 세상이 변하면서 전제가 틀려버렸다. 당시 나는 "아이디어를 무지막지하게 많이 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100개의 쓰레기 같은 아이디어 속에 1개의 보석이 있다는 '양(Quantity)의 법칙'을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25년의 기술적 토양 위에서 이 문장은 수정되어야 한다.
2019년과 2025년의 가장 결정적인 차이는 '도구의 폭발적 진화'에 있다. 지금의 AI는 단순히 텍스트를 요약하는 수준을 넘어섰다. 미드저니(Midjourney) 같은 도구는 전문가 수준의 그림을 몇 초 만에 그려내고, 수노(Suno)는 작곡 지식이 없는 사람의 프롬프트만으로 3분짜리 풀(Full) 음원을 만들어낸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하다. '아이디어'가 '초안(Draft)'이 되는 시간이 획기적으로 단축되었다. 과거에는 머릿속의 상상을 눈앞의 실체로 만들기 위해 스케치를 하고, 목업을 만들고, 데모를 제작하는 데 며칠 혹은 몇 주가 걸렸다. 하지만 지금은 그 과정이 실시간으로 일어난다.
우리는 이제 가설을 세우고(Think), 곧바로 시제품을 만들어(Make), 빠르게 검증(Check)할 수 있는 '초고속 프로토타이핑'의 시대를 살고 있다. 아이디어의 생산 비용이 '0'에 수렴하는 시대, 창의성의 정의는 이제 완전히 달라져야 한다.
과거의 창의성이 '흰 도화지에 무언가를 그려내는 능력'이었다면, 2025년 창의성의 시작점은 '어떤 그림을 그려달라고 말할 것인가(Prompt)'로 이동했다.
AI는 답을 주는 기계다. 하지만 그 답의 수준은 철저하게 인간이 던지는 질문의 수준에 종속된다. "매출 올릴 방법을 알려줘"라고 묻는 사람과, "현재 우리 브랜드의 리텐션 지표가 정체되어 있는데, 30대 남성 유저의 심리적 저항선을 낮출 마이크로 카피를 제안해 줘"라고 묻는 사람의 결과물은 천지 차이다.
이제 인간의 역할은 답을 찾는 것이 아니다. 문제의 본질을 꿰뚫고, AI가 최선의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정확한 방향을 지시하는 설계자가 되는 것이다.
질문을 던져 수많은 결과물이 쏟아졌다면, 그다음은 무엇일까? 여기서 2025년 창의성의 핵심인 '안목(Taste)'과 '여유(Slack)'가 하나로 만난다.
소화해야 안목이 생긴다
안목은 단순히 A와 B 중 하나를 고르는 '찍기' 실력이 아니다. 수많은 결과물 중 '우리 맥락에 맞는 최선'을 골라내려면, 그 결과물이 나온 논리와 배경을 깊이 있게 이해해야 한다. 즉, 정보를 씹어 삼켜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드는 소화(Digestion)의 시간'이 필수적이다.
도구는 빨라졌는데 우리가 더 바쁜 이유는, 기계의 속도에 맞춰 '반응'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진정한 안목은 속도전에서 한 발 물러나 지긋이 바라보는 '여유'에서 나온다. 기계가 쏟아낸 결과물의 이면을 해석하고, 그것을 내 지식으로 체화할 물리적인 시간(Slack)을 확보하는 것. 그것이 곧 안목을 기르는 유일한 길이다.
해석이 다음 질문을 만든다
자동화된 결과물을 깊이 있게 해석하고 소화하면, 비로소 "이건 좋지만, 저건 우리 브랜드 톤과 맞지 않아"라는 판단이 선다. 그리고 이 판단은 다시 "그럼 브랜드 톤을 더 부드럽게 바꿔서 다시 그려줘"라는 '다음 단계의 더 나은 질문'으로 이어진다.
결국 [질문 -> 결과 -> (여유를 통한 소화와 해석) -> 안목 있는 결정 -> (더 깊어진 질문)]으로 이어지는 순환 고리를 만드는 것. 이것이 AI 시대에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창의적 프로세스다.
"안정성이 확보되어야 도전할 수 있다"는 말은 여전히 맞다. 하지만 그 안정성을 누가 제공하는가는 완전히 달라졌다. 인공지능의 발전은 자본의 집약을 가속화하고, 효율성의 논리 앞에서 인간은 언제든 대체될 수 있는 비용으로 치부되기 쉽다. 정치적, 정책적 보호장치가 논의되겠지만 기술의 속도를 따라잡기엔 한계가 뚜렷하다.
냉정하게 말해, 다시 '각자도생'의 시대가 열렸다. 외부의 시스템이나 회사가 나를 지켜줄 것이라는 기대는 이제 순진함을 넘어 위험하다.
하지만 이것이 꼭 비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AI는 거대 자본이나 팀 없이도 개인이 막강한 생산성을 발휘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제 안정성은 누군가에게 받는 선물이 아니라, 회사가 경쟁 우위를 지키기 위해 해자(Moat)를 파듯, 내가 스스로 내 주위에 파야 하는 방어선이다.
2025년, 나를 지키는 해자는 두 가지 깊이로 만들어진다.
첫째, '대체 불가능한 경험의 깊이(Deep Dive)'다. AI가 웹상의 데이터를 긁어 만들 수 없는 것. 현장에서 직접 부딪히며 얻은 '진흙 묻은 경험', 사람의 마음을 읽는 통찰, 복잡한 이해관계 속에서의 조율 능력 같은 것이다.
둘째, '압도적인 생산성(Tool Mastery)'이다. 도구를 내 손발처럼 부려 혼자서도 팀 단위의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능력이다.
이 두 가지를 결합하여 나만의 해자를 구축한 사람은, 조직에 속해 있든 홀로 있든 상관없이 스스로 안정성을 만들어낸다.
기술은 눈부시게 발전했다. 우리는 2019년에는 상상도 못 했던 도구들을 손에 쥐고 있다. 하지만 창의성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그것은 여전히 '더 나은 결과를 만들기 위한 치열한 고민'이다.
AI 시대의 창의성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마법'이 아니다. 범람하는 기술과 정보의 홍수 위에서 길을 잃지 않고, "이게 정말 최선인가?", "우리가 진짜 해결해야 할 문제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용기다.
그러니 우리는 더 치열하게 공부해야 한다(도메인). 그리고 더 여유롭게 고민해야 한다(소화). 기계가 답을 쏟아내는 속도에 매몰되지 않고, 인간의 속도로 해석하고 결정할 때 비로소 우리는 도구의 주인이 될 수 있다. 2025년, 창의성은 다시 한번 인간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