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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윗드림 Sep 14. 2021

독자의 시선을 확 잡아당기는 매력적인 첫 문장

잊지 못할 첫 문장

좋은 소설은 잊지 못할 첫 문장으로부터 시작된다 ©freestocks, Unsplash


“모든 게 심드렁하고 그날이 그날 같고 궁금한 게 없으면 이미 죽은 것이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월든》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김훈《칼의 노래》


내 아버지는 사형 집행인이었다.
정유정《7년의 밤》



그 일은 잘못 걸려온 전화로 시작되었다.
폴 오스터《뉴욕 3부작》



국경의 긴 터널을 지나자 설국이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 《설국》



참으로 많은 날들이 흘러갔다. 서른 하고도 두 해. 
임철우《등대》



따뜻한 봄 날씨였다. 가볍게 집을 뒤흔드는 비행기의 폭음이 아스라이 멀어진다.
박경리《은하수》



온갖 꽃이란 꽃은 다 피워놓고 4월은 이울고, 꽃과 함게 유록색 새싹들을 돋아 올리며 5월이 오고 있었다.
조정래《풀꽃도 꽃이다》


첫 문장은 강력하다. 책을 펼쳐 든 독자와 마주하는 첫 만남. 첫 만남부터 강렬한 인상을 줘야 한다. 도저히 더 읽지 않고는 못 배길 거 같은 순간들. '내 아버지는 사형 집행인이었다.'라는 본인 이야기가 아닌 듯 들리지만 아버지의 직업으로 인해 충분히 어린 시절에 영향을 많이 받았을 주인공의 독백으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 일은 잘못 걸려온 전화로 시작되었다.' 첫 문장부터 복선이 깔리는 것이다. 사건의 전말은 잘못 걸려온 전화 한 통이다. 갑자기 간담이 서늘해진다. 첫인상 효과가 있다. 독자와 마주하는 소설의 첫인상은 단 3초 만에 결정된다.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을 처음 본 날을 잊을 수 없다. 때늦은 봄눈이 펄펄 내리는 날이었다.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2007 동인문학상



아버지와 어머니는 열일곱에 나를 가졌다. 올해 나는 열일곱이 되었다. 내가 열여덟이 될지, 열아홉이 될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김애란《두근두근 내 인생》



열심히 무슨 일을 하든, 아무 일도 하지 않든, 스무 살은 곧 지나간다. 스무 살의 하늘과 스무 살의 바람과 스무 살의 눈빛은 우리를 세월 속으로 밀어 넣고 저희들끼리만 저만치 등 뒤에 남게 되는 것이다. 
김연수《스무 살》


마지막으로 아내의 방에 들어가 본다. 푸른빛이 감도는 벽지, 벽을 향해 놓인 독일식 책상과 창가의 안락의자 그 사이로 알 수 없는 희미한 향기가 떠다닌다.
《아내의 상자》1998 이상문학상



노년은 도둑처럼 슬그머니 갑자기 온다. 인생사를 통하여 노년처럼 뜻밖의 일은 없다.
현기영《소설가는 늙지 않는다》


여러 번 가본 것은 아니지만 베르사유의 마로니에들이 주는 변함없는 느낌 중의 하나는 축축함이었다. 물에 불은 듯한, 그러면서도 물기는 전혀 안보이는 느낌만의 어떤 축축함.
이문열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첫 문장이 제목과 연결되는 구조이다. 책을 먼저 본 독자는 어떤 책일까 기대를 하게 된다. 그리고 첫 문장을 보고 어렴풋이 제목을 다시 떠올린다. 어릴 적 누구나 오늘 날짜와 날씨를 기입하고 제목을 쓰고 원고지에 글을 채워나갔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마치 누군가의 일기장을 훔쳐본 것처럼 이야기는 시작된다. 인생의 한 해뿐인 스무 살이라는 제목으로 스무 살이 우리에게 어떠한 의미인지 되짚고, 아내가 떠난 자리를 마지막으로 바라보며 그녀가 곁에 있을 때 느끼지 못했던 방의 벽지와 책상, 안락의자에서 희미한 향기를 발견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노년은 누구에게나 오겠지만 뜻밖의 일을 만들기 위해서 '소설가'에 제목을 붙여 흥미를 끈다.

수많은 책 속에서 흥미를 끄는 제목에게 손이 가게 된다 ©kdghantous, Unsplash


불길함. 말이 될는지 모르지만, 세 글자로 이루어진 이 말은 그야말로 불길하기 짝이 없다. 
구효서《낯선 여름》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



피 냄새가 잠을 깨웠다. 코가 아니라 온몸이 빨아들이는 듯한 냄새였다.
정유정《종의 기원》


누구나 살면서 잊지 못하는 시간들이 있다. 고통스러워서 아름다워서 혹은 선연한 상처 자국이 아직도 시큰거려서.
공지영《높고 푸른 사다리》



아아, 이야기를 어디에서부터 시작할 것인가. 이야기를 꺼내려하면 어떤 사건이나 인물의 모습보다도 낮은 목소리의 노랫소리부터 들려오기 시작한다.
최인호《겨울 나그네》


짧지도 그렇다고 길지도 않은 문장을 읽어 어떤 사건이 전개될지 알 수 없는 경우지만 궁금증을 자아내는 경우이다. 낯선 여름을 만나는 데 불길함으로 시작하고 피 냄새로 시선을 끌고, 행복한 가정은 비슷하게 평화롭지만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의 모습을 풀어 이야기하려는 작가의 의도가 들어있다. 누구나 살면서 잊지 못하는 시간들을 먼저 언급해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고민하는 작가의 방황하는 모습도 귀엽게 볼 수 있다. 첫 문장부터 강력한 인상을 주거나 제목과 크게 연결되지 않지만 독자의 눈길을 끌어서 집중하게 만든다.  

좋은 문장은 일상에 활력을 준다 ©hellorevival,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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