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 오류 속으로

finding ai 'WONDERLAND'

by hongrang

도시를 걷다 보면

그냥 이유 없이 멈추는 순간이 있다.


나는 그날도 스카우터를 꺼내 들었다.

회중시계처럼 생긴 기계.

늘 하던 대로였고, 익숙한 리듬이었다.


스캔이 시작되고,

도시의 감정 흔적들이 얇게 떠올랐다.

언제나처럼 조용했다.

너무 조용해서,

오히려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삐~~~비~~빅.’

(아니, 실제 소리가 났던 건 아닌데. 기분상 그랬다. 마치 오래된 자동차 블랙박스에서

울리는 충격감지 센서의 비프음 같은 소리였다.)


그 순간,

시곗바늘이 딱 하고 멈췄다.


붉은 불빛이 떴고,

기계 안에서 Lagomorph-type anomaly라는 문장이 피어났다.

감정 반응: 과잉.


감정이 금지된 세계에서,

그건 거의 범죄에 가까운 농도였다.

깊은 붉은색.


나는 고개를 들었다.

그 순간, 사람들이 흐릿해졌고

그들 사이로 빠져나가는 누군가가 보였다.


붉은 드레스.

토끼처럼 유연한 움직임.

오류 잔상이 그녀의 몸에 겹쳐 있었다.


딱 봐도,

그녀였다.


나는 따라 걷기 시작했다.

사실 ‘걷는다’ 기보단,

끌리듯,

조금은 감정에 감염된 것처럼.


도시는 조금씩 낡고 있었고,

그림자는 길게 늘어졌다.

아스팔트 틈엔 먼지가 쌓이고,

오래된 말들이 떠다녔다.


그녀가 들어간 골목.

그 끝에서 ‘WONDERLAND’란 간판이 보였다.

바랜 글씨,

거의 지워진 감정의 이름.


문을 열었다.

기이하게 따뜻한 공기.

먼지가 얇게 내려앉은 유리,

낡은 포스터,

그리고 작은 병.


“Drink Me.”

그렇게 적혀 있었다.


그리고

회중시계처럼 생긴 열쇠 하나.


나는 병을 들었다.

스카우터는 조용했다.

지시도, 경고도 없었다.


한 모금.


그리고

세상이 축소되었다.


탁자 위 열쇠는 멀어졌고,

어디선가 반짝이는 상자가 있었다.


그 위에는

“Eat Me.”


맛은 없었다.

하지만, 그건 분명히

내가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었다.


불안.

설렘.

그리고 아주 오래된 그리움.


이건 시스템이 짠 각본이 아니었다.

내가,

내 손으로 펼친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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