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나이 오십

1막 그래서 # 남의 편인 그와 그

by 제이 유

바이올리니스트에서 지휘자로 이름을 바꾼 그녀. 오십을 갓 넘었다. 물어 볼 일이 있어 회사 전화기로 전화를 걸었는데, 신호음 뒤에 들려오는 목소리가 앙칼져도 너무 앙칼지다.

"여보세요!!!"

신경질적으로 쏟아내는 말투에 화들짝 놀라 말을 더듬으며 대답했다.

"어.. 선..생님.. 저, 유.. 정임 이에요...."

무안해진 그녀가 급무안해진 말투로 목소리를 바꾼다.

"어머 어머.. 에이구! 죄송해요! 저는 우리 남편인줄 알고. 하하하.

전화번호 국이 851로 떠서 우리 남편 직장전화인줄 알았어요. 어머 죄송해요. 같은 지역이구나..."

남편인줄 알았다는 말에 외려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어머. 선생님. 호호호. 이렇게 다정하신 분이 남편 전화를 그렇게 받으세요? 깜짝 놀랐어요."
내 말에 더 놀란건 건너편의 상대.

"아니 그럼, 남편 전화를 다정하게 받는 분이... 아직도 지구상에 있단 말이에요?"

우리는 깔깔대며 배를 잡다가 통화를 마무리했다.


막 결혼했던 신혼 시절. 선배들은 '남편'인 그가 '남의 편'이 되는 날이 온다고 했다.

개 풀 뜯어먹는 소리라고 그때는 코웃음 쳤다. 이렇게 달큰한 내 편이 남의 편이 된다니. 말이 되는 소리인가.

하루 세끼 먹는 사람들이 하루 한끼로 살아갈 수 있다는 뉴스보다도 더욱 넌센스라고 생각했다.

그는 늘 황홀한 내 편이고. 그는 늘 당연한 내 편이고. 그는 늘 환상속의 내 편일줄 알았다.

힘들고 어렵고 눈물날때마다 그는 내 편에 서서 함께 눈물 흘려주는 환상행진곡의 동반자인줄 알았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아줌마 몇이 마주 앉으면 '남의 편'이 된 그들을 성토하며

우리의 지난 시절에 깊은 공감을 나누게 되었다. 아. 그것이 현실이 되었다.

가끔은 궁금했다. 그들도 우리처럼 '마누라'이야기를 질펀하게 꺼내 놓을까?

달콤했던 신혼의 대화들은 어느날부터인가 지루함 가득한 묵언수행의 세계로 옷을 갈아입었다.

간질거리던 사랑의 언어들은 아파트대출금과 자동차 할부금의 현실적 언어로 자리를 바꾸며 사라지고 말았다.

이승의 삶 속에서 영원할 줄 알았던 사랑의 미소는 분노로 가득한 짜증이 되어 돌아오곤 했다.

그것이 사는 일 이었고 그것이 누구나 경험하는 평범한 결혼이었다.

내 곁의 남편이 멀찌감치 마주선 '남의 편'이 되었다는 사실을 인식했던 어느 날.

세월이 흘러가도 너무 멀리 흘러가고 있었다.


"어머. 입을 옷이 없어. 입을 옷이..."

옷장을 열어두고 한숨 쉬는 젊은 아내 옆에서 남편인 그는 달콤하게 속삭였었다.

"뭘 입어도 이쁜 당신이 무슨 걱정이야... 내 마누라야 어딜 내놔도 최고지!"

영원히 그런 건줄 알고 살았다.

"뭘 입어도 거기서 거기야. 그냥 큰 사이즈를 사. 한숨 쉬지 말고.."

오십줄에 들어선 '남의 편'은 안 하면 더 좋을 이야기를 위로랍시고 내뱉으며 괜한 미움을 사고있다.

아. 남의 편이여! 더 이상 내 편이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너무나 객관적'이 되어버린 그대 앞에서 오도가도 못하는 나는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려 열심히 애쓰고 있다.

앙칼지고 찰지게 들렸던 '여보세요!'의 외마디 비명, 속 시원했던 그 한마디의 통쾌함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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