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동주를 본 후의 단상
시가 삶이다.
어렸을 적에 나는 이소룡이나 성룡 영화를 보고 나면 형과 늘 영화에서 나온 무술 장면들을 그대로 따라하면서 놀았다. 고등학교에 들어와서는 영웅본색 시리즈를 보고 주인공들의 헤어스타일과 말투 그리고 담배 피우는 모습까지 재현하면서 친구들과의 끈끈한 우정을 다짐했다. 그리고 많은 시간이 지난 오늘, 한 편의 영화를 보았다. 영화를 본 후 황급히 집에 들어와 구석에 처 박아둔 시집들을 꺼내들었다. 그런 후 시를 좋아하는 아내와 윤동주 시인의 시집들에 대해서 진솔한 대화를 나눴다.
‘부끄러움을 노래한 시’라는 아내의 말에 강렬하게 떠 오른 시구가 있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나의 사랑 나의 신부(My love My bride) 리메이크 판 영화에서 나오는 대사다.
“시가 삶이 되고, 삶이 시가 되는 거야. 그렇지만, 시 때문에 소중한 것을 놓쳐서는 안 돼!, 시는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쓰는 거야.”
‘동주’라는 영화에 딱 맞아 떨어지는 말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윤동주의 시들이 어떻게 해서 쓰여 졌는지 영화 속 장면들에 다 녹아져 있는데, 말 그대로 시와 삶은 하나다.
낭중지추(囊中之錐)라는 말이 있다. 송곳을 바지에다 감추려 해도 언젠간 송곳은 바지를 뚫고 나오기 마련이다. 윤동주의 시들이 그렇다. 오랫동안 등단을 하지 못하고(조선어를 사용할 수 없게 된 이유도 있다) 시인 아닌 시인으로 살면서도 하늘과 사람, 바람과 바람, 별과 별을 통해서 그의 시는 모든 이의 마음속에 깃들게 되었다.
스물여덟 해만 살았지만 그의 분신들은 지금도 늙지 않고, 죽지 않고 언제나 생생하다.
‘동주’라는 제목을 처음 듣고 즉각 윤동주 시인을 연상하지 못했다. 예고편 및 그 어떤 정보도 접하지 못했을 때 들었던 생각은 싸움영화 인줄 알았다. 그런데 윤동주라는 성을 붙여 발음했을 때 아름다운 영화라는 감을 잡을 수 있었다. 그리고 영화를 봤다. 내가 생각했던 그 아름다움보다 더 진한 아름다움을 연출했다.
모두가 힘든 그 시기에 시가 쉽게 쓰이는 것을 너무도 부끄러워했던 시인, 결핍과 억눌림이 더 해 질수록 시상은 더욱 깊어지는 이율배반적인 상황. 그래도 그의 시가 있었기에 해방의 기쁨은 더 진하고 더욱 달수 있었음을 상기해 본다.
2013년 10월 7일에 돌아가신 한국의 철학자 안병욱 교수는 윤동주 시인과 세 살 아래의 하숙방 동지였다. 그의 에세이집 <사람답게 사는 길>에서 ‘시인 윤동주’라는 제목으로 그와 함께했던 지난날을 회고하며 그를 예찬했다.
잠시 들여다보겠다.
『나는 1942년 겨울에 도쿄 하숙방에서 윤동주를 만나 며칠 동안 같이 지냈다. 그는 나보다 3년 위였다. 하숙방에 갔더니 그의 고종사촌인 송몽규 군도 같이 있었다. 송군은 다혈질의 정열적인 행동파 애국청년이었다. 윤동주는 과묵하고 조용한 내성적 성격이었다. 우리 세 사람이 담론풍발, 신이 나서 얘기를 주고받는 때에도 윤동주는 조용히 듣고 빙그레 웃곤 하였다. 그는 말이 적은 사람이었다.
1945년 윤동주의 시체를 찾아가라는 소식을 듣고, 친척 한 분이 후쿠오카 형무소에 갔더니 그곳 일본인 형무관이 이렇게 물었다.
“이 청년은 참으로 좋은 학생이었소. 매일 아침 창백한 얼굴에 야윈 손으로 감방의 철장을 움켜쥐고, ‘한국아!’를 수없이 외치다가 죽었습니다. 그 ‘한국아!’라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우리는 이 말을 들으면서 모두 숙연해졌다. 독립운동의 근거지인 북간도 용정 마을에서 태어난 윤동주는 어려서부터 민족혼과 애국심을 배우면서 잔뼈가 굵었다.
20대의 젊은 시절 윤동주를 만나 정답게 주고받은 얘기와 그의 우아한 인품과 맑은 영혼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깊은 회상에 잠긴다. 그는 맑고 호젓한 호수와 같은 시인이었다.
‘피로써 글을 써라, 피로써 쓴 글만이 사람을 움직인다.’ 철학자 니체의 명언이다. 윤동주는 피로써 글을 썼다. 그러므로 우리의 심금을 울린다.
그는 혼으로 노래했다. 그러므로 만인의 사랑을 받는다.
윤동주. 영원히 빛나는 이름이다.』
옆에서 일거수일투족을 함께 하면서 지켜봤던 노 교수의 증언은 귀하고 귀하다. 살아있는 윤동주를 만나고 있듯 설렌다. 영화는 그 두 배라 생각하면 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