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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윗드림 May 31. 2021

도서관에서 사랑 고백을 하다

사랑한다고 말하려고 전화했어

도서관에서 큰소리로 전화를 하다니

 

미국에서의 학부 때 일이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지친 몸을 이끌고 도서관으로 향했다. 졸음과 싸우며 과제를 꾸역꾸역 하려고 하던 그때 잠을 깨우는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 저예요." '뭐지? 도서관에서 전화를 조심스레 받는 것도 아니고 먼저 전화를 건 거야? 그것도 큰 목소리로? 와, 미국애들 진짜 개념이 없구나. 황당하네 조용히 해달라 쪽지 써야겠네.' 여기는 공공장소라고, 네가 잘못됐다는 걸 알려주려 펜을 든 손은 이내 다음 문장에 녹아내리고 말았다.

사랑한다고 말하려고 전화했어요, 엄마.
(I just wanted to say I love you, Mom.)


 그랬다. 그녀는 조용한 도서관에서 모두가 듣도록 사랑 고백을 한 것이다. 그녀의 하나뿐인 엄마에게 말이다.



우리는 왜 표현에 인색한 걸까?


표현에 인색한 나라에서 자라온 나는 적지 않게 당황했다. 만약 여느 한국 대학의 도서관이었다면 "너 마마걸이야? 적당히 좀 해."라는 핀잔으로 들었을 테다. 한국인이 칭찬이나 표현에 인색한 이유는 겸손이 미덕이라 배웠기에 아님 나 스스로가 그런 표현을 많이 들어 본 적이 없기에 혹은 기대 수준이 높기에 어느 때 어떻게 뱉어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일 수 있다. 이후 나는 도서관을 갈 때마다 그녀가 떠올랐다. 그 사랑 고백은 세상 어떤 고백보다도 갑작스러웠고 공개적이었으며 우리 모두가 가진 엄마를 떠올리게 했고, 또한 우리 모두가 누군가의 소중한 아들딸임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었다.



어~알았어, 알겠다고


부모님이 전화를 하시면 대부분 잔소리로 시작해 잔소리로 끝나기에 "어, 알겠어, 알겠다고. 끊어."로 마무리를 한다. 어릴 적부터 집이나 학교에서 칭찬을 듣지 못한 채 우리는 어른이 되었다. 문제를 채점해주는 펜이 무슨 펜인지 기억나는가? '빨간펜'이다. 그 빨간색으로 틀린 문제에 집중해 '너는 아직도 멀었어.'라는 핀잔과 '더 노력하면 칭찬해 줄게.'라는 희망고문으로 자라왔다. 90점을 맞아도 100점 맞은 친구와 비교당했고, 우수학생으로 선발됐을 때도 더 분발하라는 말뿐인 인색한 분들이 한국인의 부모님이다. 그러나 그들이 학창 시절 때 겪은 칭찬에 대한 아쉬움과 상처도 피차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런 칭찬의 인색함은 그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우리에게 대물림된 것 그뿐이다. 그저 우리 모두 칭찬에 한이 맺혀 뱉을 줄도 모른 채 사랑한다는 말도 잊어버린 채 어른이 된 것이다.



사랑한다고 말하려고 전화했어


 스티비 원더의〈그저 당신을 사랑한다고 얘기하려고 전화했어요(I just called to say I love you)〉는 영화『우먼 인 레드(The Woman In Red)』의 주제곡으로 아카데미 주제가상, 골든 글로브 주제가상을 받았다. 순진한 광고회사 직원인 테디는 빨간 옷에 빨간 구두를 신은 아름다운 여인의 미모에 한눈에 반하게 된다. 그녀와의 데이트 기회를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중년 남자의 위기를 재미있게 엿볼 수 있다. 누군가의 사랑 고백도 이처럼 어느 한순간 우리 마음속으로 들어올 수 있다. 어릴 적 무서운 그 빨간색도 이렇게 아름다운 흠모의 대상으로 바뀔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자칫 예의 없다 착각한 그 여학생이 나에게 가르쳐 준 것은 우리 모두 누군가에게 매우 귀중한 존재라는 사실과 값진 사랑 표현의 중요함이다.

그저 사랑한다고 말하려고 전화했어요  ⓒFarknot Architect, shutterstock
No New Year's Day to celebrate
No chocolate covered candy hearts to give away
No first of spring, no song to sing
In fact, here's just another ordinary day

No April rain, no flowers bloom
No wedding Saturday within the month of June
But what it is, is something true
Made up of these three words that I must say to you

I just called to say I love you
I just called to say how much I care
I just called to say I love you
And I mean it from the bottom of my heart

새해 축하 인사도 아니에요
초콜릿 바른 하트 사탕을 주려는 것도 아니에요
봄을 알리는 첫 날도 아니에요
노래를 부르려는 것도 아니에요
사실 오늘은 다른 날과 같은 또 다른 평범한 날이에요

4월의 봄비가 내리는 것도 아니에요
꽃이 활짝 피는 것도 아니에요
6월의 토요일 결혼식날도 아니에요
그러나 무언가 진실된 거예요
그것은 내가 당신에게 반드시 말해야만 하는
이 세 가지 말들이에요

그저 당신을 사랑한다고 얘기하려고 전화했어요
그저 당신을 내가 얼마나 아끼는지 전화했어요
그저 당신을 사랑한다고 얘기하려고 전화했어요
정말이에요 내 마음 저변에서 나오는 진실이에요

Stevie Wonder <I Just Called To Say I Love You> 중


『The Woman In Red』의 주제가 <I Just Called To Say I Love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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