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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베이킹랩 이성규 Mar 12. 2020

바보야, 중요한 건 밀가루야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땅이 넓은 줄만 아는 푹 퍼진 첫 빵을 구운 나는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첫 빵을 굽기 전 Tartine Bread의 기본 시골 빵 굽는 법을 읽고 또 읽었다. 시작만 하면 책에 있는 사진처럼 멋진 빵을 구울 수 있을 거라고 자신하고 있었기에 충격은 더 컸다. 며칠이 지나 그 충격에서 헤어 나온 나는 형편없는 빵을 굽게 된 원인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평소 알고 지내던 베이커들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어떤 레시피를 본 거야?"


나타샤가 물었다. 나타샤는 슬로베니아 출신의 베이커이다. 나는 인스타그램에서 몇 달째 그를 팔로우하고 있었고, 멋진 빵 사진에 댓글을 달며 친분을 쌓고 있었다. 며칠 전 그에게 보낸 이메일에 대한 답장은 저 질문으로 시작하고 있었다.


'어떤 레시피냐니, 그게 중요한가?'라며 고개를 갸우뚱하며 답장을 보냈다. 타르틴 브레드에 있는 기본 시골 빵 레시피를 따라 구웠다고. 그에게서 바로 답장이 왔다. 이번에도 질문을 하나 보내왔다.


"어떤 밀가루를 썼는데?"


바로 답장을 보냈다. 우리밀로 구웠다고.


"그럼 그렇지! 미국 사람들 레시피를 따라 빵을 구우면 빵이 잘 안되고 퍼져. 나도 초보 베이커 시절에 비슷한 경험을 했어. 아마도 네가 쓴 한국산 밀가루도 유럽의 밀가루처럼 글루텐 함량이 그리 높지 않은가 보네. 반면, 미국산 밀가루는 글루텐 함량이 높은 편이야. 네가 쓰는 밀가루가 그들이 쓰는 밀가루와 같지 않은데 그들이 레시피를 그대로 쓰니 빵이 그렇게 나온 거야."


"그럼 어떻게 하면 될까?"


"물을 줄여봐."


"얼마나?"


"니 밀가루를 모르니 얼마나 줄여야 할 줄 모르겠지만 수분율 68%를 기준으로 위아래로 2~3% 선에서 물 양을 달리하면서 빵을 구워봐. 그럼 네가 사용하는 밀에 대한 적정 수분율을 찾아낼 수 있을 거야."





아하. 물을 줄이면 되는구나. 바로 빵 반죽을 시작했고 좀 봉긋한 두 번째 빵을 구웠고, 세 번째 빵은 드디어 빵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잘 부푼 빵을 구워냈다. 바뀐 건 물의 양뿐인데 완전히 다른 빵을 구워낸 것이다. 내 블로그에는 그때의 기쁨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하루 종일 기분이 좋다. 얼마 전 빵 굽기에 성공하고 기쁜 마음에 수없이 카톡을 보내던 아내의 심정이 이해가 된다. 



첫 빵은 비참했지만 첫 빵의 실패로 인해 나는 많은 것을 배웠다. 세상 모든 일이 눈에 보이는 것처럼 쉽지 않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다. 독서를 통해 얻은 지식이 다는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중요한 또 한 가지, 밀가루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다. 밀이 생산지에 따라 다르고 밀가루도 당연히 다르다는 것. 그러니 당연히 우리 땅에서 자란 우리밀은 북미산이나 유럽산 밀과는 다를 거라는 것. 그리고 밀이 다르면 재료의 배합도 달라야 한다는 것. 그럼 우리밀은 수입밀과 어떻게 다르며, 그 다름은 밀가루의 제빵성에 어떤 차이를 만들까? 


이렇게 밀과 밀가루에 대한 나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실패한 첫 빵이 밀가루에 대한 내 탐구의 시작점이었다.



토종밀, 고대밀 빵 테이스팅 행사에 전시된 직접 기르고 있는 다양한 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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