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1
17경기가 펼쳐진 K리그1는 작년처럼 울산-전북의 예상대로 양강 구도가 펼쳐졌다. 마지막 경기에 우승팀이 결정된 작년처럼 올해도 두 팀의 공격적인 투자가 빛을 발하고 있다. "올해는 정말 마지막에 웃고 싶다."는 김도훈 감독의 말처럼 울산은 이청용, 고명진, 정승현 등 국내로 복귀하는 거물 선수들을 대거 영입했다. 전북 역시 지난해 각 팀 에이스였던 김보경, 쿠니모토에 이어 시즌 중반 특급 외국인 선수 2명(구스타보, 바로우)을 데려왔다. 코로나 19로 빠듯해진 일정 속에서도 두 팀은 두꺼운 스쿼드를 바탕으로 압도적인 1,2위를 다투고 있다. 잘되는 팀 울산, 전북은 여러 공통점이 있다. 확실한 최전방 해결사(리그 득점왕 주니오 VS 빠르게 적응한 스트라이커 구스타보), 공격력이 뛰어난 윙어(리그 도움 1위 김인성 VS 공격포인트 11개의 한교원), 여러 포지션의 다재다능한 U22 자원(설영우, 이상헌 VS 조규성, 이성윤). 그리고 이들의 상승세에는 리그 최고 수비형 미드필더의 보이지 않는 맹활약이 존재했다.
K리그 전체 : 패스 2위 1,124개 / 지상경합 1위 49개 / 볼획득 1위 203개 / 파울 1위 42개, 피파울 2위 45개
2017년 포항에서 리그 도움왕을 차지한 손준호는 올해 전북의 든든한 수비형 미드필더로 나서고 있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2년 연속 30경기 이상 출전한 손준호는 전북의 리그 2연패의 숨은 주역이었다. 올해 역시 김보경은 4-1-4-1 포메이션의 공수 연결고리로 전 경기를 뛰며 김보경, 쿠니모토, 이승기 등 다양한 중원 자원과 시너지를 내고 있다. 손준호는 중원에서 영리하게 경합을 펼치며 포백을 보호하고, 경고를 불사하며 적극적으로 역습을 끊는 게 장점이다. 리그에서 제일 파울을 많이 하며(42개), 경고를 4장이나 받았지만 아직 퇴장은 없을 정도로 효율적으로 팀을 이끌고 있다. 게다가 리그 2위에 해당하는 45개의 파울을 얻어낼 정도로 공을 얄밉게 차다 보니 상대팀에게는 악몽 같은 선수다.
손준호는 왕성한 수비 커버 이외에도 전북 공격의 시발점이다. 리그 2위에 해당하는 1,124개의 패스를 시도한 손준호는 짧은 패스, 긴 패스를 가리지 않고 공격 방향을 정하는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하고 있다. 단순히 후방에서 돌리는 패스 숫자만 많은 게 아니라, 도전적인 전진 패스로 결정적인 장면도 여러 차례 연출했다. 아울러 공격 진영에서 세컨드 볼을 따내고 빠른 판단으로 공격수에게 공을 연결해 재차 공격 기회를 만드는 게 뛰어나다. 손준호는 2선이 아닌 3선에서 뛰면서도 시즌 초반 2경기 연속 도움을 포함해 도움 5개를 기록했다. 게다가 14라운드 포항전에는 헤더 동점골을 터뜨리며 역전승의 주역으로 공수에서 맹활약했다. 프리킥, 코너킥 등을 전담하고 중거리 슈팅도 아끼지 않는 타입이라 공격적으로도 더욱 팀에 보탬이 될 전망이다.
'2020 AFC U-23 챔피언십 MVP'. 원두재는 기복 없는 뛰어난 경기력을 바탕으로 대회 MVP를 차지했고, J리그 2 아비스파 후쿠오카에서 울산으로 이적했다. 187cm의 장신인 원두재는 센터백, 수비형 미드필더를 모두 소화할 수 있는데, 상주 상무로 입대한 3선 박용우의 빈자리를 메울 임무를 맡았다. 원두재는 2라운드 수원전에서 극적인 데뷔전 역전 승리를 이끌었다. 울산은 수원에 먼저 2골을 허용했지만, 후반 7분 원두재를 투입해 추가 실점 없이 3골을 퍼부었다. 뒤이어 원두재는 5라운드 포항과의 동해안 더비에서 처음으로 90분을 소화했다. 볼 획득 18회, 차단 4회, 90% 이상의 패스 성공률 등 수치도 뛰어났지만, 강한 압박으로 포항 공격을 꽁꽁 묶으며 맹활약했다. 특히 침착한 탈압박 이후 찔러준 패스로 4번째 골의 시발점 역할까지 하며 완벽한 승리를 이끌었다.
원두재는 포항전 이후 본격적으로 주전 수비형 미드필더로 중용받았다. 리그 최다 득점(38득점), 최소 실점(11실점)으로 공수 완벽한 균형을 이루고 있는 울산의 상승세에는 어린 원두재의 빠른 리그 적응이 큰 몫을 했다. 리그 최다 득점(주니오, 20골), 최다 도움(김인성, 6도움) 선수를 보유하고 있지만, 다소 주목이 덜한 살림꾼 역할을 훌륭히 수행한 원두재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탄탄한 수비력 이외에 원두재의 가장 큰 장점은 '탈압박'이다. 투박한 기술을 강력한 체력으로 만회하는 전통적인 볼란치와 다르게 기술이 뛰어나다. 빠르고 정확한 판단, 여유 있는 공간 활용과 정확한 볼 컨트롤은 어느덧 리그 최고 수준이다. 윤빛가람과 더블 볼란치를 설 때와 다르게 혼자 수비형 미드필더를 수행할 때는 적극적으로 발밑에 찔러주는 전진 패스도 즐겨한다. 아직 공격 포인트는 없지만 노련하고 헌신적인 플레이로 치열한 경쟁 속에도 주전으로 출전하는지 증명 중이다.
손준호와 원두재. 두 수비형 미드필더는 화려하거나 눈에 확 띄는 선수는 아니다. K리그가 선정하는 라운드 베스트일레븐에 선정된 건 손준호가 골을 터뜨렸던 14라운드가 유일하다. 하지만 두 선수는 감독이 선발 명단을 짤 때 가장 신뢰하고 제일 먼저 찾는 선수다. 2017년 주장으로 우승을 이끌었던 신형민이 복귀했고, U22 자원으로 작년 센세이션 했던 이수빈이 건재하지만 손준호는 계속 선발로 나오고 있다. 원두재 역시 빠른 템포, 거친 몸싸움이 펼쳐지는 K리그에 빠르게 적응해 다양한 베테랑 선수들과 좋은 호흡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수비 진영에서 번뜩이는 탈압박으로 골 결정력이 뛰어난 스트라이커, 발 빠른 윙어와 공격적인 윙백과 시너지를 내고 있다.
한편 두 선수는 울산, 전북이란 강팀에 있다 보니 의문부호를 갖는 사람들도 있다. 아무래도 수세에 몰린 상황보다 공을 점유하는 시간이 많기에 체력적 부담이 덜하고, 결정적인 위기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손준호, 원두재 모두 내려앉은 상대를 압박하기 위해 빠르게 전환 패스를 시도하고, 역습 상황에서는 최후방 수비수의 자리까지 커버하며 저지하는 모습을 여러 차례 보였다. 어찌 보면 경기를 지배하고도 선수비 후역습의 팀에게 무너지는 강팀에서 오히려 수비형 미드필더의 중요성, 클래스의 차이가 더 나타는 법이다. 그리고 큰 부상 없이 풀타임으로 꾸준히 팀의 핵심 연결고리를 해내는 건 분명 놀라운 일이다. 특히 언제나 대체 가능한 다재다능한 경쟁자들이 많은 스쿼드에서.
손준호, 원두재 모두 벤투 A대표팀 감독이 사용하는 4-1-4-1 포메이션에도 잘 어울리는 적합한 자원이다. 손준호는 이미 2019 동아시안컵에서 국제무대의 가능성을 보여줬고, 원두재는 최근 폼만 보면 올림픽 대표팀 승선은 물론 A대표팀까지 넘볼 수 있는 상황이다. 두 선수 모두 다른 스타일과 본인만의 장점으로 전술적 활용도가 높다. 한편 영리한 두 수비형 미드필더의 첫 맞대결은 의외의 변수 때문에 다소 싱겁게 끝났다. 이른 시간 울산 김기희의 다이렉트 퇴장으로 수적 열세에 놓여 원두재가 수비 라인으로 내려갔기 때문이다. 반면 가벼운 몸놀림의 손준호는 2개의 도움을 기록하며 완벽한 전북의 승리를 이끌었다. 사실상 우승 결정전인 다음 맞대결은 9월 15일 전주에서 펼쳐진다. 손준호는 여전히 리그 최고의 컨디션이고, 원두재는 매경기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승점 1점 차 아슬아슬한 우승 경쟁을 펼치는 두 팀의 숨은 조력자들의 치열한 중원 싸움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