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나잇 선>의 명대사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에는 돌아오는 무한한 자유에 어쩔 줄 몰랐다. 아침 일찍 학교 갈 채비를 하지 않아도 되고 마냥 선생님만 기다리지 않아도 되는 자유가 주어진 것이다. 어른이 된다는 건 책가방 둘러메고 다니던 어린 꼬마가 뛰어가다가 갑자기 어른이 된 드라마를 본 기분이다. 그렇다고 어른이라고 부르기에 어른이라는 이름의 무게를 책임질 만큼 자라지도 않은 것만 같다. 키가 작지도 크지도 않은, 힘이 세지도 안세지도 않는, 무언가를 책임질 수도 책임지지 않기도 어려운 나 자신을 바라보는 게 쉽지 않던 시기였다. 청춘의 시기인 20대는 그저 혼란의 시대였다.
나에게 주어진 역할은 잘할 수 있는데 역할이 없어지면 무언가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 누가 '학교 가서 공부해!'라고 하면 할 수 있지만 '자율적으로 공부하세요.'라고 하면 머릿속에 물음표가 생기는 동시에 뭘 해야 할지 몰라서 땀이 흐르기 때문이다. 하라는 대로 살아와서 할 수 있는 걸 안 해봐서 자유를 느껴본 적이 별로 었던 것이다. 영화 <쇼생크 탈출>의 모건 프리먼이 감옥을 나와서 느끼는 자유에 어쩔 줄 몰라 사사건건 질문을 하는 것과 피차 다를 바 없다. 감옥에서 시키는 대로 해온 터라 자유가 낯설기만 하다. 자유를 외쳤지만 힘겹게 얻은 자유는 점점 더 낯설기만 하다.
갑자기 다가온 자유에 프리덤~이라도 외치고 싶었지만 현실은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방황했던 그 시절이다.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아니었고 '방황하니깐 청춘이다'였다. 방황의 시기에 딱히 나쁜 짓을 못된 짓을 하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무언가를 남긴 것도 아니고 귀한 시간을 흘려보내기만 했다. 그 시절의 나는 어떤 모습으로 남아있을까?
색소성 건피증(XP)이라는 희귀병으로 태양을 피해야만 하는 주인공 케이티. 오직 밤에만 외출이 허락된 그녀에게 어머니가 남겨준 기타와 10년째 짝사랑해온 찰리만이 오직 세상의 빛이다. 어느 날 기차역에서 버스킹 하던 케이티 앞에 찰리가 나타나고 그들은 밤의 데이트를 즐기게 된다. 그들의 밤 데이트는 즐겁기만 하다. 어두움 속에서도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며 청춘만이 할 수 있는 데이트를 즐기게 된다. 함께 여행을 떠나게 된 날, 케이티는 지켜야만 하는 규칙을 어기게 되고 피할 수 없는 선택을 해야만 한다.
Even though our time together was short. The stars have been burning for every moment of it and the light from those moments will be shining down for the next thousand years.
함께한 시간은 짧았지만, 매 순간 별들이 타오르는 것 같았어. 그 순간의 불빛들은 앞으로 수천 년 동안 반짝일 거야.
그녀는 사랑에 빠진 남자 친구와 모든 걸 함께 하고 싶다. 같이 요트를 타고 싶다는 그녀는 드디어 용기를 내어 빛을 만나게 된다. 환하게 빛나는 따스한 햇빛을 가득 맞으며 행복한 순간을 맞이한다. 마지막 순간임을 직감한 그녀는 소중한 시간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맘껏 즐긴다. 짧은 시간 동안 행복을 누렸던 그녀에게 매일이라는 시간은 선물이었다. 그녀를 죽음에 슬퍼하는 찰리에게 케이티의 아버지는 이미 남은 시간이 적다는 걸 알고 있었고 딸을 행복하게 해 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전한다.
우리는 평소에 가진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눈부신 햇살이 비추면 눈이 부셔 선글라스로 햇빛을 덮고, 안개가 가득 낀 날이면 앞이 안 보여 안개 탓을 한다. 나에게 거슬리는 눈부신 햇살은 누군가에게는 단 한 번이라도 만나고 싶은 희망이자 절망 일지 모른다. 나에게 당연한 일이 누군가가 열망하던 단 한 번의 기회이자 마지막 순간일 수도 있는 것이다.
퇴근하던 도중 지하철에서 어떤 여성이 전화 통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 이제 29살이야. 인생 다 끝났어. 늙었어." 한참을 푸념하는 그녀를 보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혼자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직 29살이면 애기구만.'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는다는 노래 가사처럼 그 시절의 젊음을 깊게 체감하지 못한다. 자신이 가진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1년 전 사진만 봐도 참 어렸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어리고 참 몰랐다. 내가 나이가 많은 줄 알았고 보이지 않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 아무것도 못할 줄 알았다. 그 시절을 반추해보면 참 어렸다는 걸 뒤늦게 깨닫는다. 생각이라는 장벽에 가로막혀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 일은 할 수 없는 게 되어버린다. 오늘이 내 인생 가장 젊은 날인걸 잊고선 말이다.
언젠가 현재였던 과거를 돌아보면 이제 그 과거는 시간의 강 위로 흘러 내려가는 걸 마주하게 된다. 나이 들었다 생각하는 순간 나이 든 내가 보이고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좌절감이 밀려온다. 뒤돌아 보면 아주 소중한 그 순간들을 언젠가는 젊음이라 부르며 그리워하게 된다. 짧은 순간의 찰나는 매 순간 별들이 타오른다. 그 순간의 불빛들은 추억이 되어서 수천 년 동안 반짝일 것이다.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았네
하지만 이제 뒤돌아 보니
우린 젊고 서로 사랑을 했구나
눈물 같은 시간의 강 위로
떠내려가는 건 한 다발의 추억
그렇게 이제 뒤돌아 보니
젊음도 사랑도 아주 소중했구나
<언젠가는> 이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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