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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수연 Feb 21. 2020

자기 연인을 의심하고 쉽게 불안해하는 여자

먼저 이별을 통보하는 여자의 심리

"나 오늘 갑자기 몸이 안 좋아져서 못 만날 것 같아."

"... 그래... 푹 쉬어..."


남자 친구와의 저녁 약속이 취소되어 침대에 누워 있는 혜영 씨는 혼란스럽다.


나와의 약속을 취소하다니.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이 날 저 날을 헤매다가, 얼굴이 빨갛게 상기돼서 나타난 어느 날의 그의 얼굴에 다다른다.


분명 그날의 남자 친구도 몸이 좋지 않았다.

적어도 오늘보다는 확실히 좋지 않았던 날임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직접 봤으니까.  


"아픈데 왜 여기까지 왔어? 집에서 쉬지!"

"아... 네 얼굴 보면 금방 나을 것 같아서..."


오늘 전화기 너머로 뿜어 나온 그의 에너지가 그 날의 그것과 퍽 다르다고 느끼는 순간,


혜영 씨의 생각은 의심으로 진화한다.


그는 정말 아픈 걸까?

내가 충분히 편안하지 않은 걸까?

마음이 변해버린 걸까?


이런 종류의 생각은 두 사람의 관계 자체를 흔들어 대기 시작한다.


어쩌다가 우리가 이렇게 된 걸까...

무엇이 문제인 걸까?

이제 헤어지게 되는 걸까?


혜영 씨는 마음이 시큰거려 잠을 이루지 못하고 밤새 이별 후를 상상한다.



Photo by Anthony Tran on Unsplash



스토리가 너무 비약적인가?


관찰자의 관점으로 보면 스토리가 A에서 B로 이어지지 않고 마치 A에서 D나 F정도로 건너뛴 느낌이 든다.  


그러나 이런 일은 실제로 종종 일어난다.





대체 혜영 씨는 왜 불안해졌을까?


현재까지의 대화로 밝혀진 사실은,


1. 남자 친구는 몸이 아프다고 말했다.

2. 남자 친구는 약속을 취소했다.


이 정보에서 추론할 수 있는 내용은,

= 남자 친구는 오늘 휴식을 원한다.


그러나 혜영 씨의 논리 알고리즘은 조금 다른 것 같다.

'남자 친구는 오늘 휴식을 원한다.'에서 몇 가지 더 추론했기 때문이다.


1. 남자 친구는 (어쩌면) 나를 거절하고 있다.

2. 우리의 관계는 문제가 있다.


추론한 내용으로 새로운 결과를 만들어냈다.


= 우리는 헤어져야 할지도 모른다.


혜영 씨는 왜 몇 가지 더 추론했을까?

추론의 배경은 무엇일까?


 

Photo by Anthony Tran on Unsplash



연인의 작은 행동에도 민감하게 생각하고

급기야 이별을 상상하는 여자?


영국의 소아과 의사이자 정신분석가 도날드 위니콧(Winnicott)은 아동과 양육자의 상호작용 과정을 탐구했다. 양육자와의 경험을 통해 아이가 자기 개념을 구축해 나간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아이는 양육자가 자신을 어떻게 인지하고 평가하는지를 파악하고 그 내용을 토대로 자신의 정체성을 발전시켜나가더라는 것.


성숙한 양육자는 아동의 감정상태를 이해하고 그 감정을 수용한다. 아동은 자신의 감정을 수용해주는 양육자의 행위를 통해 자신의 가치 있는 존재임을 확신하게 된다.


스스로 사랑받기 충분한 존재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만일 양육자가 아동의 감정을 인지하지 못하거나, 인지하고서 수용하지 않는다면? 아이는 자신이 무가치한 존재라고 느끼게 된다. 스스로에 대해 확신하지 못하게 된다. 혼자 남겨질까 불안해지는 것이다.


아동은 양육자의 반응을 통해 감정을 배운다. 반응하지 않는 무심한 양육자와 자란 아동은 인간의 다양한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어른이 되기 쉽다.


필요한 시기에 충분한 애정을 받지 못한 아동은 스스로 사랑받기 충분한 존재라고 인식하기 어렵고 타인의 인정과 사랑을 갈구하게 된다. 이는 성인이 되어서도 끊임없이 문제가 된다.   

     

감정에 반응해주는 양육자와 자란 아이는 양육자가 잠시 떠나 있어도 울며 보채지 않고 기다릴 수 있다. 양육자가 곧 돌아와 자신을 사랑해줄 것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슨 이유였던 적절히 반응해주지 못하는 양육자와 자란 아이는 양육자가 잠시 떠나 있는 것도 견디기 어려워한다. 불안해한다. 도무지 안심하기 어려운 것이다.

                     

이는 결코 양육자의 학대에서 생겨난 비극이 아니다.


맞벌이하는 양육자, 쌍둥이 혹은 연년생 아이를 둔 양육자, 부부관계가 좋지 않은, 어쩌면 평범한, 실제로는 아이를 몹시 사랑하는 양육자와 자란 아이도 경험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혜영 씨는 특이한 여자가 아니다.


혜영 씨가 아주 어릴 적에 그런 일이 일어났었다.

아기였던 혜영 씨의 마음에 작은 생채기가 생겼었다.

 

안심하지 못하고 의심하는 것은 어른인 혜영 씨가 의도적으로 만들어내는 행동이 아니다. 기억하지 못하는 작은 슬픔이 혜영 씨 자신도 모르게 가끔 튀어나올 뿐이다.


그러니 이제 추론하고 비약하지 않아도 괜찮다.


남자 친구는 오늘 쉬고 싶다.라는 정보에 대해서만 답해보는 것이다.  


= 오늘 그가 편안히 쉴 수 있도록 도와준다.



만일 혜영 씨가 추론했던 내용이 사실이고 헤어지게 된다면?


그가 혜영씨를 떠난다 해도 혜영 씨는 더 이상 속수무책으로 당해야 하는 어린아이가 아니다.

혜영씨가 어린 아이였을때 양육자의 부재는 공포였을 것이다. 생존과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때의 공포는 아직도 당신을 종종 공포스럽게 할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어른이 되었다. 

당신이 굶어죽거나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당신은 새로운 연인을 만날 수 있는,

당신은 충분히 아름답고 현명한,

당신은 괜찮은 어른이니까.


토닥토닥 혜영씨, 

그리고 당신에게. 


이제 안심해도 괜찮다.

예쁜 사랑의 시간들로 젊은 삶을 채우자.

의심하고 불안해하며 내 인생을 괴롭히지 말자.


그러기엔 인생이 너무 짧으니까요!



송수연 코치는 10년간의 직장생활을 때려치우고 현재는 '어떻게 잘 살아야 할까?'라는 주제로 강연과 코칭을 하며 살고 있습니다. 당신의 '잘 삶'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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