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양육자의 가슴 한켠이 뜨뜻해지고 묵직해진다. 그리고 그 뒤에 밀려오는 책임감.
양육자가 어떻게 양육하냐에 따라 아이가 어떤 사람으로 자라게 될지는 양육자도 아이도 미리 알 수가 없다.
어떤 양육자는 아이를 잘 양육하겠다는 책임감으로 아이에게 오로지 집중하며 아이만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무조건 아이에게 '올인'하며 아이만을 위해 사는 것이 정말 아이를 위한 책임감일까.
<헬리콥터 부모>, <캥거루 부모>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필자는 이 말을 기사에서 처음 접했는데 의미를 알고 매우 놀랐었다. 아이를 위한다는 이유로 아이의 모든 것을 양육자가 컨트롤하고 아이를 대신하여 모든 것을 해주는 것이 과연 올바른 양육 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어느 기사에서 양육자가 모든 것을 케어하고 모든 것을 컨트롤한 아이들은 스스로 자신의 일을 결정하지 못하고 양육자에게 무조건적으로 의지한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회사에 결근을 해야 하는데 양육자가 대신 상사에게 통화를 한다거나 수강신청을 못한 아이를 대신해 양육자가 담당교수에게 통화를 하고, 성적 이의신청을 못해 양육자가 담당교수에게 이의제기를 하는...
이런 아이들이 시간이 흘러 더 이상 양육자의 도움을 받지 못할 때나 양육자가 더 이상 아이에게 모든 것을 대신해 줄 수 없을 때가 온다면 그때는 어찌 되는 것인가.
필자는 아이를 위해서라는 이유, 아이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아이의 내적성장을 막는 것은 양육자의 바른 자세라 생각하지 않는다. 사랑하기에 온 신경과 온 마음을 다하여 아이를 향해 자신을 불태운 양육자를 과연 아이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먼저 고민해봐야 하지 않겠는가.
양육자는 나의 양육방식으로 아이의 미래가 어떻게 달라질지 알 수 없기에 모든 것이 조심스럽다.
하지만 사랑만 가득 주며 아이가 직접 경험하고 겪으면서 얻게 되는 내적성장과정을 양육자가 대신하는 것은 아이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을 것이다.
아이를 위해 뜨겁게 불태우지 않고도 양육자는 아이를 성장시킬 수 있음을 알고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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