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러시아로 가고자 한 이유
종자 수집 여행에서 모은 자료를 바탕으로 바빌로프는 8개 지역을 재배종 기원지로 설정하였다. 중국, 일본, 한국이 속한 동아시아도 그중 하나이다. 동아시아는 콩, 조, 다양한 종의 채소와 과일 종의 기원지로 전 세계 재배종의 20%가 여기서 기원했다고 하였다. 동아시아의 재배종에 대해 바빌로프가 남긴 평가 중 내 주의를 끈 건 단연 밀에 대한 평가다.
Chinese culture under the peculiar conditions of the monsoon climate had altered the imported wheat and barley forms for thousands of years and created its own unique subspecies.
다른 지역에서 유입된 밀과 보리는 수천 년간 몬순기후의 영향으로 지역 고유의 변종이 생겨났다.
나는 스토리를 무척 좋아한다. 당시 운영하던 아쥬드블레라는 빵집에 스토리를 담고 싶었고, 그 빵집에서 만들어 팔던 빵에도 스토리를 입히고 싶었다. 스토리를 스스로 만들 수도 있지만, 경우에 따라선 이미 잘 만들어진 매력적인 스토리를 가져다 쓰는 게 더 효과적일 때도 있다. 그런 면에서 보로딘스키 빵은 항상 내 위시리스트 최상단에 위치하고 있었다.
내가 처음 이 빵을 만난 건 곽지원빵공방에서 유럽 빵집 투어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들른 모스크바에서였다. 당시에도 러시아의 흑빵에 대해 들은 적은 있었지만 그게 어떤 빵인지 알지 못했다. 모스크바에서 돌아온 짐가방 한 귀퉁이에 비닐에 쌓인 벽돌처럼 생긴 검은 빵 하나가 들어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어디서 샀는지 전혀 기억에 없다.
무심히 비닐을 뜯자 빵 봉지에서 새어 나오는 향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달콤했다. 얼른 빵 칼을 챙겨 와 빵을 써는 사이 향은 거실에 진동했다. 빵 한 조각을 급히 집어 들고 한 입 베어 물었다. 달큰함이 입안 가득 퍼졌다. 호밀빵이라는데 이런 맛과 향이라니...
몇 조각을 순식간에 해치우고 급하게 웹 검색에 들어갔다. 이게 도대체 무슨 빵인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빵에 대한 정보가 그리 많지는 않았다. 영어권에선 러시아 빵이 대중적이 않으니 제대로 된 영문 자료를 구하기 어려웠다. 그러다 우연히 세르게이 선생의 블로그를 알게 되었다. 수만 명이 팔로우하는 선생의 블로그는 러시아 빵의 보고였다. 물론 보로딘스키 빵에 대한 좋은 정보도 있었다. 문제는 러시아어였다. 구글 번역기를 돌려가며 선생의 블로그 글을 열독 하였다. 번역이 황당하게 되는 부분도 적지 않았지만 대략적인 정보를 얻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글을 읽어갈수록 이 빵을 꼭 구워보고 싶다는 열망은 커져갔다. 하지만 쉽게 엄두가 나진 않았다. 한국에서 구하기 힘든 재료도 있었고, 그때까지 내가 알던 제빵 방식과 다른 점이 많아서 내가 한다고 제대로 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도 들었다.
그래 세르게이 선생을 찾아가 직접 배워야겠다!
그렇게 나는 러시아에 가야겠다고 맘을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