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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꽃psy Nov 14. 2021

매직 스펀지 같은 요긴하고 쏠쏠한 사람

우리는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일 것이다.

국민 백화*에는 가격 대비 정말 놀랍고 예쁘고 새로운 물건이 많다. 가끔 놀러 가듯 가서 구경하다 보면 다 생활에 필요할 것 같은(필요한 것 아닌) 물건에 눈이 먼저 가고 발길이 따라가고 손이 머문다. 다*소에서 사 온 몇천 원짜리 물건들 중에 오랫동안  잘 쓰고 있는 아이템들이 많다. 그중에서도 특히, 이천 원짜리 매직 스펀지를 사용할 때마다 정말 놀다.


정리정돈은 잘 못하면서도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거슬리는 지저분함은 싫어한다. 주방 구석 찌든 때, 수전 구석 물때, 접시 밑 보이지 않는 오래된 때 같은 것 난 더 신경이 쓰이곤 한다. 세제로, 수세미로 박박 억지로 닦아도 잘 지워지지 않는 이런 묵은 때들은 매직 스펀지에 살짝 물을 묻혀 닦으면 힘들이지 않아도 거짓말처럼 깨끗하게 닦아진다.  


매직 스펀지로 이런 때들을 닦아내면 별것도 아닌데 묘한 쾌감과 성취감이 생겨난다. 하지만 내가 이런 것에 살림 시간을 오래 투자해도 눈여겨 자세히 보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은 잘 모른다. 난 그저 정리정돈을 잘 못하고 공간지각이 좀 떨어지는 그런 스타일의 주부로 보일 것이다.


결혼 전, 내가 살림이란 걸 하기 전에는 이따금씩 엄마가 깨끗하게 설거지를 하지 않는 것에 못마땅했다. 가끔이지만 설거지를 할 때면 한 시간씩 걸려도 그릇 하나하나 열심히 헹구고 투명 유리컵에 지문자국, 입자국 하나 남기지 않고 깨끗하게 마무리를 했다. 그때는 몰랐다. 엄마는 설거지 말고도 늘 할 일이 넘쳐서 설거지에 그렇게 나처럼 오랜 시간 붙들고 있을 시간이 없다는 것을. 그리고 나이가 들면 작은 것들은 잘 보이지 않는 것도 많아진다는 것을 이해하지도 못했다.

 

하지만 결혼 후 아이를 키우고, 일하고, 공부하고, 여러 살림을 하면서 그깟 그릇 몇 개 씻는데 그렇게 오랜 시간을 붙들고 있을 수가 없었다. 나도 점점 설거지도 빨라졌고 그릇 밑바닥에 조금조금 안 보이는 때들도 쌓이기 시작했다.

어느 날 그릇, 접시 바닥 밑 모퉁이에 보이지 않던 그런 때들이 너무 신경 쓰이고 짜증이 났다. 그것들이 마치 내 마음에 오래되고 찌들어진 스트레스처럼 고 그것들을 닦아내야 내 마음도 닦일 것처럼 껴졌다.


언젠가 드라마에서 보았던 음이 심란한 주인공이 한밤중에 설거지를 하던 것처럼, 나도 그렇게 설거지를 하면  마음이 괜찮아질까 싶어 따라 해 보았다. 하지만 밑바닥의 묶은 때들은 쉽게 씻겨나가지 않았다. 주방 서랍장 한편에 있던 커다란 매직 스펀지가 생각났다. 한 번에 쓰기엔 너무 커서 3cm로 잘라 물을 묻히고 그릇과 접시의 밑바닥을 다 닦았다. 푹신한 까닭에 꾹꾹 눌러 틈새까지 싹 닦아냈다. 혼 선물로 친구들이 사주었던 한*도자기 세트. 예쁜 꽃그림을 좋아하는지라 그 그릇세트를 좋아했다. 10년 만에  다시 새것처럼 뽀얗고 깨끗하게 이뻐졌다.  

이런 밑바닥에 때를 말끔하게 해주는...

이 신박하고 기특한 것을 누가 만어 냈을까?

세상엔 똑똑하고 좋은 사람들이 참 많다. 그런 사람들이 만들어낸 위대고 감사한 발명품이 아주 많다. 그리고 사소하고 별것 아닌 거 같지만 요긴하고 쏠쏠하게 쓰임이 있는 것들 있다. 나에게 매직 스펀지가 딱 그런 물건이 되었다.


그 후로 나는 주방에 매직 스펀지를 떨어지지 않게 꼭 구비해 둔다. 잘 지워지지 않는 기름때도, 스테인리스 냄비에 눌어붙은 때도, 그컵에 커피 얼룩도, 인덕션에 보기 싫은 얼룩도 매직 스펀지 하나면 진짜 마법처럼 깔끔해진다. 어쩜 이렇게 감쪽같이 깨끗해질 수 있는지 놀랍고 신기하고 마음마저 시원해진다.




이렇게 요긴하고 쏠쏠한 쓰임이 좋다. 내게 매직 스펀지는 없어도 사는데 큰 어려움은 없는 물건이었다. 하지만 한번 사용해본 후 그 매력과 능력에 놀라웠고, 언제든 다시 사용할 수 있도록 잘 구비해 두는 물건이 되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난 크게 능력이 좋은 사람도 아니고, 영향력이 큰 사람도 아니며, 존재감이 큰 사람도 아니다. 하지만 내가 어디선가 누군가에 꼭 알맞게 쓰임이 느껴졌을 때 뿌듯함이 크다.  

나의 말 한마디가 누군가에 원동력이 되고, 나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매직 스펀지처럼 아주 요긴하게 쏠쏠하게 쓰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나하나 없어도 세상은 아무렇지 않게 잘 돌아갈 것임을 안다. 하지만 나의 작은 날개짓이 누군가에 아주 요긴하고 쏠쏠한 쓰임이 되고 있을 것라 믿는다.  마치 매직 스펀지처럼.

사진출처: 핀터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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