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카에게 쓰는 편지 #3
언젠가 기표용지를 마주할 조카에게, 투표를 왜 해야 하느냐고 물어올 너에게.
지난번 편지를 쓰고 난 후, 여름이 왔네. 여름. 네가 태어난 계절. 그 이야기도 함께 하게 될 것 같네. 햇살에 잠들고, 소나기 소리에 잠이 깨는 여름이야.
그리고 삼촌은 이 글을 2017년 19대 대선을 2주 앞둔 시점부터 구상하기 시작했어. 그 대선의 별명 중 하나는 '장미 대선'이었지. 한동안 대한민국의 대통령을 뽑는 선거는 겨울에 치러졌는데, 이번에는 특수한 상황으로 5월에 치러졌으니까. 장미가 피는 시절이라 그런가 봐. 응, 여름을 앞두고 네가 태어난 나라 대한민국에서는 나라의 대표이자,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을 뽑는 선거가 이뤄졌어.
뭐든 그저 생각나는 대로 해치우는 나이지만, 너에게 쓰는 편지글들은 아무래도 조금은 더 생각하고 쓰는 것 같아. 네가 이걸 읽을지, 읽더라도 언제쯤이 되어서야 읽을지는 모르겠네, 여전히. 이번 장미 대선의 과정을 보면서 언젠가, 반장 선거 같은 일에서부터, 집에서 있을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어느 순간까지. 네가 마주할 선택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어 졌기 때문에 글을 쓰기로 결정했어.
어떤 선택에는 정답이 없다고 생각해. 사실, 시험문제 같은 세상은 없단 말이야. 갈림길과 같은 것이지. 그저, 선택만이 있을 뿐이야. 프루스트가 '가지 않은 길'을 말하는 것은 선택하지 않은 과거의 길이 정답이기 때문이 아니야. 그저 미련과 후회가 남아 있을 뿐이지. 그러나, 정답이라는 건 삼촌이 여태 마주친 스무몇 해의 기억 속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었어.
누군가에게는 또 욕을 먹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박근혜 씨가 18대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을 때 민주주의의 실패라는 식의 발언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어. 그런 선택까지도 감내할 수 있는 시스템이, 민주주의고 그것이 현대 국가라고 생각했거든. 그래서 반 장난식으로 우리가 정말로 정치적으로 미국에 비해 10년 20년 뒤쳐져있다면 우리는 또 그때가 되어서 트럼프를 뽑는 나라가 될 거라는 식으로 이야기했었지. 왜냐면 그건 누군가의 선택이고, 그 선택을 만든 것은 어떤 상황들이고 그 상황들은 분명 다시 돌아온다고 믿거든.
히틀러를 뽑은 과거의 독일 시민들은 어떤 생각으로 한 선택일까? 프랑스 국민전선의 르펜을 뽑은 사람들은? 글쎄, 선택에 가치 판단을 하지 않을 수는 없지만. 그 가치에 대해서 우열을 메기는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고민이 되기도 해. 그래, 크게 보면 진보와 보수라고 해보자. 어느 곳에 내 가치를 더 둘 수는 있지만 그게 학술적으로나, 아니면 과학적으로 분명한 진실이라고 보기는 어려우니까.
신이 우리에게 정답을 정해준 삶을 디자인했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아. 신이 있다고 해도 말이야. 우리 삶이 어떤 질문에 대한 답이라고 한다면, 몇 마디 말로 정리할 수는 없지 않을까? 교훈을 주는 이야기들은 교과서에 나오는 문장으로 끝낼 수 있는 거란 생각은 안 들어. 정말 그 걸로 끝난다면 미쳤다고 그 작가는 수십 수 백날을 앉아서 그 글들을 적어 낼 이유가 없지 않겠니.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라는 책, 그리고 영화에서는 그 질문에 답이 '42'라고 하는 식으로 이걸 풍자해. 그리고 그 풍자에 대한 부연설명이 이래. 삶에 궁극적인 해답이 42이긴 한데, 질문이 너무 모호하다는 식으로. 아무리 생각해도 42이긴 한데, 이 답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질문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라면서. 그래서 그 질문을 만들기 위해 '지구'를 만들었다는 식으로 책과 영화는 말을 하지.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그 질문을 찾은 삶을 살고 있는 것이겠지.
답을 찾는 것은 재미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 끝이니까. 답은 계속 변화할 거니까. 그러니 우리는 더 나은 질문을 찾아 남에게 건네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네. 그래서 이번 19대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에 던져진 질문에 대한 답은, 글쎄. 고민을 했지만 삼촌은 선택을 했고, 그 선택에 후회도 미련도 없으며 마찬가지로 내 선택이 정답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아.
중요한 것은 선택, 답보다는 질문이라고 생각해. 이번 19대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에는 15가지 질문들이 있었지. 삼촌은 한동안은 그중 몇 가지 질문들에 깊게 고민할 것 같아. 그래서 이 글들 쓰기로 결심한 거지.
선택은 우리 삶을 관장해. 사르트르가 말한 것처럼 인생은 태어남과 죽음 사이의 선택일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선택보다 질문이 더 중요할 수도 있단 생각을 한 번쯤 더 해봤으면 좋겠어. 뭐, 말장난처럼 들릴 수는 있겠네. 하지만 삼촌은 정말로 그렇게 생각한단다. 네 삶이 답이라면, 그 질문은 무엇이었을까?
선거 이야기를 잠깐 해볼까. 여러 질문들이 충돌하는 와중에 사람들은 선택을 해. 그리고 그 와중에 다시 갈등이 발생하지. 선거가 끝난 지 며칠이 지난 지금은 또 다른 갈등이 생겨나고 있어.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는 이런 류의 선거를 차악을 가려내는 것이라는 말을 하기도 하지. 왜냐면 질문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가 많거든. 아무도 선택하고 싶지 않을 때도 있고. 한편으로는 누군가가 뽑히지 않게 하기 위해 투표를 하는 경우도 있었어.
일단은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이, 너무 크기 때문에 이런 일들이 발생한다고 생각해. 지금의 대통령인 문재인 대통령이 제왕적 대통령을 지향하지 않는다고 말한 것도 그런 까닭일 수도 있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그렇게 소박한 모습을 보여주려 한 것도 그것 때문일 수도 있겠고. 응, 대한민국 대선이라는 질문의 답은 너무 크기 때문에 사람들은 싸우고, 또 화를 내. 그리고 어떨 때는 차악을 선택할 수밖에 없기도 하지.
그리고 또, 자신의 선택을 증명하기 위해 악을 쓴단다. 그걸 우리는 정치라고 불러. 정답은 없지만, 이 쪽으로 가보자고 말하는 것. 그게 나쁘다는 말을 하는 것은 아니야. 다만, 그동안 삼촌은 조금은 피곤했어. 왜 저렇게 까지 말해야 할까 하는 순간들이 있었거든. 특히, 자신의 선택을 따르지 않으면 비겁하다거나, 무임승차를 하는 거라거나 하는 말들. 불편한 말들이었어. 그들의 감정이나, 논리가 와 닿지 않는 것은 아니었는데도 왜 난 불편했을까 고민하게 되었지.
결국은 삼촌도 지극히 개인주의자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까? 적어도 먹고살만한 위치에 아직 있기 때문일까, 글쎄. 모르겠네. 하지만 한편으론.
삼촌은 열매보다 씨앗을 선택했다고 믿고 있어. 왜인지는 설명하기 어렵네. 전에 말했던 것처럼, 봄이 끝나갈 때 씨앗을 지키는 사람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할까? 봄은 끝나가. 정말로, 여름이 오고 있고. 우리는 오랫동안 흐린 하늘 아래 땀을 흘리게 될 거야. 변화는 힘든 일이야. 우리의 선택으로 세상은 변할 거야. 그 변화가 동화처럼 아름다운 엔딩일 리가 없거든. 그리고 그렇게 모두 모두 행복하게 살았어요~라는 세상은 없어. 마법검을 휘두르는 용사도, 불을 뿜는 나쁜 용도 없어 이 세상은. 모두가 그저 서로 다른 선택을 하고 살아가는 것뿐이야. 물론 그 선택이 극단적인 결과로 돌아오기도 하지. 우리는 전쟁을 겪었고, 지금도 어느 정도로 확실한 기록이 있는 이래로 20세기부터 전쟁이 멈추었던 적이 없지 지구에서는. 우리는 서로의 생명이 소중하다는 그 가치에도 '절대'라는 선택을 붙일 수가 없었어. 이번 대선에서는 실질적인 사형제도 부활을 외치기도 했었지. 한 명의 살인자를 죽여 100명의 살인자를 만드는 무서운 선택이라고 생각하지만 삼촌은, 그것과 별개로 그 조차도 '절대' 적일 수 없구나, 다른 사람과 내가 선택한 길이 아직도 많이 다르구나. 그런 사람이 이 땅에 20%가 넘는 숫자로 보이는구나 라는 생각을 했단다.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라는 영화가 기억나. 홍상수 감독의 영화였는데, 삼촌은 그렇게 재밌게 보진 못했지. 그냥 인상 깊게 봤긴 하지만 말이야. 그 이야기가 기억나. 그 흐름이. 선택을 뒤로 되돌린다면 다른 선택을 할까 내가. 삼촌은 어느 날 언제로 다시 돌아가고 싶냐는 질문을 받아서, 최근에. 그런데 마땅히 돌아가고 싶지가 않아. 되돌릴 수가 없으니까. 그래, 정말로 지금과 그때에 선택은 맞고 틀리다의 영역에 있을지는 모르겠어. 지금부터 앞으로 계속 삼촌이 씨앗을 지켜낼 수 있을까? 그럴 자신이 있는 걸까 하면 잘 모르겠어. 폭풍우 속에서 텃밭에 물길을 내는 농부의 심정으로 버텨낼 수 있을까? 하늘이 어두워질 때 연장을 정비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새싹까지 나는, 열매까지 나는 기다릴까, 여름을 나고 가을로 갈 수 있을까?
선택은 잔인해. 다시, 어떤 선택은 돌아올 수 없는 갈림길과 같아. 때문에 어쩌면 필연적인 아쉬움과 후회를 남길 수도 있지. 선택을 하지 않으면 다만, 바뀌는 것이 없을 거야. 멈춰 서야 하니까. 그런데 또 선택을 하더라도 바뀌지 않을 수도 있지. 나는 미미해.
그러나 그 선택이 모이면 달라지지. 세상은 움직이기 시작하지. 그게 옳은 방향이냐 아니냐는 알 수 없어. 선택에 정답은 없는 거니까. 우리는 햇빛도, 달빛도 아니다. 우리는 별빛이고, 촛불이야. 바람에 꺼질 수도 있는 존재들. 그래도 우리는 우리 몸을 태워 서로에게 빛을 나눌 수 있어. 그렇게 우리는 내가 아닌 우리로 기억된다고 생각해. 광장의 내 모습은 나와 내 친구가 기억하겠지만 광장의 흐름은 서울, 한국을 너머 세계로 알려졌어. 그렇게 우리는 선택들을 모아서 윷놀이를 하는 거야.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몰라. '모 아니면 도' 가 아니라, '도개걸윷모' 모든 행마가 결정될 수 있어. 어느 지방에서는 백도가 나올 수도 있겠지. 뒤로 돌아갈 때도 있는 거야. 결과에 대해서 불평할 수는 있지만, 그 탓을 누구에게 돌려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어. 가끔은 돌아가는 것이 좋을 때도 있으니, 또 결과를 평가하는 것이 어려운 것 같기도 하고. 이번에 취임한 문재인 대통령은 '국정교과서' 문제를 돌려놓았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으로 돌려놓았어. 이걸 누군가는 싫어하고, 누군가는 좋아하겠지.
어쨌든 앞으로 건 뒤 로건 말은 움직였어. 이게, 변화야. 그래서 나는 박근혜 정부 시절에, '제발 아무것도 하지 말아달라'라는 마음과 '정체'에 대한 불안감이 뒤섞인 밤들을 지냈어. 멈추어 있다는 것은 끔찍하거든. 네가 그런 것을 경험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예를 들면 출퇴근길에 끔찍한 교통정체들. 삼촌이 너의 아버지와 함께 겪었던 명절 고향으로 내려가는 버스 안에서의 몇 시간들. 변하지 않는 것이 아름다울 때도 있지만, 대체로 우리는 변화해야만 하는 존재라고 생각해. 아니, 가끔은 극단적으로 변하지 않는 것들은 모두 무서워. 변치 않는 사랑? 그런 게 존재할 리도 없지만, 존재한다고 하면 너무 무서워. 나는 변하고, 너도 변하고 있는데 왜 사랑은 그대로이지? 그게 왜 아름다운 거지?
그래서 그게 룰이야. 적어도 이 한반도의 반토막에서 우리가 만들어낸 룰. 우리는 변화를 만들어 낼 거야. 그러려면 윷가락이 모두 모여 있어야 해. 하나라도 빠지면 게임이 되질 않아. 윷가락 하나 없이 게임을 진행해서는 안되는 거야. 그래서 우리는 모두가 함께 윷을 모아 던지는 것을 쟁취하기 위해 4월에도 5월에도 그리고 6월에도 광장에서 쓰러져 갔었던 거야. 그 짐을 이고 지고 모여서 윷놀이를 하고 있는 거란다.
물론, 뒷짐 지고 훈수를 두는 것이 참 편하고, 재밌긴 해. 판도 잘 보이고. 하지만 그건 우리의 일이 아니야. 그렇게 보는 시각을 가지는 것은 좋지만, 우리는 모두 이 윷놀이에 참여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돼. 게임에 참여하지 않고 게임의 결과 불평을 해서는 안된다는 거지. 그러나 윷을 이렇게 던지자 저렇게 던지자, 저 말을 움직이자, 업어서 가자, 이 길로 가자 말을 해야 하는 거야. 그 과정이 정치고, 그 과정이 삶이야. 작게는 네 삶에서부터 네 주위의 삶, 그리고 이 나라와 세계까지 모두 네가 던지는 윷가락에 따라 결정되는 거야. 그 결과는 불확실하지만, 던져지지 않는다면 결과도 없을 거야.
게임은 계속, 진행이 될 거야. 게임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는 게임을 바꿀 수도 있단 걸 알아야 해. 왜 꼭 윷놀이어야 하지? 라며 질문을 할 줄 알아야 해. 신념을 가지고, 패배에도 냉정해야만 해. 승리에 자만하지 말아야 해. 그리고 더 중요하게 이 게임에 승패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보아야만 해.
누군가에게는 이 게임의 끝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어. 그럴 때 과감하게 판을 뒤엎으라는 말을 하고 싶지는 않아. 우린 그러지 않을 수 있는 수준까지는 올라왔다고 생각해. 네가 투표용지를 받을 나이 때에는 더욱 발전한 모습을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단다. 하지만, 다음에는 이 게임을 하자고 제안할 수는 있겠지.
미래는 낙관주의자의 밑그림으로 시작된다고 생각해. 그것을 채색하는 것은 비관주의자들의 몫일 수도 있어. 하지만 대체적으로 다음 세대는 희망하는 장삼이사들의 목소리로 결정된다고 생각해. 때문에 게임을 즐길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단다. 게임의 목적이 무엇일까? 삼촌은 즐겁기 위함이라고 생각해. 나는 삶이라는, 네 선택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 물론, 그렇지 않은 게임들이 있어왔어. 목숨을 걸어야 하는 선택이, 여태껏 많이 보이지, 세상에는. 그게 슬프지만 그런 게임은 없어져왔고, 앞으로도 더 사라져 갈 것이라고 믿어.
그리고 날카로워 지길 바라. 자신의 선택에 자긍심을 가지고 다른 선택을 존중해야 할 줄 아는 날 선 모습을 마련하면 좋겠어. 그러기 위해서는 신념을 갈고닦아야 해. 이 게임을 즐기기 위해서는 그 자세가 필요하다고 봐. 신념, 내 선택의 근거를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이냐라는 거지. 그리고 그 신념은 내 본능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해. 본능에 충실한 것이 나쁜 것은 아니야. 하지만 그것보다 더 소중한 신념이 생겼다면, 끊임없는 고민으로 그 날을 갈아둬야 해.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고민을 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신념은 그런 고민들 속에서만 길러지니까. 그렇게 영원히 성장하는 신념은, 본능을 이길 수 있으니까 말이야. 그런 신념 하나, 둘 쯤은 가지고 있으면 왠지 멋지지 않을까, 생각을 한 날들이 있었어. 왜냐면 그런 신념을 갈아온 사람은 어떤 결과에도 흔들리지 않는 대들보가 될 수 있거든.
그러면 그 결과를 맞이하며, 웃고 앞으로 나갈 수 있게 되겠지. 다음번엔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는 작은 행운을 기대하면서 말이야. 연극이 끝나고, 공연이 끝나고. 영화가 끝나고 은막에. 이 판을 준비한 사람들의 이름이 흘러나와. 드럼에 누구~ 기타에 누구~ 촬영에 누구~ 그리고 박수소리가 들리고 우리는 자리를 뜨게 되지. 뜨거운 무대조명 아래에서 사람들은 모여서 인사를 해. 백스테이지에서 이제 옷을 갈아 입고, 화장을 지우고 저마다 뒤풀이를 가거나, 누군가는 오늘 한 실수를 복기하고 있을 거고, 누군가는 축하 전화를 받느라 정신이 없을 거야. 그렇게 잔치가 끝났어,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야.
선거는 축제야. 우리에게 주어진 15개의 질문들. 너와 내가 목소리 높여 나눠온 가치들. 누군가가 심어온 씨앗들. 어떤 이가 수확한 열매들. 그리고 그 잔치는 이제 끝났어. 어떤 선택을 했고, 어떤 답이 내려왔건. 무대를 비우고, 다음 날을 맞이해야겠지. 어떤 날은 허무할 거야. 수없이 많은 날을 준비했는데. 누군가는 다음 무대를 위해 연습실로 가겠지. 쉬고 싶은 사람도 있을 거야.
내게 여름은 유독 길었어. 남들보다 더 많은 땀을 흘리고, 덜 더워했지. 내 기분에 취해 있었으니까, 덥다고 느낄 겨를이 없었어. 그래서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고, 흐르는 땀을 닦지 않은 채 잠드는 밤들이 있었고.
이불속에는 여름이 찾아왔어. 다시. 창문을 열면 봄을 밀치고 여름이 찾아왔지만, 아침엔 마른기침 속에서 깨기도 해. 그래도 이불속엔 여름이 왔어. 끈적함 속에서 되돌아오는 어떤 기억들, 그 틈에 묻어 나오는 감정들.
삼촌이 처음 제대로 광장에 나선 2008년 여름. 그리고 삼촌이 군 생활을 시작한 그 여름. 이제는 10년 가까이 지나버린 시절 속에서 그때의 그 거리가 떠올라. 아스팔트를 뛰었고, 길바닥에서 졸았지.
그 여름이 어쩌다 가을을 뛰어넘어 겨울이 되었던 것 같단 생각이 들었어. 삼촌은 노래를 찾아 헤매었었지. 광장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그런 노래는 찾기 어려웠어. 팔뚝질 하는 사람도 없었고. 그게 조금 슬펐지만, 그렇구나 이해했었어. 그리고 봄이 온다 싶었어. 이렇게, 지나가는구나.
그러나 다시 여름이야. 우리는 또 무더위에 지칠 거야. 선택에 정답은 없으니까. 새로운 게임을 준비해야 하니까. 막이 내렸으니, 뒷정리도 해야 하니까. 그리고 너는 이제 한 돌을 맞이할 거야. 얼마 남지 않았어, 진짜 여름이. 그 사이 광주에서는 '임을 위한 행진곡' 이 흘러나왔고, 한열이 형이 쓰러진 지가 30년이 되어 버렸지.
어쩌면 삼촌은, 삼촌의 선택의 결과를 확인하지 못할지도 모르겠어. 삼촌은 씨앗을 지키기로 결심했으니까. 그런데 정작 이 씨앗이 무슨 씨앗인지도 잘 모르겠거든. 여름이 왔으니, 가뭄이 들면 물을 길어 오고, 장마가 올 때는 물길을 틀어 줘야겠지만 - 가을까지 지켜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네. 노력을 하겠지.
네게도 봄이, 여름과 가을 그리고 겨울이 오겠지. 윷가락을 던져야 하는 때가 오겠지. 어떤 선택을 할지. 어떤 씨앗을 고를지, 열매를 수확할지. 너무 궁금하다. 그러려면 나는 내 여름을 보람차게 보내야겠지. 네가 다시 갈 수 있는 밭을 만들어 둬야겠지. 그게 내 일인 것 같아. 지금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