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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윗드림 Jan 01. 2022

힘들 때일수록 누군가를 도와야 하는 이유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의 명대사 

미국 유학시절 이야기다. 지친 몸을 차에 구겨 넣고 집으로 돌아가는 도중 초록색 불로 바뀌고 차가 많이 없는데 앞차가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집에 가서 얼른 씻고 쉬려 하는데 지체되는 시간에 마음이 조급해졌다. 내 앞의 차 세대가 별문제도 없이 대기 중이었다. 사고가 난 건가? 라 생각할 때쯤 눈앞에 놀랄 만한 풍경이 펼쳐졌다. 학교 근처에는 커다란 호수가 있는데 그 호수에서 청둥오리들이 유유히 수영을 즐기기도 한다. 그날은 청둥오리 어미를 필두로 새끼오리들이 차도를 천천히 건너고 있었던 것이다. 


어미는 누가 봐도 늠름한 어른의 모습을 갖추고 '얘들아, 엄마 잘 따라와!' 하는 모습으로 당당하게 걷고 있었고 무슨 영문인지도 모른 채 엄마를 졸졸 따라다니는 여섯 아기 오리들이 그 뒤를 쫓았다.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어미 오리는 차도를 한두 번 건너본 솜씨가 아니었다. 중앙선을 지났을 때 잠시 멈춰 반대쪽의 차량이 오는지 살폈다. 몇 번이나 좌우를 살펴본 다음에야 어미는 중앙선을 넘어 반대쪽으로 건너기 위해 천천히 걸어갔다. 


차도를 벗어나 어미가 폴짝 수풀 아래로 내려간 다음 첫째가 그다음으로 뛰어내렸고, 도착한 형제자매들은 막내까지 잘 오는지 뒤를 돌아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다. 막내까지 무리에 합류한 후 어미는 다시 당당하게 아이들을 이끌고 길을 나섰다. 어미 오리와 여섯 아이들의 안위를 확인한 후 기다리고 있던 맨 앞 차량이 출발했다. 그제야 나머지 차량도 출발할 수 있었다. 

엄마 잘 따라와야 해, 알았지?  @Vivek Kumar, Unsplash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라이프'잡지사에서 16년째 근무 중인 주인공 월터. 반복되는 지루한 직장인의 일상이지만 그만의 상상을 통해서 특별한 순간을 만들어내는 상상력이 풍부한 월터이다. 그에게 주어진 업무는 폐간을 앞둔 '라이프'지의 마지막 호 표지 사진을 찾아오라는 미션. 국내를 벗어나 본 적이 없는 월터는 문제의 필름 하나를 찾기 위해 그린란드, 아이슬란드를 넘나 든다. 상상했던 것과는 달리 더 거대한 어드벤처를 맞이하게 된다. 평범한 일상을 살던 월터는 야망 가득한 상사가 꼴 보기 싫기만 하다. 



To see the world, things dangerous to come to, to see behind walls, draw closer, to find each other, and to feel. That is the purpose of life.
세상을 보고 무수한 장애물을 넘어 벽을 허물고 더 가까이 다가가 서로 알아가고 느끼는 것, 그것이 바로 인생의 목적이다.
- 매거진 '라이프'의 모토


우여곡절 끝에 25번 필름을 찾게 되는 월터. 결국 그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게 된다. 사표를 내고 난 며칠 후, 회사를 다시 찾아간다. 윗선에 잘 보이려 아부만 하는 상사에게 우리 회사의 모토가 뭐냐고 묻지만 그는 그런 모토 따윈 관심이 없다. 그저 아부만 떨며 승진하기만을 바랄 뿐이다. 폐간을 앞둔 매거진의 표지를 장식할 사진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그 사진을 찾기 위해 험난한 여정을 하던 월터는 그 매거진을 만들기 위해 고생하는 직원들의 노고를 몰라주는 상사에게 다시 찾아가 한방 먹이게 된다. "너도 힘든 거 알겠지만, 그렇게 재수 없을 필욘 없잖아?"

다 먹고살기 힘든데, 그렇게 재수 없을 필요는 없잖아 새꺄!


삶이란 무엇일까? (What is Life?)


우연의 일치인지 매거진의 제목은 '라이프' 즉 '인생'이다. 그 인생은 세상을 보고 무수한 장애물을 넘어 벽을 허물고 가까이 다가가 서로 알아가고 느끼는 것이라는 점이다. 무수한 장애물이 우리 앞에 있지만 우리는 그것을 넘어설 수 있다. 장애물이라는 벽은 곧 허물게 되며 목표에 다가가게 된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서로의 노고를 찾고 공감해야 한다는 점이다. 커다란 장애물을 헤쳐나갈 수 있다. 하지만 그 무언가는 사람이 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공부에 지쳐 삶에 지쳐 학교 안에 커다란 호수가 있다는 것도 또 그 안에 청둥오리 가족이 살고 있다는 것도 잊고 있었다. 호수 근처에는 새똥이 가득해 잘못 갔다가는 잠을 깨는 듯하게 심한 악취와 신발에까지 똥을 묻히는 불상사가 일어나서 자주 가지 않았다. 허나 잠시 눈을 떠 주변을 돌아보니 우리는 수많은 생명체와 공존하고 있었다. 


몇 달이 채 지나지 않아 차를 타고 지나가던 도중 또 앞 차량이 서게 되었다. 시골 동네에서는 크락숀을 울리는 것은 차를 찾을 때를 제외하고는 울리지 않는 게 매너이다. 급한 상황이 아니어서 기다리고 있는데 앞차 운전자가 차를 세우고 잠시 나와 건널목을 건너는 지팡이 든 노인을 부축해주고 있었다. 안전하게 횡단보도 끝까지 모셔다 드리고는 나서 다시 차에 타면서 기다린 나에게도 기다려줘서 고맙다며 손을 한번 흔들고 떠났다. 



누군가가 당신의 커피 한잔에 따뜻해질 수 있다면


미국에 도착한 후 '선진국이 왜 이래?'라는 생각을 하며 실망한 점도 많았지만 선진국 반열에 오른 것은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이 큰 것이라 생각된다. 미국에서는 '서스펜디드 커피(Suspended Coffee)'의 문화가 있다. 불우한 이웃을 위해 지정된 커피숍에 홈리스 등 누군가의 커피 값을 미리 지불해 커피를 맡기는 커피 기부운동이다. 


돈 없는 유학생 시절이라 형편이 좋지 않았지만 기부한 몇 잔의 커피로 누군가를 도울 수 있음에 감사하며 한 달에 몇 잔을 기부했다. 누군가의 작은 행동은 다른 이의 또 다른 어떠한 행동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런 행동은 생각보다 쉽게 전염된다. 청둥오리 가족이 나에게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채워주고 천천히 가는 세상의 즐거움을 알려줬다면 나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 더 가까이 다가가 서로 알아가고 느끼는 것, 이것이 바로 인생의 묘미이다.

따뜻하게 드세요 ⓒ매일경제

 

<참고 자료>

- '커피 기부 운동' https://mnews.imaeil.com/page/view/2013040518251834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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