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세 딩크족에게 아기가 굴러 떨어지다.
날벼락이었다. 3일 전부터 하혈을 한 것이 원인이다. 의사는 출산이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다며 내일 당장에 아기가 나올 수 있으니 곧바로 입원을 하던지 집에 가서 누워 안정을 취하던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했다.
대수롭지 않게 "괜찮아요. 진통 오면 병원 오세요." 할 줄 알았다. 그러면 나는 유유히 집에 돌아가서 마지막 남은 딩크의 자유로운 일상을 향유하다가 진통이 오면 그때 스스로 정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출산 날을 내가 정할 수 없다는 데부터 내 맘대로 살던 삶에서 내 맘대로는 살 수 없는 삶으로의 전환이 시작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쩌면 몹시 당연하지만 그동안 너무 오래도록 자유롭게 살아서인지 당황스럽고 얼떨떨해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어쩌면 20주 언저리부터, 밤마다 배가 뭉친다고 했을 때부터 조산은 예정된 수순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마음만큼은 한가로운 40대 임산부는 '설마 그런 일이 내게 해당되겠어?' 하며 조산의 가능성을 저 멀리 미뤄놓고 있었다.
그러나 역시나 여전히 내 신체는 40주 동안 품지 못하고 몇 주 일찍 아기를 내보내려나 보다. 아니면 아기가 나만큼 주도적이어서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일단 집으로 돌아와 누워있기로 했다. 내게 익숙하고 편안한 공간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으면 일주일 정도는 연장할 수 있지 않을까? 의사는 나가려는 나에게 신신당부를 했다. "진통이 오면 바로 병원에 오세요."
앞으로 정기검진까지 7일.
딱 7일만 버티자.
매일 피가 비쳤고 어느 날은 왈칵 쏟아졌다. 생리대가 피로 흠뻑 젖었던 어느 오후, 병원에 전화를 하니 불안하면 내방하라고 한다. 병원에 가면 큰일이라도 난 듯 당장 입원해야 한다고 할 것 같아 썩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진통도 전혀 없고 해서 조금 더 견뎌보기로 하고 1층 침대에 누웠다. 하루종일 스마트폰과 씨름하며, 도파민에 스스로를 내맡긴 채 그렇게 하루하루 천천히 시간을 흘려보냈다.
남은 3주간 야무지게 놀 생각에 약속도 촘촘히 잡아놨었다. 사람들은 임산부에게만큼은 정말로 친절하고 다정하다. 모두 임산부 걱정을 하면서 위로해 주었다. 심지어 모르는 사람까지도 장문의 메시지로 내게 힘을 전해주었다.
아기가 태어나면 샴페인도 마시고 와인도 실컷 마시자는 친구의 말이 마치 '죽기 전 꼭 해야 할 몇 가지 일들'처럼 희망적이면서 동시에 인생이라는 것은 참 묘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일이 내게 일어나다니 9개월이 되도록 아직 실감이 나질 않는다.
침대에 누워만 있으니 몸은 점점 더 천근만근 피로하다. 움직여야 활력이 도는데 등은 딱딱하게 굳어가고 허리, 무릎까지도 아파온다.
참을 수 없이 졸음이 밀려와 하루에도 몇 번씩 낮잠을 잤다. 누군가는 임신 말기를 즐기라고 하던데 대체 이 상태로 무엇을 어떻게 즐길 수 있을까?
-
이번주만 버티자.
이번주만 지나면 언제라도 좋으니까.
딱 이번주만.
<43세 딩크족에게 아기가 굴러 떨어지다.>
이전 이야기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