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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윗드림 Dec 29. 2021

요즘 것들은 롱패딩에 쓰레빠를 신는다

요즘 것들 좀 보라지!

영하 15도까지 내려가는 강추위가 계속되고 있다. 겨울 한파라지만 춥디 추운 날씨이다. 2021년인 요즘, 젊은이들은 롱패딩에 쓰레빠를 신고 다닌다. 처음엔 내가 잘못 봤나? 하고 착각할 정도로 놀랬지만 한겨울에 롱패딩을 입고 얇은 양말 위에 슬리퍼를 신고 다니는 장면을 흔치 않게 볼 수 있다. 한두 명씩 양말에 쓰레빠를 신더니 이제는 제법 눈에 많이 띈다.


작년 겨울엔 젊은이들이 발목 훤히 드러나는 짧은 양말에 운동화나 구두를 신고 다녔다. '발목 안 시리나? 뼈 시릴 텐데.'라 생각하며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본 기억이 난다. 일 년이 지난 올해 겨울에는 발목은 가리지만 양말에 쓰레빠만 신고 다니는 요즘 것들이 가득하다. 설마? 잠시 나온 거겠지. 아니면 패션과 유행이 추위를 이기는 것인가? 춥지도 않나?

묵묵하시던 아저씨도 꼭 한 번씩 뭐라 하시죠
옷 입은 꼬라지 저 꼬라지 좀 보라지 아예 아예 아 예 예 예
Ah yeah ah yeah yeah yeah
요즘 것들 이래서 안돼요 요즘 것들 이래서 안돼요
각도는 18도로 굽힌 채로 아예 아예 아 예 예 예

<요즘 것들(Feat. ZICO, DEAN)> 쇼미 더 머니 6

아! 테스 형 요즘 것들 왜 이래


요즘 것들에 대한 정확한 나이 기준은 없다. 사전적 정의로 요즘은 명사 '요즈음'의 준말이다. '어제오늘'이란 이야기이다. 여기에 사람을 낮추어 이르는 말인 '것'을 붙이면 '어제오늘 사람'이 된다. 그저 '요즘 것들'은 나보다 '어제오늘' 어리면 요즘 것들이 되는 것이다. 30대들도 20대들을 20대들은 10대들을 중딩들은 초딩들을 초딩 고학년들은 초딩 저학년들을 '요즘 것들'이 부르고 버릇이 없다 한다.  


2020년 국민가수 나훈아 님이 발표한 <테스형>은 그야말로 히트작이었다. 너 자신을 알라며 툭 내뱉고 떠나버린 형이 밉기도 하고 알아내지 못하는 나 자신이 밉기도 하다. 차라리 '너 자신을 알라'가 아니라 '세상은 아프다'라고 하지 그랬어? 아프다. 참 아프다. 세상이 눈물 많은 나를 아프게 한다. 먼저 가본 저 세상 거기는 어떠신가요? 가보니 천국인가요? 괜찮나요? 말해줘요 테스 형!!


요즘 아이들은 폭군과도 같다. 아이들은 부모에게 대들고, 게걸스럽게 먹으며 스승을 괴롭힌다.

- 기원전 425년 경 소크라테스가 말했다 하나 사실 불분명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인 소크라테스가 있었던 그 시기에도 '요즘 것들'이 있었다. 그들은 폭군이었고 부모에게 대들고 게걸스럽게 먹고 스승을 괴롭히는 것들이었다. 기원전 5세기부터 요즘 것들은 선배 무서운 줄 모르고 나대고 까불었던 것이다. 수천 년 전 건재하셨던 테스 형도 요즘 것들 때문에 상당히 괴로우셨던 모양이다. 요즘 것들에 대해 혀를 끌끌 차는 습성은 오랫동안 이어져온 것이다.



세상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합리정서행동치료의 창시자인 엘리스가 소개한 개념으로 지속적인 당위적 조건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기대하는 사고가 바로 '당위적 사고'이다. '나는 완벽하게 일을 처리해야 해.'라는 '자신에 대한 당위', '어떻게 사람들은 그런 식으로 행동하지?'라는 '타인에 대한 당위', '어쨌든 반드시 좋은 결과가 나와야 해.'라는 '세상에 대한 당위'가 있다.


이러한 당위성에 대해서는 세 가지 측면의 논박이 있다. 첫째로 다른 사람에게도 자유의지가 있다. 두 번째로 우리는 다른 사람의 의지에 대한 완벽한 통제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셋째, 다른 사람을 통제하기 위한 시도는 부정적인 결과로 나타난다. 여러 가지 변형된 사고로 과일반화, 파국화, 낮은 인내심으로 연결될 수 있다. 당위적 사고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유일한 통제력인 자기 자신에 대한 당위성 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까맣게도 자기 자신의 모습을 잊는다. 18세가 보기에 15세는 버릇없고 싸가지 없어 보이고 50세가 보기에 40대부터 10대까지 모두가 답답해 보인다. '나 때는 안 저랬는데.'라며 자기 자신을 위로하기도 하고 그만큼 잘 버텼다 자화자찬하기도 한다. 하지만 누가 어떠한 식으로 행동하는지에 관계없이 사람들은 각자 자기 방식대로 행동한다.



요즘 것들이랑 같은 세상에 살아서 좋다


"(버릇없이, 싸가지 없이, 건방지게) 어른들의 말을 왜 안 듣냐?"라 비난하는 순환은 영원히 반복되고 있다. "우리 때는..(라테는 말이지)"이라며 자신들을 추켜세우는 무용담의 역사는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다. 과거의 안 좋은 부분은 잊어버리고 '요즘 것들'이라 통틀어 욕하는 건, 그저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러니깐 잘해왔다고 말해주십시오.'라고 인정을 바라는 말이기도 하다.


캐나다 워털루 대학의 리처드 아이 바흐는 이러한 현상을 Good-old-days bias(좋았던 옛날 편향)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어릴 적 친구를 만나면 그 친구와 함께 즐겼던 그 시대의 이야기만 주야장천 하는 것과 같다. '좋았던 그 옛날'은 조금 미화되었다. 그 시절 분명 힘든 점도 있었고 불만스럽고 안 좋았던 기억도 가득하지만 지금 되돌아보면 다 좋았던 기억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테스형>의 노래에서도 이러한 인생이 나타나 있다. 우리의 인생은 어쩌다가 한바탕 턱 빠지게 웃고 또 아픔을 웃음에 묻기도 한다. 오늘이 고맙기도 하고 또 죽어도 오는 내일도 두려움이 앞서기도 한다. 누구나 거쳐간 '요즘 것들'은 사람으로 태어났고, 더 잘 살고자 고민하는 인간이라는 동물이다. 요즘엔 요즘 것들과 함께 있어 좋다. 나라면 생각지도 못한 겨울철 발목이 다 드러나는 발목양말을 신는다던가 양말 위에 쓰레빠를 신는 진귀한 장면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인생이 즐거운 건 혼자가 아니어서이다. 내 신념대로 잘살고 있긴 하지만 세상을 살다 보면 나는 무한한 편견 안에 갇혀있다는 생각이 든다. 2022년이 다가오는 오늘, 요즘 것들과 함께 같은 세상에서 사는 게 좋기만 하다. 예전 요즘 것들이 만들어 놓은 세상을 편안히 따라 걷는 재미도 있고 또 요즘의 요즘 것들은 어떻게 살아가는지 보는 즐거움이 있기 때문이다. '요즘 것들'은 기원전부터 이어져왔듯이 앞으로도 수천 년간 이어질 것이기에 이왕 계속 만날 '요즘 것들'이 주는 재미있는 장면들을 맘껏 즐기는 건 어떨까?    


모든 세대는 자기 세대가 앞선 세대보다 더 많이 알고 다음 세대보다 더 현명하다고 믿는다.
- 조지 오웰
요즘 것들과 함께 걸을까?  @johnmoeses, Unsplash

<참고 자료>

당위적 사고 (naver.com)

요즘 젊은 것들은 버릇이 없다 - 나무위키 (namu.wiki)

천 년이 지나도 절대 안바뀔 꼰대 문화 jpg - 포텐 터짐 최신순 - 에펨코리아 (fm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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