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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수연 Nov 08. 2023

출산까지 한 달 반, 이게 정상인가요?

43세 딩크족에게 아기가 굴러 떨어지다.



겨울을 알리는 차가운 비가 주말 내내 주룩주룩 내렸다. 그 와중에 나는 드디어 임신 32주, 9개월 차에 접어들었다. 임신 말기이다.


말기(末期)란 정해진 시간이나 일이 끝나는 시기를 뜻한다. 인터넷에 말기를 검색하면 위암 말기, 췌장암 말기, 유방암 말기, 담낭암 말기가 연관 검색어에 뜬다. 오로지 한 가지 '김밥 말기'가 당당하게 껴있다.


말기란 그런 것이다. 암 말기처럼 죽음에 가까워 오거나  공주병 말기처럼 도무지 답이 없거나, 정권 말기처럼 붕괴의 징조를 보일 때 쓴다. 임신 말기. 말기병 환자가 된 기분으로 왠지 불안하면서도 어쩔 줄을 모르겠다.


임신 말기.
임신이 곧 종료된다.



이 시점에서 임산부인 나를 새롭게 본다. 여전히(아직도) 전혀 실감하지 못하고 있는 말기 임산부.


아기가 있는 삶상상이 안된다. 눈을 감고 그려보지만 막막할 뿐이다. 그건 필시 아기의 얼굴을 4D로 볼 수 있었던 입체 초음파를 건너뛰어서 일 것이라며 핑계를 대본다. 왜 입체초음파 안 찍었냐고 하면 아기의 안녕과 관련도 없는데 너무 당연히 예약 잡으라고 하기에... 


간호사: 입체초음파 예약하고 가세요.
나: 입체초음파 꼭 찍어야 하나요?
간호사: 아니오. 엄마 아빠가 아기 얼굴 궁금하니까 찍는 거예요.
나: 필수 검진 아니면 예약 안 해도 되는 거죠?
간호사: 왜 안 하려고 하세요?
나: ...? 



내가 이렇게 제멋대로다 보니 아기의 입체초음파를 건너뛰었다. 다른 임산부들이 자기 자식의 입체초음파를 서로 보여주며 자랑하는 동안 나는 묵묵히 있다. 우리 아기가 누굴 닮았을까 궁금해 죽겠으면서 말이지. 


여적 실감을 못하고 있다 보니 태교와도 거리가 멀다. 다행히 서울대학교 산과 전문의 교수님이 유퀴즈에 나와서 태교는 과학적 근거가 없다고 하셨기에 마음만큼은 편안하다.



요 을매나 좋은 정보인가! 

난 태교 없이 자유롭다. 


봄아, 엄마는 대신 잘 챙겨 먹고 마음을 편히 할게  




도저히 자연분만은 자신이 없다. 선택 제왕으로 90% 마음을 굳혔다. 봄의 예정일은 1월 1일. 나에게는 선택지가 있다. 최대한 시간을 끌어 1월에 낳을 것인가, 안전하게 12월에 낳을 것인가? 물론 아기가 일찍 나오겠다면 하는 수 없다. 


40대 임산부는 요리조리 머리를 굴려보았다. 아무래도 12월이 낫지 않은가? 12월 생이면 1월 생보다 1년 일찍 어른(?)이 된다. 그래야 성인대 성인으로 술이라도 한잔하고 봄의 결혼식에 참석할 가능성이 조금 더 높아진다. 흑흑. 


산부인과 담당 과장님은 당연하다는 듯 제왕절개를 받아들이시며, 정하고 싶으면 자연 분만 하라고 하신다. 문득 오기가 생기지만 오기보다 강한 두려움이 나를 엄습한다. 그래 제왕절개로 가자.   


제왕절개는 대개 1~2주 전에 수술 날짜를 잡는다. 그전에 갑자기 산통이 시작되거나 양수가 터지면 응급제왕이 되기 때문이다. 어차피 응급제왕도 제왕인데 뭐가 그렇게 다른가 하면 아래와 같이 한 뼘 정도 다른 점이 있다.


선택 제왕과 응급제왕(선택제왕 예정이었던 경우)의 차이는,

1. 응급제왕은 임부의 상태를 알고 있는 담당교수의 부재 가능성 

2. 미리 입원해서 준비하는 선택제왕과 달리 응급제왕은 서둘러 수술을 하게 된다.

3. 선택제왕에서 불필요했던 내진을 받게 된다. 갑자기 호출된 교수가 현장에 오는 동안의 시간 지연이 있을 수 있다.


이대로라면 봄은 12월 마지막 주에 뿅 하고 세상에 나오게 된다. 위와 같은 이야기를 구구절절 쓴 이유는 앞으로 출산까지 한 달 반 밖에 안 남았다는 사실을 쓰고 싶어서였다. 그런데도 난 아직 실감을 못하고 있다.


내 뱃속에 애 있는 거 맞지?



이래도 되는 걸까? 이렇게도 실감하지 못하는 엄마라니... 

세상에 나만 이런 것 같다. 

도무지 공감받을 자신이 없어서 남편에게도 말을 아끼고 있다.


지금 이 글은 부산으로 내려가는 SRT에서 쓰고 있다.

32주에 혼자 부산이라니. 

이 정도로 내가 실감을 못하고 있다고. 괜찮은 거냐고요. 




안녕하세요! 매거진 독자여러분, 

읽어주시고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아기를 가질까 말까 고민하는 분들을 위해 글을 쓰고 있어요.


자유를 최대 가치로 여겨 딩크로 살지만 

철이 없음을 거부하고 싶고, 


아기를 좋아하지 않지만 

관계를 소중하게 이어나가고 싶은, 


그런 마음으로 삽니다. 

출산까지 죽 이어나가볼게요. 


구독과 하트는 제게 큰 응원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


송수연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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