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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션샤인 May 07. 2023

첫 문장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나는 뜨겁게 사랑하고 싶다.        

내가 마음의 철옹성을 세우는 건 유일한 사랑을 원하기 때문이다.

확신으로 똘똘 뭉친… 전 생애를 기다려온, 너 아니면 안 될 것 같은 마음에 휩싸인 그런 강력한 감정을 원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적지근한, 재는, 추측해야 하는 사랑을 거부하는 것이다.


나는 뜨거운 여자고, 뜨거운 사람이다.

싱거운 고백도 돌려하는 이야기에도 반응하지 않는 심장을 가졌다. 이런 나의 마음은 스무 살에만 존재하는 줄 알았다. 아니다. 나의 심장은 여전히 뛴다. 매우 강렬하게. 이제는 더 민감해져 진짜 사랑에만 반응할 자신도 생겼다.


나는 A4용지 같은 사람을 기다린다.

A4용지 안에서는 글을 통해 전에 없던 나를 꺼내고, 생각지 않았던 본능을 내보이고, 뜻하지 않았던 재해석과 만난다. 하얀 A4안에서 나의 커서는 어디든 갈 수 있다. 사랑하는 이에게 어떤 모습이든 내보여 주고 싶듯. 조금 더 나를 자유로워질 수 있도록 만들어 줄 어떤 이랄까?  


나는 무지개 색연필이다.

사랑하는 이를 위해 무지개 심을 숨겨두어 왔다.  두꺼운 한 꺼풀만 벗기면 된다. 뾰쪽하게 만들기 위해 깎여도 아쉽지 않은 검은 심 따윈 없다. 요리조리 눕혀가며 어디에도 사용하기 아까울 양각색의 심을 단단하게 모아두었다.


무지개 색연필은 계속 지니게 된다.  

한번 사면 계속 사고 싶어 진다. 다른 색연필보다 비싸지만 끊기 어렵다. 지속가능하게 너의 뇌 한쪽 구석에서 말을 건 내는 어떤 사람. 그게 너에게 바라는 내가 생각하는 스스로도 사랑하게 될 수밖에 없는 관계의 지향이다.


나는 오늘도 네게 말을 건넨다.


안녕. 내가 기다려온 이어.

아무것도 쓰이지 않은… 하얀 A4 용지, 망망대해 같은 너를 꿈꾸며 첫 문장을 기다리듯 너를 기다린다.   

정지우님의 우리는 글쓰기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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