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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영희 Oct 07. 2024

자그마한 삶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면 외롭지 않으냐고 직접 묻지는 않지만, 궁금해 죽겠다는 눈빛을 보내는 사람이 간혹 있다. 나는 대답하지 않고 어지간하게 괜찮다는 눈빛만 보낸다. 다음에 혹시 누가 물으면 전 우주가 그대 안에 있으니 외로워 말라던 아랍의 옛 시인이 남긴 명언을 들려줄지 생각해 본다. 아니면 누군가 곁에 있었어도 내가 바라는 만큼 마음을 되돌려주지 않아서 외로움이 사무쳤던 때를 들려줄까 싶기도 하다. 


반려자가 없어서 아쉬운 순간은 간혹 있다. 기가 막히게 재미있는 어떤 것을 알게 되었어도 퍼뜨릴 사람이 없어서 김이 좀 빠질 때가 있다. 요리에 별다른 재주는 없어도 가끔 끝내주게 맛있게 되어 감탄하기도 하는데, 그럴 때 의기양양하게 먹어 보라며 한 숟가락 내밀 사람이 없어서 혼자 멋쩍을 때가 있다. 세월이 흐르다 보면 어쩌면 몹시 쓸쓸해질지도 모른다.


지금은 혼자여서 괜찮은 나날을 보낸다오롯이 나 홀로 지내는 시간이 소란하지 않아서 좋다. 옆에 사람 없이 혼자 사니 사방이 고요하고 잔잔하다. 내 촌집을 둘러싼 식물과 밝디밝은 햇볕과 품에 안겨 골골대는 고양이 둘이 내 혼자의 삶을 충분히 채운다. 내 속도 대로 한 가지씩 느긋하게 일을 처리할 수 있어서 좋다. 시간은 오직 나만을 위해 소임을 다하고 느리게 흘러간다.



혼자 사는 삶

혼자 살면 등 비빌 언덕이 없어 위급한 순간이 닥치면 무척 난감해진다. 아플 때 보호자가 되어 줄 사람이 없으니 여간해서는 아프지 말아야 한다. 길게 집을 비울 때면 고양이들 밥과 물을 챙겨줄 사람도 없으니, 반려동물이나 반려 식물이 있다면 어디 멀리 여행도 못 간다. 혼자 사니 책임져야 할 사람이 없어 나 하나만 단도리하면 되는 건 장점이다. 나 한 사람에 맞춰 삶의 규모를 줄일 수 있다.



덜 벌고 덜 쓰는 삶

지금 혼자 살고, 앞으로도 쭉 혼자 살 사람이라면 벌이와 씀씀이의 균형을 기가 막히게 잘 맞춰야 한다. 씀씀이를 좌지우지하는, 돈을 쓰고 싶은 욕망과 충동을 통제해야 한다. 조용히 혼자 글을 쓰고 책을 만드는 삶으로 전환하고 나서는 고정 수입이 없어지고, 건강 때문에 일을 줄여 수입 규모는 줄었다. 덜 벌게 되었으니 덜 쓰는 삶으로 전환해야 했다. 삶의 규모를 축소해야 했다.


기괴한 통증 증후군을 얻으면서 삶을 대하는 방식이 조금 바뀌었다. 그때 소비 방식도 덩달아 바뀌었다. 아니, 소비 욕망이 거의 사라졌다. 새치 염색약에 불타는 듯한 통증을 느끼게 되어 천연 헤나로 집에서 염색하게 되었다. 에어컨 바람을 쐬면 척추부터 시작해서 통증을 느끼게 되어 서늘하게 에어컨이 켜진, 소비 욕구를 자극하는 팬시한 공간에는 되도록 가지 않게 되었다. 육류와 유제품을 먹지 않으면서부터는 비싼 외식을 하지 않게 되었고, 배달 음식을 시켜 먹을 일도 없어졌다. 작년에 술을 끊으면서는 혼삶의 필수 항목인 편의점 맥주도 더 이상 사 마시지 않게 되었다. 


촌에 살면 대중교통 이용이 너무 불편해서 자차는 반드시 있어야 한다. 차에 들어가는 전구와 배터리 같은 소모품 정도는 혼자 교체할 줄도 알아야 한다. 유튜브 덕분에, 벌이 규모가 준 덕분에 도시에 살았다면 감히 시도조차 못했을 법한 것들을 혼자 그만저만하게 해내게 되었다. 생각보다 간단하고 차량 유지비 지출도 꽤 준다. 무엇보다 무척 뿌듯하다.

나는 이렇게, 어떻게 보면 꽤 수월하게 덜 벌고 덜 쓰는 삶에 무사히 안착했다.




덜어내는 삶

작년 이맘때쯤, 대출금을 다 정리했다. 이로써 덜 벌고 덜 쓰는 삶이 나름대로 온전하게 완성되었다. 대출금을 갚지 않고 그 돈으로 다른 것에 투자하거나 내 꿈의 집터를 구할 자금으로 쓸지 꽤 오래 고민하기도 했다. 그러다 빚을 안고 사는 묵직한 부담감을 덜어내고 싶어서 정리하는 쪽을 택했다. 가끔 괜한 짓을 했나 후회하기도 한다. 그러다 내 돈도 아닌 빚으로 과한 욕심을 내면 제 발에 걸려 고꾸라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고는 잘했다고 다독인다. 경험해 보니 세상 모든 일에는 때가 있고, 일이 성사되는 규모가 있더라. 지금은 분명히 빚도 욕심도 다 덜어내야 할 때이다. 지금껏 진득하고 묵묵하게 잘 걸어 나갔으니 갑자기 뛰어나가겠다며 욕심부리지 않도록 마음을 가라앉힌다. 


더 살펴보고 내 삶에서 덜어낼 수 있는 것이 남았다면 조금 더 덜어내려고 한다. 삶의 규모를 조금 더 자그마하게 줄이려고 한다. 그러면 내가 짊어지기에 가뿐한 삶이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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