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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이 느린데 방 다 취소할게요

게스트하우스가 바꾼 하루#4- 고객응대

by 김윤섭

원칙 대 개인 사정, 친절한 업소라면 뭐가 우선일까? 게스트하우스를 하다 보면 다양한 유형의 고객을 만난다. 숙박객이다 보니 개개인의 성향이 더 드러날 수밖에 없다. 다른 가게는 보통 물건만 하나 사가든지, 음식만 먹고 가면 끝이다. 하지만 숙박업소에서는 먹고, 자고, 쉬고, 놀고 거의 모든 활동을 한다. 짧게는 잠만 자지만 오래 숙소에 머무르는 경우도 많다. 거의 하루 종일 나가지 않고 일하거나 쉬는 고객도 있다. 게스트하우스는 호텔처럼 모든 시설이나 서비스가 완비돼 있지는 않다. 가성비를 내세우기는 하지만, 저렴한 비용만큼 기본적인 숙박 환경을 제공하는 측면이 더 크다. 하지만 비용에 관계없이 조그만 불편도 참지 못하는 손님이 있다. '진상'과 '진솔' 고객 사이를 왔다 갔다 한다. 다른 곳에 가면 나도 고객이기에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문제는 도가 지나칠 때다. 이전에 한 숙박객 일행이 뭐가 마음에 안 든다며 호텔비 내놓으라고 떼를 썼다. 그때 정말 기가 차다 못해 치가 떨렸다. 그래서 가급적 세부적인 숙박 조건, 사진, 서비스 내역 등을 꼼꼼하게 예약 사이트에 기재해 둔다. 그럼에도 문제는 생긴다.


"저기요." 한 손님이 쿵쾅 거리며 뛰어왔다. 입실한 지 1시간도 채 안 된 1인실 이용객이었다. 4일 연박하기로 하고 현장 결제를 마친 후였다. 뭔가 싶었다. 표정이 잔뜩 뒤틀어져 있었다. 게스트하우스 이용에 그렇게 심각할 일은 없었다. "여기 원래 이렇게 인터넷이 느려요?"라고 물은 뒤 손님은 대뜸 환불 얘기를 꺼냈다. 가끔 와이파이가 끊어지긴 해도 인터넷이 느려서 문제 된 적은 없었다. 얼마 전 게임 동호회도 단체로 와서 한바탕 팀 배틀을 즐기고 갔다. 40~50명 정도는 동시에 쓸 수 있는 속도였다. 가서 보니 무슨 일인지 인터넷이 많이 느려져 있었다. 손님 노트북에 인터넷과 동영상 등 몇 개 창을 동시에 띄워져 있었다. 무슨 급한 작업을 해야 한다고 했다. 무선 확장기를 리셋하자 속도가 조금 나아졌다. 유선 랜선도 꽂아보고 이것저것 해보면 될 것 같았다. 노트북에 비해 스마트폰 속도는 괜찮았다. 하지만 그 손님은 이미 다른 숙소에 전화하고 있었다. "오늘부터 4일간 1인실 예약 가능한가요?"


숙박업소의 생명은 친절이다. 손님의 기분을 살리고 재방문을 이끈다. 그렇다면 어디까지 친절일까? 상냥하고 정성껏 응대하는 것은 기본이다. 사전적으로 친절은 '고분고분함'이라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공손하고 부드러운 태도로 말을 잘 듣는다는 뜻이다. 대화를 잘 받아주는 것은 물론 요구를 들어주는 것까지 해당된다. 고민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때론 한도 끝도 없는 고객의 요구를 어디까지 들어줄 것인가? 인터넷 불만 손님도 사실 엄밀히 말하면 환불의 의무가 없었다. 인터넷 속도는 고객 약관에 정한 필수 서비스가 아니기 때문이다. 또 그것이 그렇게까지 중요하다면 손님이 사전에 확인했어야 했다. 시간을 두고 개선할 수 있는 여지가 있었다. 무엇보다 객실은 이미 이용했고, 서비스 준비 등 숙소 측의 노력이 들어갔다. 독한 운영자라면 환불 불가 원칙을 고수했을 것이고, 응당의 환불 수수료를 충분히 공제할 수 있는 문제였다. 하지만 예약 기준에 위배 안 된다고 손님의 딱한 사정을 그냥 넘기기는 영 석연치 않다. 고객의 나쁜 평가도 그렇지만 서로 불편한 마음도 신경 쓰인다. 특히 여리고 마음씨 착한 주인장일 경우 더 그렇다.


우리 게스트하우스 대표는 친절 왕이다. "사장님이 너무 친절하다.", "배려에 감사한다", "~는 좀 부족했지만 사장님은 친절하다." 등의 글이 숙박 후기에 거의 빠지지 않는다. 안 봐도 비디오다. 고객 편들어 가족들하고 싸울 정도이기 때문이다. (대표는 누나다.) 한 번은 너무 화가 났다. 형편이 별로 좋지 않은데 너무 고객만 위했다. 취소 기준도 없고, 과다 할인에, 퍼주기식 숙소 제공, 병적인 위생 관리까지, 대중없었다. 만감이 교차했다. "먼저 자신을 존중해야 남도 존중할 수 있다.", "자기가 살고 나서 남도 살릴 수 있다.", "사람마다 바뀌는 서비스 기준을 누가 신뢰할까",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얼마나 가치 있는 서비스가 나올까" 등 많은 논쟁 끝에 고객과의 균형을 잡았다. 개개인의 고객에 너무 맞추기보다 서비스 기준 자체를 조절하는 것이다. 최소한의 계약이라는 틀에서, 합의되고 고지한 기본 선 안에서 친절 같은 개별 서비스를 높이는 것이다. 이것은 다 가족이 운영하다 보니까 겪은 일이다. 그냥 정해 놓은 기준대로 직원한테 서비스하라고 했다면 애초에 이런 고민은 없었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한 사람 한 사람의 고객을 상대한다는 것은 여전히 민감한 일이다. 생각과 감정이 다 다르기 때문이다. 또 이론과 별개로 실제 현장에서 고객을 대하면 마음이 약해질 때가 많다. 그래서 가장 분쟁이 있을 수 있는 부분에서 약간의 게스트하우스 고객응대 가이드라인도 만들었다.

먼저 게스트하우스의 모든 서비스 내역과 운영 상황을 투명하게 확인할 수 있는 정보를 최대한 공개한다.

이런 정보를 사전에 서로 확인할 수 있는 인터넷 숙박 사이트에서 가급적 예약을 하게끔 한다. 예약 취소 등 중대한 조건 변경 시 숙박 사이트를 통해 처리하도록 중재를 받는다.

단체숙박이나 할인, 이벤트 등 구두 예약이 불가피할 경우, 상세 내역은 문자로 남기고 숙소 현황과 조건을 알 수 있는 홈페이지 링크 등을 알려준다.

이렇게 사전에 고지하고 이해를 구했다고 하더라도 고객과 다양한 견해 차이가 생길 수 있다. 이럴 때 서로가 자기 원칙만 고수한다면 감정만 상하고 법적 문제까지 커질 수 있다. 진솔하게 서로의 입장을 얘기하고 조금씩 양보해 시원한 합의점을 찾는 게 가장 좋다.


개인의 사정을 봐서 어쩔 수 없이, 아니면 통 크게 양보하더라도 최소한의 원칙은 있다. 분명한 원칙과 얼마나 혜택을 입었는지를 가감 없이 알려주는 것이다. 인터넷 때문에 취소한 고객한테 했던 말이다. "원래 인터넷 속도는 환불 조건이 아닌데 해주는 거예요. 방도 쓰셨잖아요. 환불 수수료도 카드 단말기 사용법을 몰라 안 떼고, 그냥 취소해 드립니다." 그러자 뚱하게 서 있던 고객 얼굴이 미안함과 멋쩍은 웃음으로 환해졌다. "아, 아까는 너무 경황이 없어서 죄송합니다." 그때 천사처럼 순수한 청년의 모습이 스치듯 지나갔다. 자기 자신을 자각하는 순간이었다. 사람이 너무 자기주장만 내세우면 때론 괴물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얼마나 은혜를 입었는지 아는 순간 천사가 된다. 이런 아름다운 변화를 볼 수 있다면 세상살이 좀 양보해도 괜찮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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