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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수연 Jul 01. 2023

아빠가 되고 싶다면 나랑은 안돼

43세 딩크족에게 아기가 굴러 떨어졌다



오래전 일이다. 


질풍노도의 청소년 둘 (나와 동생), 그리고 부모님은 차를 타고 어디론가 향하있었다. 우리 남매는 뒷좌석에 앉아 서로 미루기 중이었다.


누가 결혼할래?
누가 애 낳을래?

"동생이 결혼해서 아기를 낳을 거니까 난 괜찮아."



누나인 나는 창문에 한 팔을 턱 걸친채 남동생(과 그의 미래의 아내)에게 결혼과 출산을 떠넘겼다.

10대 때 부터 오지게 혼자 살고 싶었나 보다.




성인이 되어도 비슷했다. 연애를 시작할 때부터 상대에게 은근히 못을 박는 것이다.


"혹시나 나를 상대로 아빠의 꿈을 꿀까 봐 미리 말해두는데 잘 들어, 굉장히 중요한 이야기니까. 있지, 언젠가 결혼은 할 수 있겠지만 아이는 안돼. 대충 넘겨 들으면서 알았다고 하고서 나중에 마음이 바뀌면 곤란해!"


나란 여자는 현생에서는 아이를 낳지 못하는(?) 인간이니 아빠가 되고 싶다면 나랑은 안된다며... 여러 번 강조하며 고지해 주는 것이다.



이쯤되면 남자는 당황한다. 멀쩡(?)해 보이는 여자친구가 이따구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남자는 곧 평정심을 찾고 답해준다. 마치 배고픈 아이 떡 하나 주듯이...


"알았어. 너한테 애 낳으라고 안 할게."


여기서 넘어가면 안 된다. 지장 찍고 공증까지 받을 필요는 없겠지만 여러 번 되물어 확인해야 한다.


"이건 진짜 중대한 문제라고... 한번 사는 인생에서 아빠가 될 수 없는 거라니까?"


상대는 대수롭지 않은 듯이 ok 한다.


그러다 어쩌다 상대의 부모님을 마주치기라도 하면 굉장히 다른 반응을 목격하게 된다. 부모님은 나이가 있으니 빨리 결혼도 하고 아기도 갖고 하라고 하신다. 그러면 상대는 뻔뻔스럽게 가만히 앉아있다. 


아뿔싸. 지장 찍고 공증받고 녹음도 해놓을걸 싶지만 어쩔 수 없다. 서로 각자 잘 지내는 수밖에.





잘가라. 아빠가 되고 싶은 남자여 



나보다 격하게 부모가 되기 싫어하는 인간을 첨 봤는데 그게 바로 지금의 남편이다. 우리는 그런 면에서 비슷했다. 우리 사이에 결혼 이야기가 오가고 있을 때쯤이었다. 서울 시내가 훤히 보이는 레스토랑에서 맛있는 점심을 먹다가 그가 내뱉은 말이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다.


"난 아기 필요 없어. 너도 그렇다고 했지?"


오기가 생겨서 빽 소리를 질렀다.


너!! 애도 안 낳을 거면서 나한테 왜 결혼하자고 매달려?



그가 하는 말이 더 가관이다.


너, 나 애 낳으려고 만나니?


이런... c...




이랬던 우리가 결혼을 하고 시간이 흘렀으나 그 누구도 임신준비를 하지 않았다. 어느 날 샤워를 하다가 문득 생리가 늦어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때 식은땀이 나면서 아직 아니야 오노 신이시여.

물론 아니었다. 평범한 생리불순이었다. 그때 생각했다.


그래 애는 50살 정도에. 그쯤이 딱 좋겠어.

내 나이 42이었다.


그랬더랬었지 후후. 



40대 중반이 되도록 무자녀로 살던 딩크족. 

아이는 이번 생에 없다고 생각했던 여자가 용종 떼러 갔다가 아기집을 발견했습니다. 


집도 없고 물려받을 재산도 없고 팍팍한 삶을 물려주고 싶지 않았던 여자는 실감이 나지 않아 태교도 한번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딩크와 유자녀 삶 사이에서 열렬히 고민하고 있는 딩크족들을 위해 제 이야기를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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