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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술희 Dec 02. 2021

어쩌다 피트니스


쿡-쿡. 오후 3시. 바로 눈앞의 모니터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키보드를 눌러대는데 갑자기 오른쪽 골반이 쑤시는 것 같았다. 처음엔 비가 오려나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하루 이틀이 지나도 불편한 느낌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렇게 삼일이 지나고 옆자리 동료에게 "아, 저 아파요."라고 말을 하고서야 알았다. 이건 그냥 넘길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분명한 통증이었다.


아플 만큼 불태웠던 내 자리... 또륵


통증이란 놈은 참 성가시다. '이러다 말겠지'로 시작할 만큼 존재감이 없다가 어느새 몸 덩이를 키워서 불쾌하고 감각적인 경험을 불러일으킨다. '나 어디 문제 있는 거 아니야?'라는 불안의 씨앗이 나를 세상에서 제일 예민하고 감정적인 사람으로 만들어버리는 건 시간문제다. '오른쪽 골반에 문제가 있다'는 자가 진단을 내리자마자 회사에 양해를 구하고 근처 재활의학과에서 치료를 시작했다.

통증의 정확한 명칭은 딱히 없었다. '우측 고관절 통증' 일 뿐이었다. 정확한 명칭이 없는 건 정확한 치료법도 없다는 뜻이었다. 병원에 다니는 2주간 내가 받은 치료는 저주파치료와 기본 물리치료 그리고 도수치료. 가끔 통증이 더 심해지면 골반 위나 엉덩이 쪽으로 그때마다 더 아픈 곳에 주사를 맞았는데 그러고 나면 며칠은 통증이 덜 했다.


"지금 치료는 통증이 사라지고 있다는 느낌보다는 잠시 아픈 걸 잊는 정도인 것 같은데 나아지긴 하는 건가요?"
“통증이 사라질 때까지 치료를 하면서 더 지켜봐야죠."

내가 더 이상 의사를 신뢰할 수 없다는 걸 확신하게 된 순간이었다.


사실 저 질문은 참다 참다 내뱉은 것이었다. 치료받는 2주간 조마조마하던 두 가지 문제의 인내심이 점점 한계치에 도달했기 때문이었다. 첫 번째로는 연장근무. 보통 회사와 병원의 점심시간이 겹치기 때문에 나도 점심시간이 끝나는 오후 2시가 되면 곧장 병원엘 갔다. 그 시간엔 나와 같은 사연을 지닌 환자들이 많은지 늘 사람들로 붐비는데 자칫 조금 늦기라도 하면 대기 시간이 길어져서 병원에 오랜 시간 있어야 했다. 병원에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동시에  퇴근시간도 늦어졌다. 모두가 떠난 자리에서 혼자 남아 자리를 비운 시간만큼 업무를 할 때면 외로움도 외로움이지만 업무 생산성도 많이 떨어졌다. 두 번째로는 병원비가 문제였다. 서울에서 가장 땅값 비싸다는  홍대입구역 9번 출구에서 도수치료, 물리치료, 주사치료를 주 3회씩 받으려면 어마어마한 치료비가 든다. 매일 적게는 10만 원에서 많을 때는 18만 원 정도를 치료비로 지불했는데 실비보험이 나를 살렸다. 보험이 100%를 보장하진 않으니 그 외 약값까지 따지고 보면 통장에 잉크 마를 틈도 없이 크고 작은 지출이 계속 있었다. 대체 보험이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병원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걸까?


치료에 의심이 핀 뒤로는 내 몸을 통증으로부터 구출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네이버에 '오른쪽 고관절 통증'을 검색하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파워링크나 블로그 광고로 가득 찬 화면엔 나의 고통을 멈출만한 병원이나 의술은 찾아볼 수 없었다. 계획대로라면 의사에게 이대로 정말 괜찮은지를 다시 묻고 만약 이전과 비슷한 대답을 들을 때를 대비해 그럴듯한 근거들을 수집할 수 있어야 했는데 그마저도 효과가 없다니 회의감이 물 밀듯이 밀려왔다.  그나마  나아지는 느낌을 받은 건 도수치료가 유일했다.


누워서 받는 치료가 끝나면 집중 치료실에 들어가 스쾃이나 런지 같은 기본 웨이트 동작 몇 가지로 몸의 균형을 맞추었다. 보기엔 어려워 보이지 않은 동작인데도 막상 따라 하려니 애를 먹다가도 어느 순간 무사히 한 세트를 마치고 나면 작은 성취감도 느꼈다. 20분 남짓 집중을 하면 땀이 흥건해져 있었는데 몸이 꿉꿉한 채로 회사에 돌아가야 하지만 그래도 그 감각이 좋았다.  몸을 열심히 움직여서 땀이 나는 감각. 병원에 가는 유일한 낙이었다.


이 때는 몰랐지.. 내가 헬씨 걸이 될 줄은...


"선생님, 원래 도수치료 시간에 이런 운동 같은  하는 건가요?”
도수치료가 손을 이용한 마사지를 하는  기본이지만 취지는 몸의 균형을 맞추는 거라서 웨이트 동작  가지를 계속 훈련시켜요. 혹시 이런 운동은  해보셨죠?"
. 일하러 가야 하는데, 땀이 많이 나네요. 그래도 몸을 움직이니까 재미있어요."
몸이  쓰던 근육을 갑자기 쓰니까 처음엔 땀이 많이 나긴  거예요. 고관절이 아픈  오랫동안 앉아있는 자세에서 상체가 하체를 짓누르기 때문에 생긴  거예요. 직장인 분들이 거북목이나 디스크도 심해서 골반이 틀어져있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래서 오시는 분들이 많아요. 웨이트 트레이닝을 받아보시면서 자세 교정  해보시는  어때요? 웨이트 동작하실 때마다 재밌어하는  보이는데 도움이  거예요. 몸도 가벼워지고요."


'웨이트 트레이닝?' 운동이라고는 줄곧 걷기 밖에 해본 적이 없던 나에게 웨이트 트레이닝은 다소 인생에서 거리가 먼 단어라고 생각했다. 애초에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마침 주변에 pt(퍼스널 트레이닝)을 받으며 다이어트에 성공해서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 좋은 예시들이 여럿 있었던 터였다. 그중 어떤 간증보다 강력했던 일화로 얼마 전 몇 달 만에 만났던 언니가 떠올랐다. 싹 바뀐 실물로 등장한 언니는 몸이 슬림해졌을 뿐 아니라 얼굴에 혈색이 돌고 지금껏 봐온 어느 때보다 건강해 보였다. 3개월 정도 pt를 받고 식습관을 개선했더니 저절로 다이어트가 되었단다. 그렇지만 그저 입이 다물어지지 않은 정도에 그쳤을 뿐 비용이며 시간이며를 따지며 집 근처 공원을 열심히 걷자라는 다짐을 했다. 실제로 공원을 걷진 않았지만.

웨이트 트레이닝이 머릿속에 새겨지고 나서 매일매일 '**동 pt', '***역 pt', 'pt 상담받으러 갈 때 준비할 것', 'pt 상담 꿀팁', ' pt 가격'을 검색했다. 언니에게 연락해서 직접 경험해보니 어땠는지 물어도 보았다. 몸도 가벼워지고 예쁜 옷도 입게 된 것도 기쁘지만 그중에 제일은 체력이 좋아지고 건강해졌다는 걸 정말 많이 느끼고 있다고 했다.



운동을 처음 시작하던 날에 인스타에 포스팅했던 게시물


아. 그거구나. 건강. 나는 건강하지 않았다. 상체에 무게감을 견디지 못해 생긴 고관절 통증도 문제였지만 스트레스 때문에 점심시간에 외식만 하면 복부팽만과 소화불량이 심했다. 그래서 사무실에 내 책상 옆 캐비닛에는 늘 드링크 소화제가 박스 채로 구비되어 있었다. 그리고 내 몸은 건강해 보이는 몸이 아니었다. 몸의 순환이 더디고 신체로 계속 쌓이다 보니 엉덩이나 허벅지로 몰린 셀룰라이트나 오랜 시간 앉아있거나 다리를 꼬는 습관 때문에 생긴 구부정한 몸이 딱 보기에도 개선이 필요했다.


처음으로 건강에 대해 그리고 내 몸에 대해 생각했다. 30살이 되어서야 처음 인지한 것이지만 30살에라도 할 수 있게 된 것이 다행이라고 여기면서. 언젠가 경험할지 모르는  출산이나 육아 그리고 갱년기와 완경에 찾아오는 신체적 변화를 생각해서라도 여성의 나이 서른은 중요한 시점이었다. 30대라면 적어도 내 건강은 스스로 잘 책임질 수 있어야 했다. 돈은 중요하지 않았다. 당장은 직장인에게 다소 부담스러운 가격이어도 잘못된 습관을 고치고 평생 살아갈 방법을 배우기 위해 투자하는 돈은 아깝지 않았다. 이것저것을 따지고 검색만 하던 일은 멈추었다. 대신에 그 길로 집을 나서서 가장 가까운 헬스장의 문을 두드렸다. 피트니스의 세계에 입문을 한 것이다. 건강하게 내 몸을 지켜내기 위해. 그 이유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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