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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윗드림 Jan 04. 2022

속마음 그대로 말하기 기계 보유자

이모생일선물이거

나에겐 하나뿐인 조카가 있다. 초등학교 1학년이 되었으며 핸드폰을 가지게 되었다. 어느 봄날 산책을 하는데 핸드폰으로 전화가 왔다. 


조카: "이모, 어디야?"

나: "응, 이모 산책하고 있어. 시현이는?"

조카: "응, 나 어린이날 갖고 싶은 게 생겨서."

나: "응 그래 뭔데?"

조카: "엄마 카톡으로 보냈어. 이거 사조."

나: "알았어. 사줘야지. 그런데 이거 사달라고 전화한 거야?"

조카: "응."


조카는 의사가 분명하다. 자기가 원하는 장난감이 이거라고 말할 줄도 알고 또 꾸며내지 않은 솔직한 대답을 한다. 표현도 다양하다. 즐거울 때는 세상을 다 가진냥 박장대소를 하며 웃고, 슬플 때는 나라를 잃은냥 대성통곡을 하며 눈물을 뚝뚝 흘린다. 그리고 전화통화도 '용건만 간단하게' 짧지만 용건과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는 아이이다. 


이제 크리스마스나 생일에도 본인이 원하는 제품을 검색해서 사달라고 하며 카톡을 보낸다. 그리고 돌직구로 말한다. '이모생일선물이거', '크리스마스선물로이거사죠'라고. 그리고 선물을 택배로 보내면 '왔떠><감따합닝당><'이라고 사진을 찍어 보낸다. 행복한 기분도 마음껏 표현한다. 

갖고 싶은 건 갖고 싶다 말하기!!



속마음 그대로 말하기 기계 보유자


어느 날은 친구와 놀다 소심한 조카의 친구가 놀다 삐져서 자기 엄마 옆에서 오래 시무룩하게 있었다고 한다. 처음엔 가서 기분 풀고 같이 놀자고 했다가 몇 번을 해도 반응이 없으니 나중에는 대놓고 말을 했다. "넌 아직도 삐져있는 거니? 언제 풀리는 거야? 같이 놀긴 할 거니?" 조카에겐 아마 '속마음 그대로 말하기'기계가 있나 보다. 하고 싶은 말을 거침없이 다 하곤 한다. 


어쩔 때는 부럽기만 하다. 나는 저렇게 마음껏 웃어본 적이 있었나? 누가 보더라도 정말 내 마음이 슬퍼서 펑펑 운 적이 있었던가? 싫은 사람에게 할 말을 다하지 못하고 "괜찮아요.."라고 얼버무린 적이 있거나 민망해도 티 내지 않는 것이 예의라고 배워서 예의 없고 배려 없는 사람이 되기 싫어 가면을 쓰진 않았던가? 



거울에 비친 자아(自我)


우린 언제부터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 못하는 게 '사회화'되었다고 이야기하는 걸까? 다 같이 살아야 하니깐 내 감정은 감춰야 하는 건가? 사회화는 단순히 어린 시절 가정이나 학교를 통해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평생에 걸쳐 일어나게 된다. 만약 본인이 덜렁대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부모님께 '제발 좀 얌전하게 행동해라'라는 말을 많이 들었을 수도 있다. 이렇게 사람들은 자신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의견이나 평가를 판단의 근거로 삼아 자아를 이해하는 데 이는 '거울에 비친 자아'라 한다. 


사람들이 많이 있는 곳에서 욕을 하거나 침을 뱉지 않는다. 이건 나의 행동을 평가하는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염두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편적으로 신경을 쓰는 사회 구성원을 '일반화된 타자'라고 한다. 종종 공부를 잘하면 엄마의 칭찬을 받는다거나 예쁜 가방을 메면 친구들이 나를 매력적으로 느낀다고 생각하는 경우에 이들은 좀 더 중요한 사람들인 '의미 있는 타자'이다. 일상적인 행동들은 이렇게 기대나 가치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거울에 비친 자아나 일반화된 타자를 사회화의 과정에서 중요하게 여기면서 타인의 관점이 더 중요하게 되었다. 이러한 관점으로 '여자답게', '남자답게'를 사회화하는 것도 '일반화된 타자'나 '의미 있는 타자'의 기대에 부응하는 과정인 것이다. 타자가 '여자가 조신하게 다녀야지'라 했을 때 신경 쓰게 된다면 '거울 속 자아' 때문일 수 있다. 




조금 더 천천히 어른이 되었으면 한다 


거울에 비친 자아가 긍정적으로 바라보거나 나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을 '의미 있는 타자'로 삼을 때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나에게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는 사람을 '의미 있는 타자'로 삼거나 거울 속 자아를 부정적으로 볼 때 눈치를 많이 보게 되고 불행은 가중된다. 


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조카는 자라면서 언어를 학습하고 다른 사람들과 부딪치면서 사회화 행동을 배우게 될 것이다. 그리고 자기 중심성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다. 그녀의 주변에서 그녀를 바라보는 사람들을 '의미 있는 타자'로 삼고 사회적 관계를 맺음으로써 점차 사회화되어갈 것이다. 

사회화: 개인이 살아가는 사회에서 사회생활에 적합한 가치, 규범, 지식 등을 내면화하는 과정 


조카가 좀 더 천천히 어른이 되었으면 한다. 내가 지나온 길이 그리 좋은 사회는 아니었기에 조카가 사는 세상은 더 좋은 사회가 되어 긍정적인 사회화를 겪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솔직하게 말해주는 게 귀엽기도 하고 또 내가 하지 못하는 속마음을 그대로 말해 속이 후련하기도 하다. 해맑게 웃고 사소한 것에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누구와도 쉽게 친해지는 것은 물론 세상의 모든 것을 놀이로 보는 그런 특별한 시각을 가진 조카에게 더 좋은 세상인심을 선사하고 싶다. 

뒤에 서있는 아이에게 긍정과 사랑이 넘치는 세상이 되도록 어른들의 사랑의 손길이 필요하다 @timmarshall, Unsplash



<참고 자료>

- 로빈슨 크루소는 왜 무인도에서 탈출했을까?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718534&cid=47336&categoryId=47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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